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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숨 May 24. 2023

명상 배우는 내가 문득 억울하게 느껴질 때

남들은 명상 없이도 잘 사는데 왜 나만?


명상을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어렵긴 해도 깨달음을 얻는 순간들이 생겨나는 게 참 재밌었는데 하나 이상한 게 있었다.

왜 내 주변엔 명상하는 사람들이 없지?


명상 스튜디오에만 가도 명상에 진심인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그런데 주변 친구들 중 명상하는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거 좋은데 한번 잡솨봐’라며 명상 얘기에 열을 올려도 크게 관심을 보이는 친구들이 없었다. 지금이야 한 명을 유혹하는 데 성공했고 매일 수행을 이어가는 동지가 됐지만 말이다.


남들은 명상 없이도 잘 사는 것 같은데, 왜 난 명상이 필요한 걸까?


내가 명상을 배우게 된 계기는 간단히 말하면 힘들어서였다. 이직이 안 돼서, 회사 일이 버거워서 마음이 힘들었다. 이 힘듦을 해결해 줄 수단으로 명상을 찾게 됐다. 명상 스튜디오를 찾아온 다른 이들의 고민도 조금씩 다르지만 본질적으론 비슷한 모양새였다. 현실 속, 마음속 고민을 해결하고 싶어서. 내 안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지금이야 완전히 다른 목표를 위해 매일 아침, 명상 수행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때는 치유와 편안함만이 목적이었다. 그래서인지 명상을 배우는 내가 어딘가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졌고 주변에 명상을 배운다 말하기가 부끄러워 상대가 먼저 물어보거나 아주 가까운 친구들이 아니면 굳이 명상을 배운다고 먼저 얘기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은 명상을 배우는 내가 문득 억울하게 느껴졌다. ‘남들은 명상 없이도 잘 사는 것 같은데 왜 나는 명상이 필요할까? 명상을 배운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종착지까지 가려면 시간도 오래 걸릴 텐데 왜 계속 명상을 배우려 할까?’


처음 명상을 가르쳐 준 선생님이 비슷한 질문에 답한 적이 있다. ‘명상을 문제의 해결 도구로 생각해서’라는 것이었다. 수업 시간에도 줄기차게 들은 말이 떠올랐다. ‘명상은 단지 편안함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깨달음과 지혜를 얻기 위함입니다.’


그동안 명상을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구나 깨달았다. 시작은 편안함을 위해서였지만 끝에는 다른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것. 맞아 그랬지. 편안함만이 목적이었다면 매일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은 충동을 꾹 참고 앉아 명상할 이유도 없을 것이고 생전 처음 보는 단어로 수두룩한 명상 서적을 읽지도 않았을 거다. 명상을 통해서만 길러낼 수 있는 지혜,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삶을 바라보는 렌즈를 얻고 싶어서 계속 명상하는 것이었다.


명상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명상은 편안함과는 오히려 거리가 멀다. 하면 할수록 '이게 과연 되나?' 싶을 정도로 잡생각으로 가득한 내 머릿속을 견딜 수가 없다. 몸의 각 부위에 마음을 보내라는데, 당최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다. 매번 집중에 실패하는 나를 견디며 계속 묵묵히 명상하다 보면 '선생님이 말한 게 이건가?' 싶은 순간이 조금씩 생긴다. 변화를 경험한다. 그때부터는 누가 '명상하라'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자리에 앉게 된다.




이제는 명상을 배우고 공부하는 게 자랑스럽다. 하루라도 일찍 명상을 만날 수 있게 된 데 진심으로 감사하다. 순수한 관심과 호기심으로 무언가에 푹 빠져 몰입하고 짜릿함을 느낀 경험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나는 명상과 그 안에 담긴 철학을 사랑하게 됐다.


그저 묵묵히 수행하다 보니 마음도 조금씩 변하는 걸 느낀다. 갑자기 잘 지내다 기분이 안 좋아지면 '왜 기분이 안 좋지? 이건 어떤 느낌이지? 왜 그렇지? 그래서 기분이 안 좋았구나'라고 알아차릴 수 있게 됐다. 몸에도 좋지 않은 배달음식이나 패스트푸드를 먹고 싶은 충동이 올라와도 바로 배달 앱을 켜는 행동을 저지르기 전 한 번 더 생각한다. 진짜로 내게 필요한 게 맞는지. 이 충동은 어디서부터 올라왔는지. 잠깐이지만 그렇게 살피다 보면 그렇게까지 먹고 싶었던 게 아니구나, 그냥 조금 지쳤을 뿐이구나, 집 가서 따뜻한 물로 씻고 누워 쉬어야겠다 생각한다. 미세하지만 내면을 관찰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이 길러진 걸 느낀다.


시작은 마음의 고통이었지만 덕분에 명상을 만났고 느리지만 조금씩 내 삶이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느낀다. 이젠 더 이상 명상하는 내가 억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명상하면서도 편안함을 원하지 않는다. 감각, 감정, 경험 같은 삶의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위해 나는 명상한다. 오늘 아침에도 더 누워있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30분 명상을 해냈다. 망상이 자꾸만 올라오고 몸을 움직이고 싶은 충동도 일었지만 괜찮다. 알아차릴 수 있었으니까. 내일도, 내일모레도 계속해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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