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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수집가 Jul 15. 2021

아이가 알약을 삼킨다는 것은(알약 먹이기)

세상의 장애물을 꿀꺽 삼켜버리는 일이다

그 어떤 과제도 이르거나 혹은 늦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아이의 호흡에 엄마가 맞추면 그만이다. 이 생존 리얼리티 쇼의 카메라는 모두에게 공평히 제공되어 있으며 제각각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모두 이 쇼를 기획한 신의 아름다운 계획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와 엄마는 순간순간의 크고 작은 과제 앞에 놓이게 된다. 배밀이, 통잠 기, 기저귀 떼기와 같은 유아기적 과제에서부터 친구 사귀기, 한글 익히기, 스스로 밥 먹기 같은 과제를 거치면서 두 사람은 ''이라는 거대 생존 리얼리티 쇼에서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출연자들처럼 때로 절망하고 때로 환호하며 매 순간 함께 하고 함께 자란다.


이 문제를 통과하면 이제 어떤 과제가 놓여 있을지, 수많은 글과 육아 선배들의 경험담으로부터 읽고 듣지만 사실 어떤 삶도 같은 삶이 없기에 엄마와 아이는 언제나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서로를 향한 강한 몰입과 신뢰로 더욱 힘주어 두 손을 맞잡게 되는 것 같다.


현재 나는 아이와 혼자 씻기, 혼자 학원 가기, 스스로 스마트폰 시간 조절하기 단계에 와 있다. 또래의 친구들은 이미 건너간 단계도 있고 아직 머리를 맞대고 신통한 방법을 찾기 위해 애쓰는 단계도 있을 것이기에 그 어떤 과제도 이르거나 혹은 늦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아이의 호흡에 엄마가 맞추면 그만이다. 이 생존 리얼리티 쇼의 카메라는 모두에게 공평히 제공되어 있으며 제각각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모두 이 쇼를 기획한 신의 아름다운 계획이다.



아이가 알약을 삼킨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인생의 쓴맛을 삼켜보는 커다란 경험이었다.


많은 과제 가운데 기억에 남는 과제가 있다. 그것은 '알약 먹기'.


내 아이는 일곱 살까지 시쳇말로 소아과 문턱을 닳도록 다녔다. 흔한 감기에서부터 비염, 축농증, 피부염, 모세기관지염, 장염 등 지금 생각하면 큰 병치레는 아니었기에 그 또한 감사할 일이었지만, '1주일 아프기, 2주일 약 먹기, 1주일 괜찮기'를 무슨 교육과정처럼 반복하던 그 굴레가 당시 나의 마음을 너무 괴롭게 했다. 제왕절개로 애를 낳아서인가, 박사과정을 한답시고 모유 수유를 한 달밖에 하지 않아서인가, 그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비루한 내 DNA 때문인가, 답도 없는 지독한 물음을 수십 번 떠올리는 과정은 스스로를 파먹어 들어가는 몹시도 지치는 일이었다.


뜻밖에도 이 과제는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 누가 그랬었다. 초등학교만 들어가면 귀신같이 나아진다고. 그런데 정말 그랬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는 '초등학교 백신'이라도 맞은 듯 감기와 염증을 훌훌 벗어던졌다. 일 년에 두세 번 앓게 되는 열감기와 계절에 따른 알레르기 비염도 엄마라는 존재의 숙명이기에 마음 아프지만 내색하지 않을 정도의 여유가 내게도 생겼다. 그러면서 예민하던 아이도 자신의 병치레에 대해 관대해졌다.


그런데 일 년에 두세 번 앓는 병치레에서 약의 복용이 새로운 과제로 제시되었다. 머리가 좀 컸다고 가루약은 쓰고, 물약은 맛이 없다며 거부 의사를 확고히 밝힌다. 남은 방법은 빻지 않은 알약을 물로 삼키는 것인데 아이는 극단적 공포감으로 이를 거부했다.


너 말이야, 한 수저 밥 떠먹는 것 생각해 봐. 알약은 겨우 밥알 두세 개 크기밖에 안 된다.
그래도 싫어. 목에 걸릴 것 같단 말이야.
밥도 한 수저 꿀꺽 삼키면서 이 작은 알약이 왜 안 넘어가겠어. 그러면 가루약 먹어야 돼.
너무 맛이 없어. 왜 몸에 좋은 건 다 쓰고 맛이 없는 거야?


흡사 자전거란 똑바로 서 있지 못하고 넘어지기 위한 물체인데 저걸 타고 달릴 수 있음을 믿지 못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 엄마와 나는 어떤 방법으로 이 과제를 해결했더라. 기억나지 않았고, 어느 순간 알약을 삼키는 나를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했던 장면만이 영화 속 한 필름처럼 희미하게 떠올랐다.


아이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약을 안 먹으면 기침이 계속 날 뿐이지만 알약을 먹다 목에 걸리면 죽을 것 같으니까. 이제 막 자신의 몸을 지키기 시작한 아이가 느낀 자신의 생명과 안위와 관련한 원초적 거부감을 어른의 관점으로 제대로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거부감을 없애야 할텐데, 알약에 눈코입을 그리고 '친구가 잠시 너의 식도를 타고 수영을 할 거야'라고 설명하기에는 알약이 너무 작았다.


그러다 내 눈에 들어온 식탁 위의 사탕. 며칠 전 편의점에서 불량식품이라고 잔소리하면서 사온 조그마한 사탕이 클로즈업되어 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꼭, 아이가 기침을 멈추기 위해 먹어야 할 알약과 사이즈가 같았다!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럼, 이거 먼저 삼켜 보는 연습을 해 보면 어때. 이건 삼키지 못하고 입안에 남아도 달콤하잖아.
아... 그럴까? 그러겠지? 그럼 줘 봐.


다들 짐작하시겠지만 물 한 모금과 사탕은 고맙게도 '내가 사탕이다'라는 존재감 없이 아이의 식도를 부드럽게 유영해 넘어갔다. 다소 긴장감 린 얼굴로 치켜들었던 고개를 내리고 아이는 빙긋, 웃었다. 그 웃음이 세상 너무 사랑스러웠다. 아이가 한 고개를 넘었음을, 다음 단계의 미션으로 넘어가도 됨을, 우린 함께 느꼈다.


엄마, 이거 되네. 하나도 안 힘들었어.
거봐, 니 목구멍이 생각보다 엄청 크고 넓다니까. 절대 안 걸려. 아니, 걸려도 다시 물로 삼키면 돼.


그거였다. 알약의 공포감을 사탕의 달콤함으로 바꾸고, 한번 해 보는 연습, 그게 다였다. 아이가 알약을 삼킨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인생의 쓴맛을 삼켜보는 커다란 경험이었다.


이제 다시 과제는 좀 더 구체화된다. 유재석 씨가 무한도전에서 놀면 뭐하니로 멋지게 넘어 왔듯이, 우리 아이가 주인공인 생존 리얼리티 예능의 과제도 점점 정교화된다. 그것을 통과하면 아이는 어느새 더 자라 있을 것이다.


최근 코로나 시국으로 행동반경이 줄어든 탓인지 소화 불량을 호소하는 아이가 많아졌다고 한다. 이것은 어젯밤 소화가 안 된다고 찡그리는 아이를 데리고 방문한 소아과 원장님의 설명이다. 아이는 다시 오랜만에 자그마한 알약을 만났다. 물론 병원을 가기 전 아이와 다시 한번 그때의 경험을 소환한다.


약 뭐로 지어 달라고 할까? 알약 괜찮겠어?
음, 너무 크지만 않으면 알약이 좋아. 쓰지도 않고, 삼킬 만해.


아이는 의사 선생님께 말한다.


저, 알약으로 주세요. 근데 엄마가 먹는 비타민같이 크진 않죠?


이제 다시 과제는 좀 더 구체화된다. 유재석 씨가 무한도전에서 놀면 뭐하니로 멋지게 넘어 왔듯이, 우리 아이가 주인공인 생존 리얼리티 예능의 과제도 점점 정교화된다. 그것을 통과하면 아이는 어느새 더 자라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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