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메라니안 종인 포도는 이중모다. 다른 아이들보다 털이 유별나게 많다. 미용시간과 비용이 다른 친구들보다 많이 들어 부담스러울 정도다. 올해로 12살이 되었는데도 모량은 변함없다. 건강하다는 증거라 좋으면서도 털관리는 여전히 어렵다.
반려인이라면 누구나 첫 산책의 로망이 있을 테다. 자식을 낳으며 좋은 음식 먹이고, 좋은 옷 입히고 싶은 마음은 모든 부모의 마음이다. 포도를 입양하고 딸을 키울 때와 같은 심정이었다. 첫 산책을 앞두고 위시리스트 첫 번째가 옷이었다. 어렸을 때 익숙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선배 반려인들의 말에 꼭 입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간 펫쇼는 신세계였다. 초보반려인이었던 나는 다양한 반려동물 물품에 놀랐다. 예쁘고 기능 좋은 옷이 많아 선택도 쉽지 않았다. 심사숙고 끝에 모량이 풍부한 포도가 답답해하지 않을 니트재질 옷 2개를 샀다. 잘 늘어나는 실로 짠 제품이라 비쌌지만 첫 옷은 좋을 걸 입히고 싶었다. 남편과 나는 옷 입은 포도를 상상하며 실실 웃음이 나왔다.
옷을 처음 본 포도는 냄새를 맡고 발로 긁어대며 호기심을 보였다. 거부감이 없으니 스타트는 성공. 남편은 조심스럽게 옷을 입히고 바닥에 내려놨다. 근데 이 녀석, 움직이질 않는다. 얼굴은 웃는 거 같은데 얼음이 된 듯 온몸이 굳어있다. 가족 모두가 불러도 꿈쩍하지 않는다. 포도는 눈으로 ‘나 불편하다, 벗겨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다음날, 그다음 날도 똑같았다. 털도 많은 아이가 옷을 입으면 얼마나 답답할까. 쓸데없는 짓을 했다 싶었고 아쉬웠다.
첫 옷 입히기를 실패하고 더 이상 시도하지 않았다. 비나 눈이 오면 여지없이 옷 생각이 났다. 매일 아침 실외배변을 하는 포도는 털도 금방 지저분해진다. 옷을 입히면 털관리도 쉽고 산책 후 뒷일도 쉬울 텐데 생각으로만 그쳤다.
이번 겨울, 창고형 매장에 가니 강아지옷을 판매하고 있었다. 색이며 디자인이 너무 예뻤다. 포도가 입은 모습을 상상하니 불쑥 사고 싶었다.
“자기야, 이거 포도한테 잘 어울리겠지? 살까?”
“싫어할 거 같은데... 입히고 싶어?”
“다시 한번 입혀보자. 안되면 반품하고. “
예전과 다르게 기대보다는 당연히 싫어할 거라는 예상을 했고 다시 시도하기로 했다.
함박눈이 내리는 날, 드디어 기회가 왔다. 우선 냄새를 맡게 했다. 잠깐의 관심만 보인다. 남편은 서둘러 몸을 덮고 찍찍이를 붙였다. 아니나 다를까 예전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혹시나 싶어 현관으로 가서 불러본다.
“포도야, 산책 가자~”
세상에나, 산책이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현관으로 달려간다. 내가 잘 못 본 건 아닌데, 믿을 수가 없었다. 밖으로 나와서도 아무렇지 않게 볼일을 보고 냄새를 맡는다. 다른 때와 똑같이 움직인다. 남편과 나는 함박웃음이 나왔다. 포도가 옷을 입고 산책하는 것을 보다니, 12년 만에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12년 동안 강아지 용품점에서 파는 옷을 보거나, 겨울에 예쁜 옷을 입은 아이들을 보며 느낀 부러움과 아쉬움이 거품처럼 사라졌다. 펑펑 쏟아지는 눈에 털이 젖을 염려도 사라졌다. 옷을 벗겨보니 머리와 발만 젖어 있어서 뒷일도 수월했다. 다음엔 어떤 옷을 살까 하는 행복한 고민도 한다.
아무렇지 않은 녀석이 정말 예쁘지만 한 편으론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싶어 안타깝다. 옷 입히는 것이 소망이었는데 소망을 이루니 나이 들며 변한 포도가 고스란히 느껴져 마음이 아프다.
12년 만의 옷 입히기, 성공이 걱정으로 변했고 짧아진 포도의 시간이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는 감정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