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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Dec 25. 2023

도움이 필요하면 컵 뚜껑을 여세요.

Quora

몇 달 전에 Quora 사이트에 누가 흐뭇한 사진을 올렸다. Quora는 네이버 지식인과 비슷한 미국의 지식 공유 플랫폼이다.  


카페의 종이컵에 적힌 글을 우리말로 옮기면, 


괜찮아요? 도와줄까요? 그러면 컵 뚜껑을 열어요.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사진을 올린 사람이 보충 설명을 해놓았다. 18 살 먹은 딸이 밤에 혼자 카페에 앉아 있는데 한 남자가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러자 카페의 바리스타가 누가 시켜놓고 안 가져갔다면서  핫초코 한 컵을 갖다 놓더란다. 컵의 옆면에는 도움이 필요하면 신호를 보내라는 은밀한 메시지가 손글씨로 쓰여 있었다.  자기 딸은 위험한 상황은 아니라서 컵 뚜껑을 열지는 않았지만 카페의 팀은 그녀가 머무는 내내 주시했다고 한다. 


10대 소녀 손님을 걱정하는 카페 종업원의 세심한 배려와 기지를 보여주는 일화다. 컵에다 인종 차별적인 문구나 그림을 그려 넣어서 비난을 받곤 하던 카페 체인이 이번엔  반대로 컵 글을 통한 선행으로 화제가 되었다. 



시골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힘을 합쳐 불량배를 제압하기도 하지만, 도시는 익명성이 높아 범죄자가 정체성을 숨기기 쉽고 범죄에 대한 책임감도 줄어든다. 


인간은 이기심을 기본 사양으로 '탑재'하고 태어난다는 주장이 있다. 마을 주민들이 연대해서 범죄자를 응징하는 행위도 전략적으로 확장된 이기심으로 본다. 범죄를 방치하면 결국 자신이나 친족, 이웃 등에게 피해를 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남의 일이 아니란 얘기다. 


반면 도시는 인구가 많고 넓게 흩어져 있다. 남을 해치는 범죄자가 자신이나 친족 등에게도 피해를 줄 가능성이 낮다. 공동으로 범죄자를 퇴치할 때 부담하는 위험에 비해 기대 이익이 약소하다. 약자를 보고도 못 본체 하게 된다. 다른 말로 각박한 세상이다. 


범죄 예방은 공적인 법 제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사회적 연대를 통한 시민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구성원이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약자를 돕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도시의 사회적 통제가 가능해진다. 


영국 중산층의 조건에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할 것'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맹자는 모든 사람이 네 가지 선천적인 도덕적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했다. 사단四端이라고 하는데 그중 두 가지가 측은히 여기는 마음(측은지심 惻隱之心)과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불의를 미워하는 마음(수오지심 羞惡之心)이다. 


위에서 소개한  카페의 종업원은 서양의 중산층 규범을 실천하고 동시에 동양의 성선설을 실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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