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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것을 지속해서 배워야 합니다

퇴사 후에도 강의를 계속 들어야 하는 이유

by 최호진

오랜만에 강의를 들었다


오랜만에 강의를 들었다. 강원국 작가님, 윤태영 작가님, 황인선 작가님이 함께하는 ‘트로이캬 강연쇼’였다. 세 분의 글쓰기와 생각 정리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는데, 오랜만에 듣는 강의가 신선했다. 말 하나하나가 귀에 콕콕 박혔다.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입을 통해 다시 듣는 그 순간은, 충분한 자극이 되었다.



퇴사 후 혼자서 일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세계에 갇힐 때가 있다. ‘고집’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진 생각은 때때로 시야를 좁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다. 지인의 조언처럼 일상 속 컨설팅도 좋지만, 이렇게 강의처럼 구조화된 이야기를 듣는 일도 내 사고의 범위를 넓혀주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날의 강의가 딱 그랬다. 지금 내가 하는 일과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없어 보였지만, 듣는 동안 마음속에서 반응하는 문장들이 있었다. 특히 ‘고쳐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처음부터 완벽한 글을 쓰려고 애쓰기보다는, 일단 써놓고 고쳐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 그 말이 지금 하고 있는 일과도 이상하게 닮아 있었다.


나 역시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글을 쓸 때, 자꾸 시작부터 잘하려고 하다가 멈추는 경우가 많았다. 이젠 일단 만들어보고 고치는 쪽으로 마음을 조금 바꾸었다. 그렇게 보면 자극은 단순한 ‘좋은 말 한마디’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내 일하는 방식과 태도를 다시 조율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작은 조율이 모여, 결국 내 방향을 조금씩 바꾸고 있는 것이다.


쫓기다 보면 시간 확보가 어려워요


좋은 강의는 마른 사막의 오아시스 같다. 하지만 문제는 늘 같다. 시간이다. 정확히는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점이다. 하루 단위로 일정을 맞추는 일용직(?)의 삶에서 강의를 듣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강의 일정을 미리 잡아두어도, 그 시간에 일이 들어오면 결국 강의는 놓쳐야 한다. 그렇게 놓치는 일이 반복되면, 아쉬움이 점점 쌓인다. 그래서 요즘은 조금 다르게 접근하려 한다.



우선, 강의를 들을 땐 그 시간에 마음의 여유부터 확보해두려고 한다. 이 강의가 지금 내게 꼭 필요하다는 걸 인식하고 있어야, 혹여 일이 들어오더라도 너무 아쉬워하지 않고 흘려보낼 수 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그렇게 마음을 정리해두면, 무언가를 놓쳤을 때의 감정 소모도 줄어든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저녁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일정은 낮에 몰려 있기 때문에, 저녁 강의는 일정이 겹칠 확률이 낮다. 체력은 조금 소진되겠지만, 오히려 하루를 마무리하며 듣는 강의는 집중도가 더 높아지기도 한다.


지나치면 오히려 독이 됩니다


한 가지 유의할 점도 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강의는 분명 자극이 되지만 너무 많이 듣는 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나를 풍부하게 하려고 들은 강의가, 오히려 나를 흔들기도 한다. 멋진 사람들의 말과 사례를 계속 듣다 보면, ‘나는 뭐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느새 내 기준이 지나치게 높아져서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자신이 없어지기도 한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방향은 오히려 흐릿해질 수 있다.강의가 필요하다는 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타인의 강의는 어디까지나 참고일 뿐, 정답은 아니다. 그래서 나에게 맞는 ‘적정 자극’이 필요하다. 듣고, 소화하고, 써보는 것. 그 리듬을 내가 결정해야 한다.


또 하나, 내 일과 관련된 강의만 들으려 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히려 생뚱맞은 주제, 평소 관심 밖에 있던 분야의 이야기가 더 신선한 자극이 될 때가 있다. 처음엔 전혀 연결될 것 같지 않았던 말이나 개념이, 며칠 후 불쑥 아이디어로 떠오르기도 한다. 의외의 곳에서 받은 문장 하나가, 오랫동안 고민하던 문제를 풀어주는 열쇠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강의를 고를 때, ‘지금 하는 일에 도움이 될까?’라는 질문보다 ‘내 사고의 틀을 조금이라도 흔들 수 있을까?’를 기준 삼아보는 것도 괜찮다. 우연한 자극이 만들어낸 연결점은, 계획해서 얻은 정리보다 오래 남는다.


혼자서 모든 걸 다 할 순 없다


요즘은 월요일 저녁마다 ‘낯선대학’ 수업을 듣고 있다. 매주 두 사람씩 각자의 삶을 꺼내어 놓는 시간인데, 직업도 이야기의 결도 모두 다르다. 누군가는 창업 이야기를, 누군가는 세계 여행의 여정을,또 누군가는 아주 개인적인 삶을 이야기한다.


전혀 연관 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이지만, 들을수록 내 머리와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는 느낌이다. 딱 떨어지는 인사이트나 당장 써먹을 아이디어는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이야기들이 내 안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조금은 흐릿하게, 아직은 이름 붙일 수 없지만 분명 무언가가 움트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그 감각이 내 언어를 다시 부드럽게 만들고, 어느 날 문득 새로운 연결로 이어질 거라는 예감이 든다.


강의를 듣는다는 건 결국 나를 다시 조율하는 일이다. 혼자 일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동 운전’ 모드에 빠지기 쉽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정해진 루틴만 반복하게 되는 시점. 그때 잠깐 멈춰서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 건, 내 생각의 방향을 조정하는 좋은 기회가 된다.


앞으로도 꾸준히,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강의와 만남을이어가려 한다. 책을 읽는 것과는 또 다른 자극, 말로 전달되는 온도의 감각을 다시 한 번 체감했기 때문이다.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 안의 언어를 다시 살아나게 만드는 일이니까.


오래 지속하려면 외부의 자극이 필요하다는 것을 3년이 지나니 더 절실히 느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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