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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량 Feb 13. 2024

대모험의 서막

나트랑 우정여행

여기 오랜 인연의 친구들이 있다. 햇수로 20년, 얼굴 말갛고 풋풋하던(일단은 그렇다고 해 두자)시절에 만나 여기까지 이르렀다. 그 안에서 줄곧 머물렀던지라 우리가 유난한 지 잘 몰랐는데, 다른 이들이 보기엔 사이가 좀 가깝고 끈끈했었나 보다. 각자의 성적, 연애의 성공과 실패, 때로는 가족사까지 세월은 이를 더욱 두텁게 만들었다. 결혼과 육아, 취업과 이민 등 각자 많이 바빠진 가운데도 언제나 단체대화방은 불타고 있어 온갖 시시콜콜한 세상사를 다 알 수 있었다. 예전처럼 생일마다 만날 수는 없으나, 누군가의 생일이면 늘 요란한 이모티콘이 돌아다니고 축하와 덕담이 떠다녔다.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 같이 돈 모아서 여행 갈래? 이런 말이 나왔다.


여행. 신입생 ot부터 시작해 과 전체가 떠나는 mt, 동기mt 등 우리가 함께 간 곳은 많았다. 그런 데에 엉덩이 빼지 않는 애들끼리 친해진 것이기도 했다. 졸업한 이후에도 종종 같이 여행을 가곤 했다. 과반수 이상이 결혼하고, 아기들이 생겨난 이후엔 그게 좀 어려워졌다. 아기에서 꼬마들에 이르기까지 머릿 수를 합치면 다섯, 그 세세하고 복잡한 사정을 딛고 우리는 일단 돈을 모아 보기로 했다. 아마 우정이 17년, 18년쯤 이르렀을 때다. 3만 원? 그 정도면 어떨까. 그리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묻어둔다 생각하고 모으자. 떠나는 때는 20주년이 좋겠지? 그때는 우리도 불혹에 접어드니까. 장소는 어디든 좋아. 친구 하나가 재빠르게 모임통장을 만들었다. 모은 돈이 세 자릿수에 이르자 이 돈을 투자해 액수를 불리는 게 좋지 않겠냐는 주장도 나왔다.


동남아대신 유럽이나 미국 보내주겠다는 호언장담에 그러다 대성리 가는 것 아니냐, 그냥 쥐꼬리만 한 이자에 만족하겠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지난한 저금리 시대 통장은 안전하고 우직하게 지켜졌다. 대통령의 (아마 유일한) 업적 덕에 난데없이 한 살 혹은 두 살이 까여 기쁜 우리들은 더 이상 마흔이나 불혹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완벽히 실감은 안 나나 그래도 어딘가 기분 좋은 느낌, 우리의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짧게나마 연차를 쓸 수 있는 기간부터 맞추고 그동안 육아를 도맡아줄 분을 섭외하기 시작했다. 계절은 겨울, 그렇다면 더운 곳이 좋겠지. 가봤던 곳들, 가보고 싶은 곳들, 주변에서 추천하던 곳들의 목록이 오르내렸다. 가서 뭘 하고 싶니? 질문엔 비슷한 답들이 쏟아졌다. 물 위에서 둥둥 떠다니기, 쉴 새 없이 목을 축이기 같은 것들.

돌고 돌아 정해진 곳은 베트남의 나트랑이었다. 현지 발음으론 냐짱이란 귀여운 이름의 작은 도시였다. 비행기 특가가 뜨길 주시하던 친구 하나가 마지막 일정을 확인한 뒤 비행기표를 샀다. 싸긴 싼데 그만큼 스케줄은 잔혹했던, 출국은 새벽 6시 40분, 그곳에서 떠나는 건 밤 11시 30분이었던 비엣젯 항공편이었다. 거기엔 3박 5일의 일정을 꽉꽉 눌러 담아 놀겠다는 의지가 서려있었다. 비엣젯을 검색해 보니 좌석이 작고 딱딱하다, 공간이 좁아 의자를 젖히기 어려우며 기내모니터도 존재하지 않는다, 기내식 따윈 없으며 물도 사 먹어야 한다, 무엇보다 연착이 잦다는 무서운 평을 찾을 수 있었다. 다 좋으니 연착만은 안 되었으면, 그만큼 우리에겐 시간이 제일 소중했다.


엄마, 엄마 찾는 소리 없이 우리끼리만 고생할 시간이. 까짓껏 엉덩이야 아프고 말지, 물이야 안 먹고 말지, 기내에선 그냥 쿨쿨 자면 되니까. 시중들 아이 없이 나만 짓이겨질 비행은 얼마나 황홀할까.


항공편이 정해지자 조금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진짜 가긴 가는구나. 여행계가 시작될 때 선언되었던 '불참자가 낸 금액은 돌려주지 않는다'라는 대전제가 발효되는 순간이기도 했으니까. 항공비를 아낀 만큼 숙소에선 통 크게 쓰자며 우리의 배포는 커져갔다. 그도 그럴 것이 7인이 떠나는 여행이었다. 각자 다른 호실에 묵을 수도 있겠으나 그러면 모여서 놀 곳이 애매해진다. 공용 공간을 찾다 보니 점점 스케일이 커졌다. 결국 우리는 방 4개에 화장실 5개, 커다란 부엌과 거실이 있으며 창을 열고 나가면 우리만의 수영장도 있는 그런 리조트를 구하게 된다. 설레는 마음으로 숙소를 검색해 보면 3대가 어우러져 가는 여행 후기들을 찾을 수 있었다. 조식이 맛없다는 평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나트랑엔 배달앱이 활성화되어 있다고 하니.


총무 h가 스프레드시트를 만들었다. 거기엔 현재까지의 회비내역과 미납자 명단, 지출한 금액 그리고 일정 칸이 기록되어 있었다. 무심한 공란을 채우기 위해 친구 하나가 애써주었다. 나트랑은 아니어도 동남아 여행이력이 많은 b였다. 발 빠르게 나트랑 여행까페에 가입해 찾은 정보들을 대화방에 물어다 날라주곤 했다.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오전 나절 도착할 테니 일단 첫 코스는 마사지를 받아야 해. 모두가 적극 동의했다. 그리고 호텔에 가서 얼리체크인을 하는 거야. 짐을 풀고 좀 쉬다가 시내에 나가서 점심을 먹고 까페에 가자. 그런 다음 쇼핑을 하는 거지. 롯데마트를 가도 좋고, 야시장을 가도 좋고. 롯데마트? 응, 그 롯데마트. 나트랑 대단한 곳이네. (나중에 보니 롯데시네마와 롯데리아도 있었다. 이건 뭐 롯데의 도시, 광안리 아닌가?)


출국 날짜가 임박하자 대화방은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허겁지겁 스노클링 장비와 수영복을 사들이고, 유심을 구매하는 친구들. 나는 필터 달린 샤워기 헤드를 무려 4개 샀다. 왜냐면 우리 욕실은 4개나 되니까! 여행 기간 꼬마를 돌봐주실 어머님을 집에 모시고선 꼬마의 스케줄과 근처에 갈 만한 곳들을 기록한 지침서를 전달하고 간략히 브리핑도 했다. 택시앱을 깔아드리고, 사심을 가득 담은 선물도 전달했다. 그리고 한 솥 가득 미역국을 끓였다. 그 옛날 곰국을 끓이는 엄마들의 마음이 이랬을까. 입가엔 웃음이 비실비실 삐져나왔다. 걱정 말고 잘 다녀오란 어머님의 말씀에 맘 놓고 짐도 싼다. 꼬마를 재우고 나와 어머님고 바톤 터치를 한다. 나는 새벽녘 떠나야 하니까. 잠시 나가 곧 문을 닫으려는 까페에 들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불편한 비행기 안에서 뒤척이느니 밤새우고 탄 뒤, 그냥 고꾸라져 자겠다는 결심이다. 투 샷이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후 커피를 들이켠다. 무려 두 달 만에 마시는 커피다. 그야말로 약발이 쫙쫙 받는다. 집에 돌아와 책을 펴든다. 장강명의 <재수사>. 2권짜리 묵직한 장편소설을 읽어나간다. 커피를 홀짝이며, 종종 시간을 확인하며.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니 이제 집에서 나갈 시간이다. 긴박한 스토리를 카페인과 함께 따라간 만큼 정신은 또렷하고 명료하다. 여권과 지갑을 마지막으로 확인한다. 트렁크에 캐리어를 옮긴 뒤, 시동을 켠다. 새벽 3시의 올림픽대로를 달린다. 표지판에 인천공항이란 글자가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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