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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숨 Jun 30. 2023

명상과 종교를 분리할 수 있을까?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영적이다'라는 말

명상을 배우면 배울수록 내가 이렇게나 끊임없이 망상에 빠져사는 사람이란 걸 선명히 깨닫는 것 말고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명상과 종교, 즉 명상과 불교를 분리할 수 있을까? 아니, 불교를 믿지 않고도 명상 수행을 이어갈 수 있을까? 이러다 불교 신자가 돼버리는 건 아닐까? 앞서 걱정한 적이 있다. 난 단지 명상을 배우고 싶었을 뿐 종교인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명상에 웬 불교?라고 할 수도 있지만 명상은 약 2,500년 전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개발한 '수행 방식'이다. 즉 명상의 뿌리를 따라가다 보면 불교, 붓다라는 단어가 끊임없이 나온다. 부처도 명상을 통해 진리를 깨달았고 당시의 수행 방식을 부처의 제자들이 기록으로 남겨 지금까지 전해진 것이다.


이를 지금 시대에 맞춰 다듬고 단순화한 것이 사마타, 위빠사나 수행이라 불리는 지금의 명상 수행 방식이다. (그래서 명상은 ‘수행’이란 말과 같이 쓰인다.) 어쩐지 절에 가면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불상이 온화한 미소를 띤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모습도 괜히 생긴 게 아닌 것 같다.


그러니 명상 서적을 읽으면 읽을수록 불교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건 당연했고 세계에서 유명한 명상지도자들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스님인 혹은 스님이었던 경우가 많았다. 난 원래도 무교였고 앞으로도 종교를 믿을 계획이 없고 눈에 보이지 않는 초월적 존재를 믿는다는 것에 의구심이 있는 사람이라 '내가 왜 불교를 공부하는 것만 같지?' 거부감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럼에도 책에 나오는 불교 철학은 정말 매력적이었고 심지어 재밌었다.




명상을 배우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영감을 받았던 내용이, 이 세상에 진정 나라고 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가진 재산, 직업, 몸, 가족, 인간관계, 물건은 모두 일시적이며 지금도 변화하고 있고 현재의 모습이 평생 이어지지 않는다. 평생 젊은 몸으로 살 수 없고 인간관계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죽음 앞에선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돈, 자산, 커리어는 아무 의미가 없다. 죽음 너머로 가져갈 수 없으니까.


그러니 내가 가진 것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 거다. 속세를 떠나 살자거나 허무주의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지금 내 위치에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현재를 만끽하되 이루고 싶은 것을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이상적인 모습의 내가 되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에 너무 집착하거나 낙담할 필요는 없단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변화하고 일시적이기 때문에. 



어느 날 수업에서 선생님이 최근 귀감이 된 말이라며 ‘SBNR’이란 단어를 알려줬다. 풀어쓰면 ‘Spiritual but not religious’.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진 않은. 종교가 없지만 본인 스스로를 영적인 사람이라 정의할 때 쓰는 문구였다. 영적인 것과 종교적인 걸 구분할 수 있다니? 아니 이런 말이 존재한다니! 태어나 처음 접해본 시각이었다.


저 말을 되뇔수록 불교를 믿지 않고도 명상에 전념할 수 있다는 말로 들렸다. 명상은 개인이 믿는 종교와 전혀 무관하며 그저 굉장히 영적인 활동이다. 신부님이 명상을 배우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말이다. 불교 철학도 알면 알 수록 종교적이라기보다 삶의 철학에 더 가깝다고 느꼈다. '이걸 왜 종교라고 부르는 거지?' 싶을 정도였으니까.


불교는 그동안 만나본 종교 중 유일하게 초월적인 존재가 아닌 현실과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던 종교이기도 했다. 평생 종교를 가져본 적이 없어 자꾸만 불교 이야기가 명상에 섞여 나오는 것에 알게 모르게 거부감이 생겼는데 저 문구가 괜한 위로가 되면서 그동안 내 걱정이 얼마나 쓸데없는지 깨달았다.





명상을 하고 수행을 이어나가기 위해 불교를 믿을 필요는 없다. 수행의 깊이를 위해 불교 철학을 공부하고 그 내용이 마음에 들면 그거로 그만이다. 명상은 애초에 내게 무언가를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것의 역사와 철학을 따라가다 보니 불교라는 뿌리를 만나게 됐을 뿐. 불교 철학도 하나의 학문으로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면서 이 걱정을 다시는 하지 않게 됐다. 누구를 믿고 말고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당장 내 앞에 그것보다 훨씬 멋지고 중요한 세계가 펼쳐지고 있으니까. 어쩌면 불교는 나를 잡아먹을 생각이 없는데 지레 겁부터 먹었는지도 모른다. 자, 이제 고민은 해결됐으니 명상하러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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