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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수집가 Sep 07. 2021

형님 반에 간다네

지금 육아의 절정에 육박해 있는 엄마들에게

형님 반에 간다네


내가 처음 사랑 반에
들어왔을 때에는
나는 아주 어리고
모르는 것 많았네
이젠 한 살 더 먹어서
몸도 많이 자라고
생각들도 자라서
형님반에 간다네

"형님 반에 간다네."


다섯 살에 유치원에 들어간 너는 자주 잔병치레를 했다.


어린이집을 거치면서 시작된 온갖 종류의 감기와 염증들은 이렇게 작은 아이에게 이렇게 많은 약을 이렇게 자주 먹여도 되는 건지 불안할 정도로 처방되었다. 콧물이 목으로 넘어가는 후비루로 똑바로 누워서는 깊은 잠을 못 이루는 너를 무릎 위에 비스듬히 안고 가까스로 잠에 든 너와 새벽 시계의 초침을 번갈아 바라보던 나의 밤은 어지러웠다. 잠투정을 하는 아이를 다독인다, 이 문장은 매우 평화롭지만 그 평화는 한 여자의 내적 전쟁을 통해서만 지켜질 수 있었다. 너와 함께 청하는 잠은 불안의 거리에서 대상 모를 그리움과 치열함과 적막의 이불을 덮고 눕는 일이었다. 서서히 어둠이 걷히고 주변이 밝아지는 새벽이 몰려올 때면 우리의 이 불면의 밤도 어서 그처럼 걷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 시절, 영과 육은 하나라는 것은 신념이 아닌 현실이 되었다. 몸이 아프면 마음이 아팠고, 마음이 아프면 어느새 몸도 같이 통증을 느꼈다. 너와 나의 시간은 노랑나비가 유리 창문을 훓듯 매우 더디게 흘러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언제나 노래를 흥얼거렸다.


유치원에서 배운 것들과 텔레비전에서 귀동냥으로 얻어 들은 노래들이 한데 뒤섞인 정체 모를 멜로디와 가사들은 엄마를 자주 웃게 했다. 뜨뜻한 물을 욕조에 가득 채우고 이미 신이 잔뜩 난 너를 담가 놓으면 너는 미니 자동차 장난감과 함께 '달리는 기분, 달리는 기분, 달리는 기분' 만을 음정과 박자 모두 무시한 채 열 번씩 반복하던 때이른 캐롤을 불러댔다. 그럴 때면 그 달의 크리스마스가 우리 곁으로 달려왔다. 너와 함께 하는 시간들은 그렇게 온통 뒤죽박죽이었지만 아무 문제는 없었다. 개구쟁이어도 좋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이 말이 그 누군가의 진심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 당시에 쓴 페이스북의 글


그렇게 철 모르는 노래와 함께 봄 여름 가을이 무심히 지나가고 겨울이 깊어갈 무렵, 너는 집에 와서 색종이를 접으며 저 노래를 흥얼거렸다. '생각들도 자라서' 부분을 부를 때는 목청이 한껏 높아졌다. '형님 반에 간다네' 부분에서는 여섯 살을 앞둔 다섯 살의 숨기지 못하는 진한 만족감이 새어나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또래들을 만날 때마다 나이를 먼저 물을 만큼 여섯 살이 됨을 자랑스러워 하던 시절이었다.


어쩌면 너는 그때부터 이미 나를 키워오고 있던 것이다.


아주 어리고 모르는 것 많던 너는 한 살을 더 먹어 몸과 생각들이 자랐다. 그리고 '형님'이 되었다.


한없이 퍼부어도 밑으로 죽죽 물만 빠지던 시루 속의 콩나물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처럼, 엄마가 처음인 엄마의 당혹감과 불안감 속에 너를 키우는 일은 참으로 아득하였다. 육아라는 육상 경기는 긴 마라톤 코스인데다 곳곳이 장애물 달리기 구간처럼 느껴졌는데 이 엄마는 그 허들을 겨우 넘고 나서도 쓰러져 있던 허들 생각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던 미숙한 선수였다.


하지만 어쩌면 너는 그 노래를 내게 들려주던 그때부터 이미 나를 키워오고 있던 것이다. 한 페이지도 채우지 못하는 그 불면의 밤들을 기억하며 이제야 엄마는 웃으며 얼굴을 붉힌다. 육아 까페의 지친 하소연에도 추억을 꺼내보는 숙련자가 되었다. 엄마 또한 아주 어리고 모르는 것 많았기에, 한 살 한 살을 먹어 몸과 생각들이 자라서 이제야 기어코 '엄마'가 되었기에. 이렇게 소심한 호언장담을 하며 지금 절정에 육박해 있는 엄마와 아가들에게, 그리고 그 시절의 너와 나에게 안부의 인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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