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랫화이트 Feb 15. 2024

언제 올 거야? 기다릴게

너의 등에 새겨진 글자

 

기다림의 시작


소파에서 자던 녀석이 내려온다. 시계를 보니 곧 오후 6시다. 그럼 그렇지. 이 녀석, 마치 몸에 알람 시계를 차고 있는 것처럼 이 시간만 되면 서서히 몸을 움직인다.

남편 퇴근 시간은 7시다. 포도는 1시간 전부터 준비 중이다. 마치 훈련이라도 받은 듯, 매일 똑같은 패턴을 보이니 난 시계를 볼 필요가 없다.

현관만 뚫어지게 쳐다보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자니 귀여움과 가여움이 밀려온다. 지금 포도의 세상은 오직 기다림만이 존재한다.



기다릴게!


어릴 적, 오순이라는 몰티즈를 키웠다. 고모집에서 입양했는데 무척 잘 먹고 순하고 사람을 좋아했다. 35~6년 전이라 지금처럼 위생이나 건강에 신경 쓰기보다 같이 먹고, 같이 자면서 몸을 비비며 살았다. 오순이는 유독 사람을 좋아해서 가끔 탈출을 시도했다. 다행히 멀리 가지 않았고 가봐야 이웃이었지만 안 보일 때면 마음을 졸었다. 이 집 저 집 뒤져 발견하면 안심이 됐지만 다른 사람품에서 편하게 있는 모습을 보면 주인도 모르나 싶어 속상하기도 했다.

자주 탈출을 감행하니 한 번은 덜컥 임신을 했다. 도통 남편이 누구 집 애인지 알 길이 없었다. 집에서 출산하는 오순이의 모습은 숭고하고 경이로웠다. 오랜 시간을 동고동락하고 가족이 되어가니 오순이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로 자리 잡았다.

9살이 되던 해, 집에 사정이 생겨 다시 고모네로 보내게 됐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슬펐지만 오순이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가족에게 사랑을 주던 아이가 사라지니 허전하고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어수선한 집안일로 인해 우리 가족은 오순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나눌 만큼의 여유도 없었다. 고모는 간간히 오순이의 소식을 전해주셨고,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다 집안 모임이 있던 날, 고모는 생각도 못한 말을 했고 우리 가족은 눈물을 훔쳤다.

 

“오순이가 오는 날부터 매일 골목만 쳐다본다. 밥 먹을 때 빼고는 그러네. 안쓰러워 죽겠어.”


아빠가 고모네 집에 자신을 놓고 돌아가던 길, 아빠의 차가 빠져나가던 그 골목. 오순이는 밥을 먹다가도, 사람이나 차가 지나가면 그곳만 쳐다본다는 거였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여겼지만 전혀 변화가 없다고 했다. 고모는 우리가 걱정할까 싶어 말씀을 안 하셨다. 우리 집 사정이 안 좋아 다시 보낼 수 없었으니 우리를 기다리는 오순이가 더 불쌍했을 것이다.


오순이는 그렇게 매일을,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아빠의 차가 빠져나갔던 그 골목을 바라봤다. 오지 않는 우리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그 길을 바라보며 기다렸을 오순이.

다시 자기를 데리러 올 거라는 희망을 가졌을까? 아니면 목줄을 끊고서라도 달려가고 싶었을까?

많이 시간이 흘렀고, 기다리는 오순이를 본 적은 없지만 마치 가슴에 각인이 된 것처럼 찌릿한 통증이 느껴진다.



하염없이 남편을 기다리는 포도를 볼 때마다 오순이가 겹쳐진다. 오순이도, 포도도 기다림은 결코 익숙해지는 것이 아닐 거다.


포도는 점점 현관 앞으로 움직인다. 불 꺼진 현관 앞, 한 곳에 머물러 있는 시선.

남편을 기다리는 너의 등에 새겨진 “기다릴게”라는 글자가 오늘따라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다.

포도가 나이 들고, 시간이 흐를수록 “기다림”이라는 글자가 더욱 선명하게 느껴지는 건 얼마 남지 않은 우리의 시간 때문일까.

포도의 등에 새겨진 "기다림”이 더 이상 진해지지 않길 바라는 것이 욕심이 아니길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