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호진 Jul 08. 2022

저는 "말하는 사람"입니다.

피디님은 퇴사 후 직업이 뭐예요? 



<매일 아침 써봤니>의 김민식 피디님을 좋아한다. 그의 글도 좋지만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멋졌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그의 "정신승리"를 닮고 싶었다.  그리고 그가 현실에 대해서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점 또한 배우고 싶었다. 그의 번뜩이는 생각이 나로 하여금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 때가 종종 있다. 책에서든 강연에서든.



그가 MBC를 퇴사하고 난 후 그가 이끄는 독서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다. 8주 동안 네 권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었다. 책에 대한 이야기가 주였지만 참여한 사람들과 이런 저런 잡담도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잡담이 오히려 서로를 더 친밀하게 만들었다. 



독서 모임을 하던 어느날, 나는 피디님께 질문을 드렸다. 지금 스스로를 어떤 타이틀로 불리고 싶냐는 질문이었다. 피디 일을 그만두신 터라 어떻게 불러 드려야 할 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피디님은 지금도 스스로를 피디라고 정의한다 하셨다. 방송국에서의 전형적인 프로그램을 만드는 프로듀서는 아니지만 자신이 퇴사 이후에 하는 일도 피디의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셨다. 글과 영상, 독서 모임 등의  좋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것이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하셨다. 


당시 피디님의 이야기를 듣고 "타이틀"이라는 것에 대해서 고정적이기 보다는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을 배울 수 있었다. 피디라고 해서 꼭 방송국에 근무할 필요는 없다. 적어도 지금의 시대에서는.



나의 정체성에 대하여 고민하다



갑자기 피디님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얼마 전 대학교 선배로부터 들은 이야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는 SNS를 통해 나의 활동을 지켜봤다며 나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했다. 그러면서 선배는 내가 지금 대학시절 꿈을 향해 다시 달리고 있는 듯하다고 했다. 학교 다닐 때 아나운서를 그리 하고 싶어했는데 지금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 가고 있다며 말이다. 


비슷한 이야기를 연초 대학 동기로부터 들었던 터라 그 이야기가 다시 한 번 나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한참동안 내가 지금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선배의 말대로 나는 대학시절 아나운서를 너무나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나운서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현실과 타협한 나는, 은행에 취직했다. 나름 은행에서 잘 지냈지만 항상 가슴 한 켠에 아나운서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그리고 TV에서 잘나가는 아나운서들을 보면서 부러워만 했다. 나도 그 자리에 서고 싶다며 말이다. 하지만 냉엄한 현실은 나를 직장으로 출근하게 만들었다. 마음은 헛헛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덕분에 나는 "무기력"을 장착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현실이 달라지지 않았기에 그냥 직장생활만 하며 하루하루를 흘려 보냈다. 하지만 우연처럼 버킷리스트 100개를 쓰면서 나의 삶이 달라졌다. 덕분에 휴직을 하게 됐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게 됐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 워크숍도 진행하고 다양한 모임에서 함께 하게 되었다. 비록 아나운서는 되지 못했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며 지내는 시간이 나에게는 새로운 활력을 주었다. 그리고 어느순간부터 나는 아나운서라는 타이틀을 그리워 하지도 않게 됐다. 사람들 사이에서 "말하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충분히 좋았다. 


그리고 지금은 퇴사를 하고 말하는 일을 본격적으로 하고 있다. 주로 퍼실리테이터로서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고 부업으로 독서모임이나 강의등도 하고 있다. 아나운서는 아니지만 선배의 말마따나 아나운서 같이 말하는 일이 나의 활동에 주된 일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삶에 충분히 만족하는 중이다. 




스스로를 고정시키지 말라


최근에 읽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하고 싶은 일 찾는 법>이라는 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책에서 저자는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이야기 한다. 그 중 작가는 '되고 싶은 것'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말한다. 어떤 직업적 타이틀에 연연하기 보다는 자기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래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확장된다고 말이다.  


되고 싶은 것(직업)은 포기해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가망 없는 노력을 계속하는 건 시간과 에너지 낭비일 뿐입니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은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그것을 실현하는 루트는 어딘가에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하고 싶은 일 찾는 법, p.69)


물론 하고 싶은 일도 찾기 어렵지만 하고 싶은 일을 만약 찾았다면 그것을 직업으로 국한시키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하는 행위에 집중해서 보면 일의 범주가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아나운서가 아닌 말하는 것에 집중한 것처럼, 피디가 아닌 기획하는 것을 본 것처럼 말이다. 



정신승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런 정신승리야 말로 우리 삶을 윤택하게 만들 수 있는 길이라고 본다. 나의 삶을 유연하게 만들 수 있고 실패하더라도 다른 길을 찾을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이렇게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는 것이야 말로 내가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진정으로 만족하게 만든다. 내가 지금 말 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만족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TV에 나오는 사람이 아예 안부러운 건 아니지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퇴사 후 하나의 산을 넘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