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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수집가 Jan 10. 2021

아들이 알려주는 초등 친구 사귀기 네 가지 요령

초등학생 아들 엄마 필독!

반 배정을 받아왔어요!


초3 아들이 어제 반 배정을 받아왔다. 세 번째 진급이건만 그 출발을 알리는 학급 배정은 여전히 설레고 짜릿하다. 제일 친한 친구 서윤이와는 같은 반이 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반에서 두 번째로 친한 아이와 같은 반이 되어서 그럭저럭 만족해하는 눈치다.

그러더니 저녁을 먹으며 갑자기 '아 OO가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할 텐데...' 하며 뜬금없는 남 걱정을 시작한다. OO는 아이의 절친인데 너무 수줍음이 많아서 공개 수업 때 유일하게 발표도 인사도 하지 않던 아이다. 그런데도 야구, 태권도, 게임 등 이런저런 관심사가 서로 비슷하여 일 년을 너무 재미나게 보냈던 친구다. 


엄마, 친구는 이렇게 사귀면 돼!


- OO가 걱정돼?

- 응. 걔가 너무 부끄러움이 많아서 친구를 못 사귀어. 반에서도 나하고만 말해.

- 그럼 너는 새 학년 올라가서 친구 사귀는 거 걱정 안 돼?

- 난 걱정 안 하는데?

- 그래? 비법이 뭔데.

- 일단 먼저 '야~ 지우개 따기 할 사람! ' 하고 애들을 모아. 지우개 따기 같은 건 누구나 좋아하는 놀이거든. 친구들이 최대한 좋아하는 걸 내가 먼저 불러서 해. 그러면 애들이 가만히 있다가도 내 주위로 몰려와서 지우개 따기를 해.

- 아, 진짜 좋은 방법이다.

- 그다음으로는 일단 남자 애들하고 친해지는 게 먼저야. 남자 애들하고 친해져야 여자 애들하고도 친해질 수 있거든.

- (뭔가 모를 감동이 밀려오는 것을 잠시 감추고) 그렇구나. 남자 애들하곤 어떻게 친해질 수 있어?

- 일단 걔랑 나랑 공통점이 있어야 해. 우리 태권도장 체육복을 똑같이 입은 아이를 보면 먼저 가서 말을 걸기가 좋아. '야, 너도 ㅁㅁ태권도 다니지? 나는 OOO인데 너는 이름이 뭐야? 나는 야구를 좋아하는데 넌 뭘 좋아해?' 하고 물어. 그리고 걔가 나랑 똑같은 걸 좋아하면 그때부터 친구가 되는 거야.

- 와, 엄마는 전혀 모르던 우리 아들의 모습이네. 너 수줍음 많잖아.

- 응, 근데 나 학교에선 안 그래. 그리고 그 다음에는 친구의 친구를 잘 알아둬야 해.

- 그게 무슨 말이야?

- 친구랑은 이미 친해져서 괜찮은데 친구의 친구는 잘 모르잖아. 근데 친구의 친구를 알아두면 나중에 어디서 보더라도 쉽게 친해져.



내 기억 속에서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확신에 차서 말한 적은 없었다. 대개의 남자아이들이 그렇듯 무얼 물어도 단답형 위주의 대답이 주를 이뤘지 무언가를 이렇게 길게 말한 적이 없는 아이였다. 그런데 어느새 초등학생이 되었다고 친구를 사귀는 방법을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었다. 전에는 느껴본 적 없는 뿌듯한 감정이 가슴 한쪽부터 꽉 차게 밀려오는 저녁이었다.


사실 유치원 다닐 때는 외동 특유의 수줍음이 많아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엄마 뒤에 숨기 일쑤였다. 게다가 다른 지역에서 유치원을 졸업한 후 이사를 와서 친구가 하나도 없는 상태로 입학을 해야만 하는 상황 때문에 엄마는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이렇게 어느덧 씩씩하게 친구를 먼저 사귀기 위해 노력하는 의젓한 초등학생이 되어 있으니, 물만 주어도 자라는 콩나물을 보듯 대견하고 고마운 감정이 앞섰다.

 

무심한 엄마가 나름대로 분석을 해 보자면 야구나 농구처럼  또래와 어울릴 수 있는 스포츠를 많이 하고 보여 주고 스마트폰 게임도 적당히 해 주면서 또래 문화에 노출을 시킨 게 일부 도움이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TV와 스마트폰 게임도 적절한 시간 제한을 두고 하는 법을 익혀주었더니 유희의 즐거움도 알고 아쉬움 속에서도 그것들을 멈출 때도 아는 아이가 되어 주었다.


무엇보다 이 밥상머리 대화를 통해 친구를 사귀기 위한 아이의 노력을 볼 수 있었고, 친구관계가 원만했던 것도 엄마는 미처 몰랐던 너의 노력의 일부였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시큰했다. 오늘 확인한 가정통신문 행동발달 사항란에 담임 선생님께서 써 주신 '... 인기가 많은 친구입니다....'라는 문구도 그냥 듣기 좋으라고 쓰신 말 만은 아니겠구나 생각하게 되어 아이의 학교생활에 대한 걱정을 한시름 덜 수 있었다.




마스크 속 친구 얼굴을 알지 못한다는 뉴스 기사가 부모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아직 학교에 가지 않은 어린 아이들은 동화책 속 주인공이 왜 마스크를 안 쓰고 있냐 묻는다고 한다. 코로나로 잃어버린 2020년의 친구 사귀기가 2021년에는 두 배, 세 배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날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지금도 조그만 고무공을 가지고 슈팅 연습에 정신을 빼앗긴 아들을 바라보며 그 간절함을 더욱 보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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