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헤마 tohema Jul 18. 2022

찬찬히 둥글게

친구가 선물해 준 핸드크림

핸드크림을 강박적으로 바르던 때가 있었다. 레몬 향, 장미 향, 코튼 향… 향을 가리지는 않았다. 테스터로 향을 맡아보고 괜찮다 싶으면 하나둘 구매해 생활반경 곳곳에 비치해 두었다. 일하다가 잠시 머리를 진정시킬 때도 발랐고, 공부하다가 손목이 아파 잠시 쉬고 싶을 때도 발랐고, 손을 씻고 나오면 강박적으로 발랐고, 그냥도 발랐다. 양손의 손등을 찬찬히 둥글게 돌리며 크림을 녹이면 향기가 살짝 올라오는데, 그럴 때면 마음이 편해졌다. 나만 맡을 수 있는 작고 고요한 비밀 같았다. 보들보들해진 손등을 만지면 기분이 좋았다. 살결에서 사르르 사르르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가끔 얼굴을 긁적이거나 코를 훌쩍이면서 손가락을 얼굴에 가져갈 때면 핸드크림 향이 얼핏 스쳐지나가는 것이 예상치 못한 선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핸드크림을 바르는 행위는 스스로를 가만히 보듬는 일 같기도 하다. 취향에 맞는 향기와 함께 내 손과 마음을 어르고 달래는 일. 일상을 보내면서 손을 안 쓰는 일은 거의 없는데, 핸드크림을 바른다는 것은 그 손을 잠시나마 쉬게 해준다는 뜻이다. 화가 나서 끓어오르는 호흡을 가라앉히는 시간이기도 하고, 다음 일을 진행하기 전 마음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내 사무실에는 두 가지 핸드크림이 있다. 하나는 거의 다 쓴 록시땅의 시어 드라이 스킨 핸드크림, 나머지 하나는 이제 막 쓰기 시작한 핸드앤네일 비타민 솔루션 포멜로 스윗 핸드크림이다.(이름 한 번 길다)  

    

핸드앤네일 핸드크림은 얼마 전 친구에게 선물로 받았다. 이름에 걸맞게 상큼하면서도 달달한 향기가 난다. 친구도 다른 친구에게 선물 받아 써본 핸드크림인데, 너무 좋아서 내게도 선물로 주고 싶었다며 두 시간 거리를 달려와 건네준 제품이었다. 그 마음이 따뜻하고 소중해서 많이 고마워했다. 처음 받고 나서는 향만 맡아볼 요량으로 포장지를 풀었고, 본격적으로는 며칠 전부터 쓰기 시작했다. 단단한 제형의 록시땅 핸드크림에 반해 몰캉하게 흐르는 제형이었다. 바나나 우유처럼 연한 노란빛을 띠었다. 손등을 문지르면 순식간에 녹아 사라지고 통통 튀는 향만 남는다. 요즘은 핸드크림을 예전처럼 강박적으로 바르지는 않아도 여전히 자주 바르는 편인데, 바를 때마다 친구 생각이 난다. 


얼마 전 친구는 아이를 가졌다는 벅찬 소식을 내게 전해주었다. ‘엄마가 된 걸 축하해.’ 한껏 호들갑을 떨고 나서 친구에게 건넨 말이었다. 친구는 이 말이 유독 마음에 와 닿았던 것 같다. 나로서는 내년 봄에 태어날 아기가 건강하길 진심으로 바라면서도, 그 아이를 뱃속에 품은 친구가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엄마’라는 친근하면서도 낯선 그 이름에 잘 적응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너에게 새로운 이름이 생긴 걸 축하해. 건강해. 무조건 건강해. 그런 바람을 꼭꼭 담은 메시지였다.     


생각해 보니 발랄하고 새큼달큼한 향이 그 친구를 닮았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핸드크림을 바르면서 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손등을 문지른다. 

작가의 이전글 “어른들이 울려고 하면 난 바로 알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