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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reell Oct 14. 2023

하루 종일 정신이 없었다.

내일은 결혼 후 처음 친정엄마의 생일을 축하하는 시간.


어제는 듣기만해도 오싹한 13일의 금요일이었다. 발가락이 몹시 꿈틀 대는 수준이다.


친구네집에 크림치즈에 저당블루베리쨈을 바르고 바나나를 얹어 만든 과일샌드위치와

햄, 콘샐러드, 삶은계란, 마요네즈와 후추를 넣은 버터롤 샌드위치와 갓구운 베이글칩을 

챙겨서 좀 갖다주러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버스가 종점과 기점으로 가는 버스였는데 확인을 안하고 타서 중간에 방향을 돌려서 다시 탔다.





이런 날은 항상 한 가지의 일로 끝나지 않는데 오후에 서래마을 쪽으로 외출할일이 있어서,

오사카 신혼여행을 갔을때 큰맘먹고 사온 스니커즈를 오랜만에 신고 나갔다.


근데 원래 신발이 편하게 맞는데 이상하게 신을 때부터 발이 아파서

혹시 결혼식 당일처럼 피곤해서 몸이 부은건가 싶어서 "에이 괜찮아지겠지" 하고

몇시간을 돌아다녔다. 나름 다닐만 해서 집에 와서 신발을 벗어보니 어이가 없었다.


발 앞코쪽에 세탁을 맡기고 회수했을 때 깜빡하고 제거하지 않은 제습제가 나란히

신발에 한 쪽씩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뭔가 쿠셔닝이 과하다고 생각했는데, 어휴 나도 참.




괜히 온 몸이 피곤한 것 같아서 집에 좀 앉아있다가 집 앞에 오픈한 프랜차이즈의 아이스아메리카노가

마시고 싶었다. 그대로 대충 옷을 걸쳐입고 한참을 걸어갔는데 "재고 소진으로 마감합니다"가 적혀있었다. "그럼 그렇지."


그래서 친구가 보내준 치킨 기프티콘을 포장하려고 도보 소요시간을 알아보니 50분 정도여서,

컨디션이 괜찮았다면 천천히 걸어갔을텐데 발 컨디션 때문에 쉽게 포기를 해버렸다. 

그래 밤 10시도 넘었으니 버스를 타고 다녀올까 했는데 지갑을 놓고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집으로 터벅터벅가서 치킨을 포장해 놓고 나오니 밤 11시정도의 시간이 됐다.





야식을 잘 먹지 않는데 좀 먹어볼까 하다가 내일 에어프라이어에 데워서 남편하고 같이 먹어야겠다 

싶어서 그대로 꺼내서 소분해서 통에 넣어놓고 쉬려는 찰나!


남편에게 메세지가 도착했다.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집에 가는중이고 술은 조금밖에 안마셨어!"


집에 와서 한 잔을 더하고 싶은건가 싶어서 우선 오랜만에 집앞 지하철역으로 마중을 나가겠다고 하고

다시 준비를 했다. 




그런데 유독 나의 엘레베이터만 누가 붙잡은건지, 사람이 많이 타는지 올라오지를 않았다.


그래서 1층에 문이 열리는 순간 남편이 엘레베이터를 타러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민망하게 "아 여보 역으로 가려고 했는데 미안해 얼른 타~"


허둥대는 내 모습이 싫었지만 이런 날도 있는거지 뭐 하고 넘겨 버렸다.

치킨과 맥주, 얼음이 잔뜩 담긴 제로콜라를 차려서 재미있는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새벽 시가 조금 넘은 시간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로 떠들다가 각자 잠이 들었다.


결혼하고 나서는 나의 장점과 단점이 더 또렷하게 보인다.

뭐든 완벽하려고 했던 나는 조금씩 풀어지고 있다. 어느 정도는

내게 필요했던 모습이라고 생각했지만 마주하고 싶지는 않았었다.


예전 같으면 하나씩 꼬이는 느낌이 받을 때부터 예민해져서는

겉으로는 크게 티를 내지 않아도 속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엉망진창의 마인드와 멘탈이 돼있었다. 바사사사사삭.





내일은 결혼하고 처음 맞이하는 친정엄마의 생일이라

언니네랑 같이 강화도에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아무것도 사지 말고 밥값이나 두 집 나눠서 내줘"라는 쿨한 엄마의 말에

차마 "엄마가 좋아하는 보라색 꽃바구니랑 벽돌색 립밤을 준비했어"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얼마 전에 잠깐 조카 유치원 픽업하러가는 길에 엄마를 만날 일이 있어서 

글루타치온을 드셔보시라고 달치를 챙겨드렸다가 호되게 혼이 났다. 

(물론 다 예상했던 일이다. 엄마 스타일이 그렇다. 나도 내 스타일이 있다.)





물론 내가 먹어 본 다음 엄마의 입맛에 맞을테니

결국 한참을 뭐라고 한 다음에 먹을만하네라고 끝이 날 것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꿋꿋하게 쇼핑백에 담아서 간 것이었다.


"아흐. 나 건강식품 잘 안먹어. 줘도 어차피 다 유통기한 지나.

언니가 준 유산균도 그냥 그대로 구석에 있는데. 어휴

이런 것 좀 가져오지마. 나는 건강기능식품을 받으면

의무감이 생기는 것 같아서 부담스러워. 갖고 가져가" 라고해서


포기하지않고 절반을 내 가방에 다시 넣었는데

결국 한 포 맛을 본 엄마는 머쓱해하며 "가져갔던 거 다 줘봐. 먹을만하네"라고 말해서

나는 말했다. "엄마 내가 어련히 엄마 스타일에 안맞는 걸 갖고 왔을까봐 ㅋㅋㅋㅋ"


아빠한테도 "아빠 저 몸살 날 것 같아요 ㅎㅎㅎㅎ" 하고 

그냥 웃어버렸다. 아빠도 "하루이틀이냐 ㅋㅋㅋ"하고 계속 운전을 하셨다.

나도 나이가 점점 드나보다 싶었다. 서른 되기 전까지는 바로 치고 받고 싸우는 수준이었었는데



엄마한테는 미안하지만 우리 집에 아들이 있었다면

꽤나 시집살이 했을 것 같다고 농담 버전으로 말해볼까 하다가 

등짝이나 왼쪽 어깨를 펀치로 맞을 것 같았다.

나는 조수석, 엄마는 조수석 뒷자리에 앉아있었어서

나의 등은 아프지 않게 지켜낼 수 있었다만.......


어느 덧 우리 엄마도 칠순이 점점 다가온다.

결혼하고보니 엄마의 마음을 아주 아주 조금 이해되는 부분도 있지만

더욱 더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있다.





평소에 연락을 잘 드리지는 않는 편이고, 우리 집에도 잘 놀러오라고 하지도 않는다.

사실 나도 나지만 친정과 신혼집이 가깝다고 해서 너무 자주 오시면 

이서방이 불편해할 것 같아서 지켜주고 싶은 마음도 크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 역시도 집에 오고 싶어해서 "아주 딸 집이 며느리 집 같아~ㅎㅎㅎㅎㅎ"

라는 말을 자주 날리지만 테니스 라켓 급의 방어 태세를 취하고 있다.


(시댁에도 평소 연락은 잘 하지 않으며, 특히 시아버님이 집에 오시고 싶어하시는 것도 알고,

시어머니가 연락을 받고 싶어하시는 것도 잘 알지만 웃음으로 무마하는중 ㅎㅎㅎㅎㅎㅎㅎ

혹시 내 글을 보시는 분들 중에 시부모님이나 시댁 식구의 입장으로서 보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인상 찌푸리지 마시고 대충 넘어가주셨으면 하는 아주 작은 바램이 있다.

웃으면서 거절하는 똑부러진 모습을 탑재하고 싶은  며느리로서의 면모를 구축해보려는 중이다. 

시댁에 오히려 잘하려다가 식구들의 배려없는 모습과 말들로 상처받은 친구와 지인들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일까..... 죄송하지만 너무 잘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기본만 하고 싶다.

나는 남편을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라고 주문을 꽤 많이 외우는 중이다.

다행히 남편은 결혼 후 돌변한 효자가 아니고 나와 성향이 비슷해서 너무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무뚝뚝하고 할 말을 하는 그런 장남이다.)





아무튼 친정엄마와 외모가 기가 막히게 닮은 나라서,

좋은 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은 더 많이 닮아서

역시 우리 엄마는 엄마구나 싶은 그런 시기를 보내고 있다.


내일은 엄마가 바람쐬고 싶어서 집에서 좀 먼 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한 거라서 아마 일찍 출발을 해야 할텐데

흔쾌히 불평없이 알겠다고 말해준 이서방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본다.


그런의미에서 숙취로 꿀잠을 잘 남편이 좋아하는 연남동의 콜드브루 원액을 사와서 

얼음에 타주고, 제일 좋아하는 사과도 깎아서 일어나면 챙겨줘야겠다. 고마워 여보!

이번 주도 출퇴근하느라 수고 많았고, 오늘은 편하게 쉬고 체력 회복 잘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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