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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수집가 Feb 14. 2024

우리말 맞나요? 핍진(逼眞)하다

핍진(逼眞)하다

핍진하다니, 거 정체가 뭐요?


핍진하다’, 인터넷에서 이 단어를 검색하면 어떤 분이 사십 평생 처음 들어 본 단어라 SNS에 기록한다 라고 쓴 글이 있더군요. 그만큼 우리말인데도 외국어 같은 느낌의 단어라 막상 이 단어의 뜻을 모른 채 글에서 접하면 아주 당황하게 될 거예요. 문맥으로 대충 짐작할 수 있는 단어들도 있는가 하면 도저히 뜻을 추론하기 힘든 단어도 있는데, 이 ‘핍진하다’가 후자에 속하는 단어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 핍진(逼眞)하다: ① 실물과 아주 비슷하다.  ② 사정이나 표현이 진실하여 거짓이 없다.

   [예] ① 그 작가의 필치는 생동하고 표현은 핍진하다.      

 

‘진실과 가까운 정도’를 말할 때 ‘핍진성(verisimilitude)’은 라틴어의 ‘진실(very)’‘같은(simmilis)’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핍진(逼眞)’의 한자 구성을 보면 ‘닥칠 핍(逼)’에 ‘참 진(眞)’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진실된 것에 가까이 가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두 단어 가운데 ‘참 진(眞)’에 의미의 핵심이 있다고 기억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예스러운 문장으로 이해가 좀 어려울 수 있지만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정조실록에 나와 있는 쓰임새를 살펴볼게요. 그림을 그리는 과정, 즉 실물과 아주 비슷하게 그리기가 어려움을 얘기하는 과정에서 ‘핍진’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쓰던 단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대저 진상(眞像)을 그림에 있어 핍진하게 하기가 가장 어려운 것이다. 가령 대면해서 모사(模寫)한 칠분의 진본(眞本)이라 할지라도 털 하나 머리카락 하나가 어긋나지 않기를 바라기는 어려운 것인데 ….

- 번역 정조실록 -


최근에도 다음과 같은 작가의 인터뷰에서 이 단어가 아주 적절하게 사용되며 작가의 생각을 잘 드러내 주었네요. 단어로 승부를 거는 소설가다운 인터뷰라는 생각이 듭니다.   

                       

MZ 소설가 장류진 핍진하게 쓰고 싶어요

… 소설 속 인물들에게 있어서 직장은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바로 ‘현실성’이다. “저에겐 늘 핍진하게 쓰고 싶다는 욕구가 있어요. 이야기를 쓰면서 인물을 그리다 보면 뭐로 벌어먹고 사는지에 대해선 말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하략) (뉴시스, 2023. 7. 8.)


과거 정조실록에서부터 현대 장류진 작가까지,

 ‘나만 빼고 다 쓰는’ 것만 같은 ‘핍진하다’, 그 쓰임새가 이해되시나요? 한번 이해해 두면 여러모로 언어생활에 도움이 될 것 같은 단어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해하지만 말고 꺼내어 쓰기, 실천하실 거죠?     



<문해력이 쑥쑥, 한 줄 요약>

핍진하다는 참[]된 것



● 문학에서의 ‘핍진성(逼眞性)’

문학 작품에서 텍스트에 대해 신뢰할 만하고 개연성이 있다고 독자에게 납득시키는 정도를 문학 용어로 핍진성이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현실적으로 있을 법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품 내적인 논리성(인과 관계 등)을 따지는 개연성(蓋然性)과는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개념입니다.

핍진성은 문학 비평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여겨지는데요. 이 표현이 작품의 깊이와 세심한 묘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핍진성이라는 기준은 우리가 문학 작품을 읽을 때 작품 속 세계가 얼마나 다채롭게 표현되었는지, 작가가 얼마나 정교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는지를 판단하는 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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