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함의 표현이 특별한 한국인
우리나라에서는 길 가다 실수로 남을 밀쳐도 좀처럼 미안하다 소리를 안 한다. 부딪힌 이도 웬만하면 묵묵히 제 갈 길 간다, 양아치 빼고는. 악당을 쫓아가는 경찰이 부딪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미안하다고 하는 미국 영화 장면이 생각난다. 건드리는 건 물론이고 가까이 지나가기만 해도 양해를 구하는 나라에서 온 이들은 남을 방해하고도 얼버무리는 우리나라 사람 보고 야만적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의 이러한 특징적인 관습을 단순하게 무례한 행동으로 몰기보다는 문화적 차이로 이해할 (=억지를 부릴)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집단주의 영향인지 아니면 조급한 성격 탓인지 서양에 비해 개인 공간에 대한 배려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줄을 설 때 앞사람에게 바싹 다가선다든지, 거리에서 다른 사람의 바로 앞뒤로 휙휙 스치며 지나다닌다든지... 개인 간 거리가 가까우면 물리적 접촉이 빈발할 수밖에 없는 바, 좀 건드렸다고 대수냐 하는 '우리가 남이가'식 정서가 있다. 코로나 때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시하면서 우리도 이제 개인 공간이라는 개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한국 사람들이 미안하다는 표현에 서투른 현상은 한국인의 비언어적 통신 방식으로도 접근할 수 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자기의 감정을 대놓고 말하는 걸 방정맞다고 생각했다. 음식을 입에 넣자마자 엄지 치켜세우면서 호들갑 떠는 광경은 근래의 일이다. 예전에는 '잘 먹었다'는 나지막한 한마디가 충분한 칭찬이자 사례가 되었다. 길에서 남에게 사소한 불편을 끼쳤다고 해서 싹싹하게 사과하면 오히려 상대방에게 '뭐지?' 하는 불필요한 부담을 줄 수 있다 (는 핑계도 댈 수 있다). 부끄러움이나 죄송한 마음을 눈을 피하거나 고개를 숙이는 등의 암시적인 방식으로 전달하고, 받아주고, 넘어감으로써 갈등을 무마하는 맥락 사회적 가치관으로 좋게 봐주면 안 될까.
부부간에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미국에서 부부 2 쌍 중 1쌍이 이혼한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걸핏하면 내뱉는 '스미마셍 (미안합니다)'에 미안한 마음이 얼마나 담겨 있는지 모르겠다. 단순한 언어적 표현을 넘어서 입체적으로 송출하는 신호에 더 풍부한 진정성이 실려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문화가 융합되고, 정보 기술의 발달로 인해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고 있다. 은근하지만 모호하고 해석의 여지가 많은 이심전심의 소통만으로는 갈등을 야기하기 쉽다. 동일 문화권에서도 정보 격차와 가치관 차이로 세대 간 소통의 어려움이 가속화하는 세상이다. 어떤 문화에서는 눈을 마주치는 것이 예의로 여겨지는 반면, 다른 문화에서는 무례한 행동으로 간주된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 간에 명시적인 표현이 없으면 길거리 밀침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회 지도자들이 사과에 인색하다. 명백한 잘못을 저지르고도 일단 아니라고 우기고 본다. 한국인의 비 언어적이고 간접적인 표현의 전통과는 전혀 무관한 작태다. 버티다 안 되면 상투적인 언어 도구로 토를 달고 둘러친다. 받아주는 민초들이 무던하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아서..." ( 별것도 아닌 것 갖고 유난들 떠네)
"부덕의 소치로..." (내가 시킨 게 아니고 애들이 그런 거야 )
"불쾌했다면..." (시비 거는 상대편이 옹졸하구먼)
운운하다가 알쏭달쏭한 "유감" 표명으로 마무리한다.
사과는 1) 잘못을 인정하고 2) 후회를 표현하는 행위인데,
이 사람들의 사과는,
1) 누가, 무슨 잘못을 했다는 건지 주체와 목적어가 애매하고,
2) 다들 잘 빠져나가던데 나만 재수 없이 걸렸다는 한탄으로 들린다. 후회는 없다.
같은 잘못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