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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크덕 Aug 17. 2020

첫 기차 여행 + 첫 물놀이

호박이 출생일기 Day 280s

코로나19로 인해 100일 지나고 본가에 내려가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다, 이렇게 있다가는 할머니 살아생전에 증손주 못 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가가 청주인 점을 십분 활용하여, 경유지로 삼고 내려가게 되었다. 


사경 치료 때문에 병원을 정기적으로 오며 가며 하여, 차 안에서 카시트 앉기 등은 이미 익숙하지만 5시간의 고속도로를 아직 호박이가 감당하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특히, 호박이가 오열하는 와중에 고속도로 휴게소가 저 멀리 있다면 차 속에서 멘붕에 빠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KTX, SRT를 호박이 낮잠 자는 시간에 맞춰서 예매를 하고, 자리를 유아로 하나 더 예약하여 호박이가 편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려고 했다. 


2시간 (청주 - 부산) 중 1시간을 넘게 낮잠 자준 고마운 호박이

고맙게도 기차에서 크게 보채지 않았고, 차창 밖을 보면서 잘 가주었다. 차량의 미세진동만큼 기차의 진동이 확실했는지, 약간 지루해질 때쯤 객실 연결 통로에 서서 안고 있으면 금세 잠이 들었다. 물론, 분유도 보충하고 퓨레도 착실히 먹여서 배가 부른 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다.


유례없는 기록적인 장마의 절정에 우리 가족은 비구름과 반대방향인 남쪽으로 향했고, 남쪽에 온 만큼 물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결혼 전만 해도 아파트 단지 내 수영장을 보며, 관리비 아깝다, 앞으로 언제 이용하겠는가 이런 생각만 들었는데 아이가 생기고 나니 이만큼 좋은 시설이 없는 것 같다. 


증손자를 보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할머니 손수 나와 내 동생을 키우셨고, 이제는 증손자를 보신다. 부모님의 맞벌이로 할머니가 학부모 간담회부터 대부분의 역할을 다 해주셔서 나와 각별한 사이인데, 그 손자의 아들을 보니 할머니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 같다. 식사를 하던 도중에도 호박이를 보며 밥 안 먹어도 배부른 모습을 보여주셨다.


생애 첫 물놀이, 우리집 거실이 호박이 놀이터가 되었다


아기가 집 밖에 나오면 병이 난다고 했었나, 부산의 습한 공기와 물놀이, 여독 등 호박이에게 무리가 되었던지 콧물이 나기 시작하고 밤이 되자 기침과 코막힘에 잠을 못 이룬다. 나와 와이프도 처음 겪는 일이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 굴렸다. 어머니와 동생에게 부탁해서 자정에 연 약국을 찾아 코뻥과 온도계를 샀고, 인터넷에서 찾아 양파를 썰어 아기 침대 머리맡에 두기도 했다. 마치 괜히 본인 때문에 내려와서 호박이가 아픈 것처럼 안쓰러움과 미안한 마음에 할머니는 밤새 잠을 못 주무시고 불경만 외셨다. 


괜히 물놀이한 것 같은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다음 물놀이는 호박이 4~5살은 되면 하려 한다. 그리고 절대 여행지에서 첫 번째 경험을 하지 않기로 한다. 


10월 말 호박이 돌잔치 전에 다시 내려와 그땐 건강하고 더 큰 모습으로 할머니께 인사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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