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맛집, 이 세상에 고기보다 맛있는 게 있었어!
상호명 : 씨젬므쥬르 (SIXIEME JOUR)
주소 : 서울 송파구 백제고분로 41길 25
전화번호 : 070-4179-4142
영업시간 : 매일 11:00 ~ 21:30
Last Order 점심 15:00 & 저녁 21:00
Break Time 매일 15:30~17:00
매주 일요일 휴무
가격 : 감자 크림 파스타 10,000원
딥 프라이드 콜리플라워와 신선한 야채 보울 11,000원
시금치 페스토 파스타 11,000원
리얼 갈릭 바게트 4,000원
위치 : http://naver.me/F6qhYG6W
**전문 맛집 블로거처럼 상세한 사진을 찍지는 않는다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대신 글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식당과 음식의 맛을 상상할 수 있게 해 드릴게요. 실제 방문 시 상상과 얼마나 같고 다른지 경험해보시길 바랍니다.
듣똑라를 한창 열심히 듣던 때였다. 어느 출근길에 안백린 비건 셰프가 게스트로 등장해 비건 라이프를 소개하는 내용이 흘러나왔다. 나란 사람은 철저한 육식주의자로, 편식을 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채식주의자를 꿈꿔본 적은 없었다. 그런 내 귀에 꽂힌 '비건 라이프'는 생소하고도 낯선, 하지만 귀를 쫑긋 세워 한 마디 한 마디를 마음 깊이 담아 듣게 하는 주제였다. 동물권에 대한 문제를 비롯해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이슈들을 하나하나 짚어주신 덕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하지만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안백린 셰프의 비건 라이프보다는 그가 추천해주는 비건 레스토랑에 아주 조금 더 혹했다.
'난 혹한 건 또 바로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니까. 이번 주말은 비건 레스토랑 도전이다!'를 외치며 비건 라이프를 실천하고 계신 지인 분의 추천 맛집으로 향했다.
먼저 짧은 지도 팁부터 전하자면 내 티맵이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얜 식당 위치를 정확히 모르는 게 분명하다. 직진하면 왼편에 있는 것을, 굳이 굳이 골목으로 날 안내했다. 혹시나 식당이 100m 내에 있다고 하는데 이상한 골목길로 안내한다면 무시하고 직진하시길.
식당 크기가 작은 만큼 주차장도 크지 않다. 식당을 바라보고 바로 오른편에 차량 4대가 두 대씩 차곡차곡 들어갈 정도의 공간이 있다. 이 곳이 바로 주차장이다. 이 마저도 다른 가게들과 셰어 하는 형태인지 어디선가들 나타나 차만 대고 사라지는 걸 봤다. 다행히 밥때를 좀 넘긴 시간에 도착해 무리 없이 주차했지만, 붐비는 점심이나 저녁 무렵 방문하게 된다면 다른 주차 공간도 미리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참고로 골목이 좁아 식당 앞에 주차하는 건 힘들 수 있다.
작고 깔끔한 곳이다. 그 아담한 공간을 화이트와 그린 배색으로 톤을 맞추고 갬성이 담긴 액자를 걸어 인스타그래머블하게 완성해 놓으셨다. 테이블도 많지 않다. 한 대여섯 개 정도? 옆 테이블과 간격이 아주 넓진 않지만 공간의 크기에 비해 넉넉히 띄워두셨다. 덕분에 양 옆 테이블 모두 사람이 차있었어도 특별히 불편함은 느끼지 못했다.
물 한 병이 나온다. 먹고 싶은 메뉴를 주문하고 조금 기다리면 어린잎 채소가 약간 뿌려진, 얇게 썰린 마늘 바게트 몇 조각을 가져다주신다. 이게 대존맛이다. 공짜로 받아먹어도 되나 싶다. 미리 만들어 바게트가 누질 때까지 잔뜩 쌓아뒀다 테이블에 나가기 전 살짝 데우기만 하는 빵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우선 주문과 동시에 갓 구워져 나온 듯 따뜻하다. 포크로 찍으면 부서져 버릴 것 같아 엄지와 검지로 테두리를 조심스럽게 잡아 한 조각 집어 들면, 겉면에 촉촉이 발라진 버터가 두 손가락에 아주 조금 묻어난다. 집어 들기만 해도 마늘과 버터향이 물씬 풍겨 바로 한 입을 베어 물지 않을 수 없다.
파삭-
알맞게 구워졌다. 타지는 않았지만 얇게 썬 탓에 적은 열로도 아주 바삭하게 구워졌다. 그 위에 발라진 마늘이 섞인 버터에는 무슨 짓을 한 건지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게 고소하고 짭짤함과 동시에 담백하다. 2명이 갔으니 각자의 몫은 4 pcs. 2조각은 순식간에 입 속으로, 나머지 두 조각은 파스타 소스에 찍어 먹으면 맛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잠시 때를 기다린다.
메뉴를 고르는 건 늘 고통스럽다. 메뉴판에 적힌 모든 음식을 다 맛보고 싶은데, 그중 꼭 한 두 개를 골라 먹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참 속상하다. 그래서 어디에서건 메뉴판을 집어 들 때마다 '음식을 한 20 접시쯤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직원분 피셜에 의하면 이 곳의 추천 메뉴는' 시금치 페스토 파스타'와 '토마토 리조토와 구운 가지'이다. 다른 메뉴도 궁금한데 인스타그램을 뒤져봐도 대부분 추천 메뉴를 시켜 먹은 것인지 사진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딥 프라이드 콜리플라워와 신선한 야채 보울'! 왜냐면 듣똑라에서 안백린 셰프님이 튀긴 콜리플라워가 전혀 다른 맛이 난다며 극찬을 하셨기 때문이다. 메뉴 하나 선정 완료.
그다음은 파스타다. 직원분 추천에 순응해 시금치 페스토 파스타를 먹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두 번째 메뉴는 '감자 크림 파스타'로 선정.
오래지 않아 메뉴가 쪼로록 테이블 위에 세팅됐다. 크림이 아주 뜨거우니 천천히 호호 불어 먹으라는 안내가 따라오는 파스타와 소스가 아래 몰려 있으니 잘 섞어 먹으라는 딥 프라이드 콜리플라워(이름이 길어 줄였다). 그들이 등장했다.
이름과는 사뭇 다른 비주얼이었다. 딥 프라이드 콜리플라워의 경우 치킨이 올라간 샐러드처럼 보였고, 감자 크림 파스타는 다소 묽은 평범한 크림 파스타로 보였다.
딥 프라이드 콜리플라워와 신선한 야채 보울은 치킨 샐러드의 비주얼이었다. 남의 살을 튀겼을 때 나는 기름 향과 사뭇 다르긴 했지만 여전히 미심쩍었다. 그래서 먼저 한 입 했다. 콜리플라워 하나를 포크에 찍어 소스에 푹 빠진 야채 더미를 올려 한 입에 쏘-옥 다소 버겁게 밀어 넣었다.
대박, 완전 맛있어
이건 대박이다. 이건 정말 따옴표를 달 수밖에 없는 대박적인 맛이었다. 세상 처음 맛보는 바삭하면서 고소하면서 채소라고는 조금도 생각할 수도 없는 맛. 내가 먹던 물에 데친 콜리플라워와는 그냥 전혀 다른 음식이었다. 안백린 셰프님의 말씀이 맞았다. 튀긴 고기에 비해 느끼함은 없으면서 육질을 씹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만드는 식감이었다. 게다가 아주 맑은 기름을 사용했는지 흔히 맡을 수 있는 진한 고동색 기름의 향은 전혀 없었다. 갓 튀겨 나온 탓에 처음에는 너무 뜨거워 아구아구 씹을 수 조차 없지만, 입을 반쯤 벌리고 들숨날숨을 반복하며 이 사이에 끼워 넣은 콜리플라워를 조금씩 부숴내 맛보다 보면 대체 왜 더 일찍 여길 오지 않았을까 후회스러워진다. 이 메뉴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무엇보다 어떤 조합으로 섞였는지 알 수 없는 독특한 소스가 음식의 맛을 오억 배쯤 끌어올려주었다. 정말 열심히 위로 섞어 올린 소스는 케챱과 마요네즈를 비율 좋게 섞은 것 같은 색을 가졌지만 맛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고소함과 담백함, 적당한 간과 삼켜낸 뒤 느껴지는 깔끔함. 아직도 어떤 조합으로 만드신 건진 모르겠다. 다음번에 방문하면 꼭 여쭤볼 참이다.
(참, 이곳의 메뉴는 모두 1인분을 기준으로 만들어지는데, 콜리플라워 메뉴는 보울이 깊어 생각보다 양이 많다. 참고하시길!)
옆에서 기다리던 감자 크림 파스타의 비주얼은 평범함 그 자체. 하지만 소스를 면과 슥슥 섞다 보면 소스 질감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사실 요 메뉴는 꾸우더억한 크림 파스타를 선호하시는 분들께는 덜 추천한다. 감자 크림이 감자전 같은 쫀득함을 말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소 묽은 우유 크림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치즈가 듬뿍 들어가 다소 자극적인 맛을 내는 여느 크림 파스타와는 달리 담백하고 연한 맛을 담고 있다. 크림이 촉촉이 묻은 새싹 잎과 면을 돌돌 말아 한 숟가락 가득 담고 입에 쏘옥 넣은 후 크림소스 한 숟갈을 한 입 더 리필해주면 입 안이 온통 따뜻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여기에 포인트는 아까 나온 식전 빵을 크림에 찍어 먹는 것! 요렇게 먹으면 연한 크림과 짭짤한 마늘빵의 궁합, 그리고 부드럽고 촉촉한 크림과 파삭한 마늘빵의 조화를 온전히 느껴볼 수 있다. But, 엄청나게 신박한 맛은 아니었다는 거 !
마지막은 바로바로 구운 바나나!!! 요 메뉴가 씨젬므쥬르 맛의 정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식감과 맛이 고스란히 연상될 정도로 맛있게 먹은 디저트다. 바나나로 재해석한 크림 브륄레 같달까..?
재료는 아주 간단하다. 검지 손가락 크기 정도로 자른 바나나, 설탕, 아몬드 가루. 이 세 가지 단출한 재료로 최상의 맛과 질감을 끌어낸다. 오른쪽 바나나는 설탕만 입혀져 있고, 왼쪽은 설탕 입힌 바나나 위에 아몬드 가루가 크게 한 스푼 올라간다. 작은 디저트에서도 두 가지 맛을 모두 느껴보라는 세심한 조언이 담겨 있어 만든 사람의 마음을 느끼며 먹을 수 있었다.
먼저 오른쪽 바나나에는 크림 브륄레를 처음 먹을 때 티스푼으로 톡톡 쳐 깨 먹는, 녹여서 굳힌 설탕(?) (고급 용어 모른다^.^)이 입혀져 있다. 디저트라면 또 환장하는 나이기에 망설이지 않고 덩어리째 한 입에 덜컥 넣어버렸다. 설탕을 씹으면 그 안에 감싸져 있던 구워진 바나나의 달콤한 식감이 이 사이를 비집고 나온다. 달콤함과 달콤함이 더해져 과하게 단맛이 날 수도 있지만 이건 그렇지 않다. 바나나의 무겁고 느끼한 듯 부드러운 단맛과 혀를 스치듯 지나가는 가벼운 설탕의 단맛이 그냥.. 완벽하다. 아몬드가 뿌려진 쪽은 잘게 씹히는 견과류의 식감과 고소함이 더해진다.
접시에 뭐가 올려져 있었는지 티도 안 날 정도로 싹싹 긁어먹은 뒤 혹여나 단품으로 판매 중일까 봐 메뉴판까지 한 번 더 뒤적였지만, 아쉽게도 그런 건 없었다. 나중에라도 추가 오더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주신다면 한 10 접시쯤 해치우고 오고야 말 테다!
메뉴가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 옆 테이블에 4인 가족이 들어왔다.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부부와 초등학생 아들 그리고 유치원생 딸까지. 그중 엄마로 보이는 여성분이 메뉴를 살펴보시고는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어머! 여기 100% 비건 이래! 얘들아! 엄마 여기 있는 거 다 먹을 수 있어!!!"라고 외치셨다.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입꼬리가 양 쪽으로 수직 상승한 상태로 환호성을 내지르는 그 모습을 목격했던 것이다. 마치 어느 경연 대회에서 1등을 한 참가자가 환희에 찬 표정으로 수상소감을 말하듯 말이다. 그간 외식을 할 때마다 메뉴판을 샅샅이 뒤지며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아야만 했을 그분의 고생(?)이 느껴지는 듯했다. 어린 자녀들이 '100% 비건'이라는 단어를 얼마나 이해하고 엄마의 기쁨에 얼마나 공감했을는지는 모르겠지만(엄마가 환호하는 것에 비해 아이들과 남편 분은 그닥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ㅎㅎ) 누군가에게 존재만으로도 기쁨을 줄 수 있는 식당이라니, 나까지 참 흐뭇해지는 광경이었다.
이번 글은 부쩍 길었다. 나름대로 줄이려는 노력이 들어갔지만, 그때 느낀 맛의 경험을 옮겨보자니 할 말이 너무 많다. 잘 옮긴 부분도,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비건이시라면 혹은 비건 푸드가 그저 풀떼기에 불과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면 방문하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