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부부의 화이트데이
‘초콜릿 특수 발렌타인데이…2·3월에만 연매출 절반 넘겨...’
한 달 전 발렌타인데이, 몸에 좋지도 않은 초콜릿, 사탕을 굳이 날까지 만들어 챙겨야 하나 싶어 그냥 넘어갔다. 우리 집 남자들 은근 서운해 하는 눈치라 다음날 딸이랑 초콜릿 두 개를 사서 하나씩 주었는데 초콜릿을 받아든 남편이 말했다.
"뭐야? 한 사람이 하나씩은 줘야지! 둘이서 한 개로 퉁 치나?"
아들도 합세하여 협공을 한다.
"맞아."
"알았어. 우리도 화이트데이에 따악 한 개씩만 주자.“
남편, 아들! 우리라도 마케팅 상술에서 벗어나면 안 될까? 못 들어 봤어? 만병의 근원은 염증이고 염증의 근원은 당질 때문이라는 거! 특히 달달한 가공식품은 최악이야!
아들은 한쪽 눈으로 나를 흘겼고, 식탁에 앉아있던 남편의 뒤통수가 말했다.
”비싼 걸 받아야 맛인가? 나를 위해 챙겨주는 게 기분 좋은 거지.“
남편의 한 마디에 건강 전도사로서 연설에 박차를 가하려다 멈칫했다.
남편이 소박한 초콜릿 하나에 서운해 하는 게 아니구나
머릿속에 책 한 권이 떠올랐다
바로 게리 체프먼의 <사랑의 언어>다
책에 따르면 사랑의 언어에는 크게 5종류가 있고, 사람마다 제 1의 사랑의 언어가 다르다고 한다. 자신의 배우자의 제 1의 사랑의 언어가 무엇인지 파악해서 이에 맞춰 주면, 배우자의 사랑의 그릇이 가득 차게 된다. 만약 부부간의 사랑의 언어가 다른 상황에서, 서로의 언어를 파악하지 못하고 내 언어로만 사랑을 표시한다면 양쪽의 사랑의 그릇이 텅텅 비게 되어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기 힘들어 진다는 것이다.
사랑의 언어 5가지 종류는 아래와 같다.
1. 인정하는 말
2. 함께하는 시간
3. 선물
4. 봉사
5. 육체적인 접촉
생각해보니 기념일, 특별한 날은 거의 남편이 챙기고 나는 대부분 받기만 했다. 그는 내가 선물을 받으면 기뻐하고 자랑하고 표를 냈으면 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나도 선물을 받으면 감사하고 기분이 좋지만 남편이 기대하는 정도로 기쁨과 행복을 느끼지는 않는다. 제 1의 사랑의 언어를 고르라고 하면 ‘인정하는 말’이다. 나는 남편이 나를 인정하는 말을 해줄 때 뿌듯하고 행복하다. 남편의 인정과 응원은 큰 힘이 된다. 그렇다면 남편의 사랑의 언어는 ‘선물’이 아니었을까. 그동안 자신이 받고 싶은 사랑의 언어로 표현했던 것이다. 그러니 20년 넘는 동안 서프라이즈나 이벤트 없는 무심한 아내에게 쌓인 서운함이 볼품없는 초콜릿 하나에 터진 것도 이해가 간다.
소소한 행동 이면의 감정에 집중하니 상대의 욕구가 보인다. 사랑 표현은 상대방의 언어로 해야 한다 것도 깨달았다. 앞으로는 ‘데이’를 좀 챙겨야겠다. 사랑과 관심을 표현하고 작은 정성을 배우자에게 보이는 것이 부부가 잘 사는데 중요한 덕목이 아니겠는가. 마케팅 상술에 편승해서라도 애정을 보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한 달 뒤 화이트데이날 남편은 수제 초콜릿과 5만원 지폐 다섯 장을 선물로 안겨 주었다
나는 신나게 어깨춤을 추었다
”와! 신사임당이다! 좋다! 좋아!“
선물은 작은 기쁨, 지폐는 큰 기쁨이다
상대의 반응에 기쁨을 느끼는 남편이니 더 신나게 추었다
남편의 사랑의 언어를 파악했으니 내년 발렌타인데이 챙겨볼까
아, 올해 생일이 먼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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