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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숨 May 28. 2023

명상을 배우면 이직이 될까?

흔히들 이직하기 가장 좋은 시기로 3년 차, 10년 차를 꼽는다. 나도 어엿한 3년 차가 되던 때, 회사에 불만도 많았고 조직개편으로 업무가 바뀌며 커리어가 자꾸만 쪼그라들고 있었다. 마음이 너무 괴로웠고 이대로 있다간 영영 이 회사를 못 떠나겠다 싶어 이직을 결심했다. 매일같이 경력직 공고를 들여다보고 여러 군데 지원했지만 족족 불합격 소식만 받았다.


몇 개월이 지나도 아무런 성과 없는 이 시간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 퇴근을 해도, 주말에도, 시도 때도 없이 긴급한 일 연락이 오는 이 회사를 어떻게 더 버텨야 할까. 마음은 계속 지쳐가고 있었고 이직에 도움이 된다는 유료 프로그램도 찾아 들어보고 도움도 얻었지만 그때뿐이었다. 힘든 내 마음을 달래줄 본질적인 해결책이 되진 못했다. 그러다 최후의 수단으로 찾아간 것이 명상이었다.




명상을 배우면 지금 이 힘든 마음을 조금이나마 다스릴 수 있을까?



명상에 대한 관심은 예전부터 막연하게 있었다. ‘명상이 그렇게 좋다던데. 언젠간 배워봐야지’ 생각만 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고 잡생각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지금이야 명상은 그게 아니란 걸 알지만 그땐 그랬다) 고요하면서 올곧은 모습이 참 멋져 보였다. 그러다 바로 지금이 그 ‘언젠가’라고 확신했다. 이것도 저것도 내 고민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지 못한다면 밑져야 본전이지. 명상을 한번 배워보기로 했다. 내가 그동안 찾던 해답이 명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그치만 정확히 말하면, 단순히 이직이 안 돼서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명상을 배운 건 아니었다. 최초의 생각은 그랬지만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수없이 있을 텐데 원하는 걸 이루지 못한다고 해서 매번 이렇게 힘들어할 수는 없으니까. 그때부턴 이직을 하기 위한 방법론이 아닌 힘든 마음을 스스로 보살피고 잘 달래서 다시 힘을 내 달리게 해 줄, 마음의 근육을 길러줄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처음엔 인터넷 강의로 명상을 배우다 한계를 느껴 명상 스튜디오를 찾아가 수업을 들었다. 오프라인으로 접한 명상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수업의 깊이가 훨씬 깊어졌다. 명상을 하는 방법을 정확히 배운 것도 좋았지만 사실 이보다 훨씬, 훨씬 좋았던 건 명상에 담긴 삶의 철학을 배운 것이었다. 명상이라고 하면 고요한 공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은 모습이 떠오르고 추상적이라는 인상을 주지만 오히려 그 안에 담긴 철학은 굉장히 실용적이고 현실과 맞닿아 있었다.


인간은 왜 괴로움에 빠질 수밖에 없는지. 실망, 좌절, 질투, 무기력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올 때 그것에 휩싸여 뭔가를 저지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착하면 호구라는 소리를 더 많이 듣는 씁쓸한 세상이지만 '내'가 돈을 많이 벌고 '나'만 잘 됐으면 좋겠고 '내'가 유명하고 잘난 사람이 됐으면 하는 마음엔 왜 한계가 있는지. 행복과 쾌락의 차이는 뭔지. 미디어에서 말하는 행복 말고, 진정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지. 이렇게 우리 삶에 대한 질문에 본질적인 답을 내주고 있었다. 그동안 몰랐던 고대 철학을 배우는 느낌이었다.


너무 재밌었다. 겉만 핥고 끝나는 그런 해결책 말고,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근본적인 답을 찾은 것 같았다.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삶을 바라보는 창이 뚫린 기분이었다. 명상을 배우면서 달라진 점 하나. 크고 작은 고민이 있을 때 더 이상 유튜브에 있는 자기 계발 영상을 찾아보거나 그것에 의지하지 않게 됐다. 본질을 알게 됐으니 더 이상 밖에서 답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었다. 오랜 시간 동안 해결되지 않던 갈증이 드디어 사라진 느낌이었다.




우연히 명상을 배우기 시작한 지 5개월쯤 지났을 때 마침내 그토록 염원하던 이직에도 성공했다. 명상이 무의식 중에 지혜를 길러준 덕일까, 아니면 그저 나와 맞는 공고에 지원해서일까? 둘 중 하나일 수도, 둘 다일 수도 있겠지. 결국엔 해냈고 길고 긴 이직의 여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직에 성공했지만 오히려 새 회사에서 일하는 지금, 더 열심히 명상 수행을 이어가고 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정해둔 자리에 앉아 30분씩 명상을 하고 명상일지를 적는다. 명상을 배우다 보면 명상이 불교에서 생겨난 수행 방법임을 알게 되고 자연스레 불교 철학, 초기 경전을 접하게 되는데 공부하면 할수록 너무 재밌다. 명상을 처음 배울 때보다 오히려 더 진지한 자세로 명상을 대하고 있다. 명상의 세계를 더 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고 명상 수행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열매를 맛보고 싶어졌다.


이직이 안 돼서 겪은 마음속 어려움이 없었다면 아마 명상을 훨씬 늦게 배우거나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 결과론적 얘기이기도 하지만 그때의 고통이 있어 명상을 배울 수 있었고 그래서 참 감사하다. 아직 명상 시간은 한참 늘려가야 하고 분주하고 불필요한 습관으로 점철된 일상생활에 '명상적인' 모먼트를 심기도 참 어렵지만 그래도 해내고 싶다. 잠깐의 불편함, 갈망, 충동을 참고 나면 다른 차원의 세상이 열린다는 걸 어렴풋이라도 알게 됐으니까. 자 그러니 내일도, 내일모레도 계속 명상 수행을 이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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