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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수집가 Aug 27. 2021

엄마한테 은머리가 있어.

노인에서 숙인으로, 흰머리에서 은머리로

어느 날 아이가 내 옆에 바싹 다가오더니 한 마디를 한다.


엄마, 엄마한테 은머리가 있어. 많아.

나의 30대를 함께 시작한 은머리


어느 평범한 날의 오후였을 것이다. 대학원 후배들과 점심을 먹고 걸어가고 있는데 후배 한 명의 말이 나를 멈춰 세웠다.


"언니, 잠시만요. 여기 흰머리 있어요."

"흰머리? 뭐야, 얼른 뽑아줘!"


그득한 점심 식사에 나른하던 여자 서넛은 가던 길을 멈춰 서고 부산스레 한 여자의 뒤통수에 달라붙어 몹쓸 녀석을 색출, 뿌리째 뽑아낸다. 호들갑을 떨긴 했지만 막상 후배가 건네 준 그 흰머리를 보고도 눈앞이 하얘지진 않았다. 오히려 '너도 이제 다 컸어'하고 얘기해 주는 무언의 메시지 같기도 한 게 내 몸에서 처음 발견한 흰머리가 흥미롭기까지 했다.  


어렸을 때는 발이 점점 커서 신발을 사고,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이 되어 교복을 다시 맞추었으며, 학생증에서 주민등록증을 새로 받으며 성장 과업을 인정받아왔다. 그 일들은 설레고 새로웠다. 나만 신발을 사고 나만 고등학생이 된 것처럼 그랬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일은 한 계단 한 계단 나아가게 되는 나의 성장 과업에 만족하며 스스로 취해 있을 여유라곤 없는 내적 외적 변화를 의미한다. 나의 흰머리를 군말 없이 수용하게 되었던 그 해는 15시간의 난산 끝에 제왕절개로 3.85킬로그램의 건장한 아들을 낳은 해였고, 해산한지 두 달 만에 주 3회 대전과 서울을 KTX로 오가며 박사과정을 시작한 해였고, '나도 이제 30대구나'를 입에 달고 살던 서른한 살의 봄이었다. 흰머리는 많은 과업을 통과해 서른에 진입한 스스로에 대한 일종의 수료증과도 같았다.


너는 내 골칫거리 흰머리를 은머리라 불러 주었다.


그렇게 흰머리를 겸허하고 비장하게 받아들였건만 이후의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못했다. 어쩌다 눈에 띄는 흰머리 두어 개는 삶의 훈장같았는데 이것들이 잡초 뽑듯 틈틈이 정리할 수준을 넘어서자 골칫거리가 되었다. 게다가 후배가 뽑아 준 흰머리의 위치는 분명 뒤통수 언저리였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후로 돋아나는 흰머리는 얄밉게도 이마 위, 가르마 한 가운데로 집중되었다. 나의 키는 어깨동무를 불러일으키는 참으로 겸손한 사이즈이니 누구를 만나도 먼저 눈에 들어오는 위치에 딱 그렇게 흰머리들은 돋아났다. 그리고 고스란히 나의 스트레스와 한탄의 집중 포화를 맞는 대상이 되었다.


그런 내게 너는 은머리를 발견하였다. 은머리, 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 너의 눈빛은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고 목소리는 은구슬이 굴러가듯 맑고 다정했다. 너의 눈에 들어온 엄마의 흰머리는 반짝거렸고 네가 유달리 좋아하던 은색 크레파스처럼, 소중히 아끼느라 잘 꺼내 쓰지도 않았던 색종이의 은색 스티커처럼 빛이 났을 것이다. 엄마는 그 반짝거림이 싫었는데 말이다.


늙음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들

요즘은 폐경을 완경이라 바꿔 부르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다. '폐'라는 글자의 부정적인 어감을 없애고 월경을 완성한다는 의미에서 쓰는 표현이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완경을 한참이나 멀리 두고 있는 나이였음에도 새로운 관점을 접한 놀라움과 은은한 감동이 밀려왔었다. 여자아이들이 처음 월경을 시작할 때 월경 축하 파티를 한다고 하는데, 이제 폐경이 아닌 완경에도 그런 기쁨을 맞지 못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몸과 마음이 예전 같지 않고 기억 또한 가물가물해지는 순간을 언뜻언뜻 경험하면서 늙어감에 대한 생각은 하루가 다르다. 늙음을 알면서도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누구나 그 앞에 평등함을 감안할 때 늙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이 곱지 못한 것은 슬픈 일이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낯선 표현이지만 일본에선 노인을 숙인이라 부른다고도 한다. '숙'이라는 글자는 '익어감'을 의미한다. 똑같은 시간의 흐름이지만 '로'는 후퇴이나 '숙'은 익어감이다. 깊은 생각을 숙고라 하고 익은 기술을 숙련이라 하듯.


완경과 숙인이라는 단어는 나이가 들어감을 낡아지고 노쇠해지는 것이 아닌 완성되고 익어가는 것으로 바라보는 마음들이다.



뒤돌아 생각해 보니 아들의 시선은 더욱 놀라웠다.

영어 단어 'silver'는 '백발이 되다'로 번역된다. 백색을 사랑하는 민족이어서 그럴까. 그러고 보니 번역이 다소 아쉽다. 은색과 백색에 어감의 차이가 내재되어 있지는 않으나 백발에서 느껴지는 왠지 모를 슬픔과 패배감이 은발에는 없다. 흰머리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은발에 가깝기도 한 듯하다.


너는 그런 사회적인 감각 없이도 보이는 그대로 흰 것이 아닌 빛나는 은빛으로 불러 주었다.


꼼짝없는 늙음을 보여 주는 흰머리를 은머리라 불러준 아들 덕에, 나는 이 은머리들이 온 머리를 뒤덮을 그 날이 조금은 덜 싫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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