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철학자가 됩니다(8)
인간의 시야각은 130도가 평균이다.
시야각을 벗어난 230도 볼 수 없다.
고개를 돌리지 않으면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360도를 보기 원한다.
어둡고, 볼 수 없는 것을 보기 원한다.
뒷머리가 떠 있으면 어쩌나, 바지엉덩이에 무언가 묻지 않았을까.
그래서 기계를 사용하거나 거울을 이용한다.
어둠에 가려진, 보이지 않는 230도를 위해서 말이다.
어둠에 가려진 것을 보았을 때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았을 때
차라리 보지 말 걸, 이라는 후회가 들 때가 있다.
그럼에도 난 어두운 곳, 보이지 않는 곳이 보고 싶다.
단순히 호기심의 문제가 아니다.
믿음의 문제다.
내 뒤에 무엇이 있는지, 어두운 곳에 혹시나 위험한 어떤 것이 숨어 있지 않는지,
그래서 나나 당신이 위험성에 노출된 채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세상에 대한 믿음을 얻기 위해서, 나는 어두운 곳이 밝게 드러났으면 한다.
미련하지만, 놀랍도록 아둔하지만
나는 여전히 사람을 믿는다.
더 좋은 나라가 되길 바라고, 더 좋은 사람들이 국가를 위해 일했으면 좋겠다.
사회적 문제들이 해결되고, 외교적 마찰이 사라지며, 인권이 유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그들이 원하는 건 분명하다.
바로 그들의 이익. 러시아의 이익이다. 다른 건 없다.
사회적 시스템은 우리에게 눈 앞을 보라고 말한다.
130도의 시야각 안에 들어온 것들만 보라고.
130도의 시야각 안에는
내 집 값, 내 월급, 교육비, 세금 같은 것들이 있다.
또한 건강, 보험, 문화생활 같은 것들도 있다.
정치의 이면, 분쟁의 이면, 권력의 이면에 눈을 돌리지 못하게 만든다.
혐오를 통해서.
(혐오와 관련해서는 정리를 좀 해야할 것 같다. 스터디를 좀 진행한 후에!)
아무튼 우리는 빛을 보는 각도가 시각의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보는 일. 그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