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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숨 Mar 04. 2024

K-POP 기획사에서 일한다는 것의 명과 암

경이로움과 무력감이 공존하는 곳

공무원 시험에 붙었으나 결국 관두고 일반 사기업 취업 준비로 돌아선 시점.

'이게 될까?' 싶었는데 간절히 원하면 된다더니 어느 K-POP 기획사에 입사하게 됐다.

나도 학창 시절에 한창 열광하던 오빠들이 있었고 그들을 응원하며 회사 욕도 많이 했는데

바로 그 '회사'에서 일하게 되다니. 인생은 내게 너무나도 의외의 선택지를 주었다.




K-POP 기획사로의 첫 출근

과연 앞으로 어떤 날들이 펼쳐질까. 연예인을 많이 볼 수 있으려나? 엔터 산업은 일도 힘들고 연봉도 짜다는데. 진짜 그럴까? 같이 일하게 될 사람들은 어떨까?


수많은 물음표와 떨리는 마음으로 다가온 첫 출근일. 이때만 해도 걱정보단 매일 출근할 곳이 있고 내 힘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기쁘고 감사하기만 했다.


그동안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서울의 어느 지하철역에 내려 회사에 도착했다. 근로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자리를 안내받았다. 팀 사람들에게 간단히 인사를 하고 앞으로 같은 업무를 맡게 될 사수와 부사수 느낌의 또래 친구 한 명과 회사 1층 카페로 내려왔다.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 인사를 나누며 '다들 되게 친절하다. 좋은 사람들 같아.'라며 내심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 일을 하면서 돈을 받는다고?

구체적인 업무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입사 초기에 꽤나 충격을 받은 건 예전에 덕질할 때나 소비하던 아티스트의 노래, 콘텐츠, 기사를 일하면서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집중해서. '돈 받으면서 이런 걸 보는 게 일이라니. 진짜 이래도 되는 거야?' 싶을 만큼 신기했고 심지어 경이롭기까지 했다. 재미없는 스프레드시트나 그래프가 아닌, 내가 재미로 소비하던 콘텐츠를 월급 받으면서 본다니?


(나중에 깨달았지만 이걸 뒤집어 생각하면 곧 남들이 놀 때 나는 일해야 한다는 의미도 된다. 사람들이 다같이 길게 쉬는 연휴나 연말연초, 명절, 발렌타인데이, 크리스마스 같은 기념일은 바야흐로 콘텐츠를 내야할 명목이 생기고 또 많이 소비되는 콘텐츠의 성수기니까.)



아이돌이 아닌 '아티스트'

기획사에 들어와 느낀 소소한 문화충격 중 하나는 우리가 흔히 아이돌, 가수라고 부르는 이들을 회사에서는 '아티스트'라고 부른다는 점이었다. 밖에서 보던 그들과 나 사이에 갑자기 엄청난 거리감이 생긴 기분이었다. 일하면 일할 수록 그들의 존재감과 아티스트라는 명칭이 갖는 무게도 서서히 느껴졌다. 중요한 업무 대화의 대부분은 아티스트로 시작해 아티스트로 끝났으니까.


'아티스트 도착 시간이 언제예요?'

'아티스트 가용 가능한가요?' (콘텐츠에 아티스트 출연이 가능한지 물어볼 때 많이 쓰는 말이다.)

'아티스트 초상 사용해도 되는 거예요?'

'아티스트 요청이라 어쩔 수 없대요.'


처음에는 기획사에 속한 아티스트가 여럿이다 보니 누가 누군지 헷갈리고 얼굴 분간도 어려워 애를 먹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업무에 익숙해질수록 그룹명, 멤버 개개인 이름과 얼굴, 아티스트명의 영어 알파벳 철자까지 달달 읊게 됐다. 대문자인지 소문자인지, 띄어쓰기가 어디에 들어가는지 안 들어가는지까지도. (엔터사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아티스트명 공식 표기법은 굉장히 중요하다.) 또 예전엔 트위터를 보고 '이게 뭐야?'라고 묻는 인간이었으나 어느새 매일 아침, 오후, 저녁마다 트위터에 들어가 무슨 일이 있나, 내가 모르는 이슈는 없나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슈 대응은 엔터사에 필수적인 일이므로.



 

기획사에서 일하는 것의 명과 암

K-POP 기획사에서 일하는 것의 특권 중 하나는 새로운 아티스트가 만들어지고 그들의 앨범이 제작되는 전 과정을 간접적으로나마 보고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화려한 무대 뒤 비하인더씬을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것.


밖에 있을 땐 앨범이 나오고 뮤직비디오가 공개되면 별생각 없이 결과물을 즐기고 평가하는 게 전부였다면 기획사에 들어와 하나의 앨범이 세상에 공개되기까지 거쳐야 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보게 되자 자연스레 겸손해졌다.


앨범의 큰 컨셉을 정하면 그때부터 어떤 곡을 담을 건지, 뮤직비디오는 어떻게 만들건지, 앨범 프로모션은 이번엔 어떻게 다르게 할 건지, 콘텐츠는 얼마나 낼 건지, 경쟁사가 이때 앨범이 나온다는데 우리는 언제 발매할건지에 대한 큰 결정부터 콘텐츠 하나에 들어가는 사진이나 워딩 같은 세세한 부분까지 모든 일이 논의와 결정의 연속이다.


일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간단하게 돌아가는 회사가 어디 있겠느냐만은 밖에서 별 생각없이 가볍게 소비하던 앨범 한 장 뒤에 이렇게 긴 과정이 있고 그렇게 탄생한 결과물의 무게가 상당하다는 걸 체감했기에 더 이상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앨범 하나 만드는데 왜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왜 그간 아티스트들이 앨범만 나오면 Thanks to를 구구절절 쓰는지, 아티스트 스케줄이라면 다들 혀를 내두르는데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화려한 모습으로 열광받는 아티스트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압축된 시간과 노력이 있었다.


그렇게 세상에 앨범이 나오면, 오랜 시간 기다려온 팬들은 아티스트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이며 그들의 '커리어 하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팬들의 마음에 보답하려는 아티스트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팬들을 보면서 이것은 아예 다른 차원의 사랑이라는 생각도 했다. 분명 이 산업은 매력적이었고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도 무궁무진해 보였다.



하지만 화려한 모습 뒤에도 어쩔 수 없이 어두운 면이 존재한다. 대중을 타깃으로 하고 트렌드를 빠르게 쫓아가는 건 물론 트렌드를 선도해야 하는 엔터 산업 특성상, 변화가 많고 속도가 빠르며 지켜보는 눈이 많은 만큼 변수도 많다. 갑자기 생겨나는 각종 사건사고는 어찌나 많은지 (그게 실무를 하며 생긴 일이든, 아티스트의 이슈이든, 세간의 이슈이든 뭐든 간에), 조용한 날이면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 정도다.


덕분에 모든 업무가 느긋하게 진행되는 법이 없다. 계획해 둔 앨범 발매 일정이 밀리는 건 당연하고 일정이 정해져도 대부분 과정이 급박하게 진행되고 얽혀있는 이해관계자가 많다 보니 예상치 못한 문제도 자주 일어난다. 그로 인해 언제든 대응해야 할 일도 참 많다. 예를 들면 앨범 정보 유출, 프로모션 일정 변동으로 인해 수반되는 작업들, 물 들어올 때 노 젓기 위한 콘텐츠 공개 등등.


퇴근을 해도, 주말이어도, 내가 어디서 어떤 일을 하고 있든 업무 연락을 받으면 언제든 노트북을 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일도 진행되지 않았으니까. 매일매일을 상시 대기조로 사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받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업무 강도에 상응하는 보상은 없고 매번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을 최대한으로 갈아내 매끈매끈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곳. 내가 경험한 엔터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그랬다.


이곳만의 매력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발을 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보통 엔터사는 야근이 많은데 포괄임금제가 대부분이고 내부에서도 '고질적인 문제인 건 아는데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개선하려고 노력해 보지만 금방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저 동료들끼리 욕하며 풀고 넘긴다. 왜냐면 다들 일만 하기에도 너무 바쁘고 힘드니까.



경이로움은 점차 무력감으로

그래서 점점 지쳐갔다. 처음에는 신기함 가득한 눈으로 '이런 곳에서 일하다니 엄청난 행운이야'라고 생각하던 내가 이제는 업무 메신저가 울리거나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가슴이 떨리고 그럴 때마다 피로감과 부담감이 배로 늘어갔다. '이번엔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걱정하면서. 별 거 아닌 일에도 쉽게 화가 나고 점점 불만만 늘어가고 공격적으로 변해가는 내 모습이 싫었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면 기다렸단 듯이 업무 생각이 머릿속을 치고 들어왔고 평일 대부분을 늘 긴장 속에서 보냈다.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내 삶이 영영 이렇게 흐르다 끝나버리면 어떡하지 무서웠다. 일이 내 삶을 자꾸만 쳐들어오고 소중한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을 방해하고 정신 건강까지 잡아먹고 있는데. 돌아보면 애초에 산업 자체가 나의 내성적인 성향이나 가치관과 맞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곳에서 하는 일의 재미가 더 커서 계속해나갈 수 있는 것 같던데 난 재미보다 피로감, 긴장감이 훨씬 컸다. 이곳을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 여기서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고 퇴근 후에는 짬짬이 이직 준비를 했다. 이것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으로. 그런데 세상 사 마음대로 될 리가 있나, 매번 간절함이 통하는 건 아닌가보다. 번번이 불합격 소식을 들으며 '이직이 되기는 할까?' 스스로를 의심하며 계속 지쳐만 가고 있었다.








*지난 글을 작년 11월에 발행하고서 이런저런 사정으로 다음 글을 이제야 쓰게 됐네요.

혹 이번 글을 기다리신 분들이 있다면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현생이 있다 보니 주기적인 발행을 약속하긴 어렵지만 다음 글은 이번보다 더 일찍 가져올게요.

궁금한 부분이 있다면 댓글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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