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밸런스의 향연
나의 첫 직장은 스파르타, 실질적으로 말하면 진짜 빡셌다.
*빡세다: [형용사] (속되게) 하는 일이 힘들고 고되다.
매우 엄격하고 규율이 많았고, 안 따르면 큰일이 났다. 또 하나의 학교와 같았다.
메일 쓸 때 오탈자는 당연히 허용이 안되고, 모든 폰트는 통일 (이것들은 다른 회사들도 마찬가지)해야 한다. 그리고 글머리 기호는 반드시 - 또는 * 만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은 '프로페셔널 블루' 컬러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
'프로페셔널 블루'가 무슨 색깔인지 아시는 분?
아는 사람이 있다면 나와 같은 회사에 다녔던 사람임에 틀림 없다.
푸르딩딩하거나 희여멀겋지 않고, 쨍쨍하여 가시성이 좋은 프로페셔널 블루! 어쩌다 실수로 프로페셔널 블루가 아닌 다른 색을 쓰는 날엔 "그 파란색 말고!!!"로 시작하는 기나 긴 가르침의 말씀을 들어야만 했다.
문서 작성시엔 엔터도 함부로 쳐선 안됐고, 줄바꿈도 맘대로 할 수 없었다. 혹시라도 스페이스가 두 번 들어가는 일은 절대절대 있어서는 안됐다. 내가 맡고 있는 클라이언트에 관한 부정 이슈가 없는지 눈을 뜨고 있는 순간엔 계속 기사 검색을 해야 했고, 혹시라도 놓치는 날엔 그 날엔.... (아.. 꽤 오래 전 일인데도 다시 떠올리기 싫다^^)
회사에서는 옷은 가장 시크하면서 혹시라도 상갓집에 가게 되어도 끄떡 없는 '올 블랙'을 늘 추천했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옷장엔 블랙만 가득해지고...
그 동안 사회 분위기가 엄청나게 바뀌었으니 아마 그 회사도 지금은 이런 규율들이 많이 완화됐을 거다. 완화되었겠지? 완화되었길...
늘 회사 다니던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던 그 때 그 시절.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첫 직장이 너무나도 '빡셌기에' 이 후 다닌 직장들은 상대적으로 굉장히 수월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반면 회사 생활이 힘든 만큼 동료애는 너무나 끈끈했다. 회사에서 깨진 날엔, 이름도 귀여운 '발모아 족발'에 가서 막걸리와 족발을 먹으며 회사를 질근질근 씹으며 서로를 위로했다. 그 시절 같이 족발을 먹은 언니와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연락을 주고 받고 서로를 챙기며 지내고 있다. 그 언니도 나도, 이제는 OOOOOO 직원이 아닌 한 아이의 엄마이자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 회사에 있었던 주옥같은 에피소드를 회상하며 즐거워 한다.
역시 세상 모든 일엔 장/단점이 있다. 인생은 밸런스의 향연! 장점만 있는 것도, 단점만 있는 것도 없다.
스파르타 회사에서 힘든 시간을 보낸 덕분에, 다음 직장이 수월해졌고, 친한 언니가 생겼고, 친한 언니와 함께 이야기 나눌 수많은 사건들을 얻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문서 작성할 때 '역시 블루는 프로페셔널 블루지!' 하며 쨍쨍한 파란색을 고르고, '옷은 역시 블랙이 유행도 안타고 좋지!'라 생각하며 검정 옷을 고르는 내 모습을 보면...
첫 직장은 진짜로 중요하다.
(참고: 이 색깔은 프로페셔널 블루 아님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