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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Oct 19. 2024

화장터의 설렁탕

엄마 장례 미사를 마치고 화장터로 이동하는 길에 차가 밀리고 있었다. 성당에서 거리가 얼마 안 되고 또 이른 시간이라서 예약한 화장 시간에 맞추고도 시간이 남을 거라고 믿었었다. 한적한 '교외'의 '새벽'에도 출근시간이란 변수가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내비게이션의 도착 예정시간이 점점 뒤로 늦춰지면서 우리는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식구 중 하나는 운구차 기사가 길을 잘못 선택했다며 대놓고 원망했다. 요즘 수도권의 화장시설이 부족해서 예약한 시간에 미처 못 대면 순서가 한참 뒤로 밀리든지 '최악의 경우' 돌아가 시신을 다시 안치하는 일도 있다고 했다. 


지금 엄마의 죽음보다 더한 '최악'의 상황은 없다. 기다리건, 아니면 빠꾸를 당하건 그게 무슨 대순가. 하지만 우리들은 엄마의 주검을 정시에 불구덩이 화로에 밀어 넣지 못하게 될까봐 안달이 났다. 장례 기간 중 '애가 타는' 심정은 바로 화장터 가는 길에서 절정에 도달했다. 


운구차가 너무 늦지 않게 현장에 도착해서 원래의 화장 '차수'를 지킬 수 있었다. 대기하고 있던 화장터 직원의 굳은 표정이 화가 난 건지 아니면 엄숙한 건지 분간할 수는 없었지만, 우리 식구들은 시신을 모신 대차가 화로 시설 쪽으로 굴러가는 걸 보고 '안도'했다. 


처음 와본 화장터는 육신이 소멸되는 공간임을 애써 부정하려는 듯 깔끔하게 정돈된 '화장장'이었다. 끔찍한 절차가 아무렇지도 않게 공장마냥 효율적으로 굴러가는 게 이질적일 정도다. 


화장에 소요되는 1시간 반 내지 2 시간 동안 유족은 2층에 올라가서 대기한다. 상조사 직원이 아침 식사를 권유했을 때, '밥은, 무슨...' 하며 손사래 치다 결국 대기실 옆 구내식당으로 몰려갔다. 


메뉴는 설렁탕. 깍두기가 맛있어 보인다며 수북하게들 담았다. 조금 단단한 깍두기가, 표면적을 넓히고, 소화효소와 더 많이 접촉해서, 영양분을 효과적으로 분해, 흡수하기 좋게끔, 나는 문자 그대로 악착齷齪같이 소리 내어 깍두기를 씹었다. 바로 아래층에서 엄마는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뜬금없이, 읽어보지도 않은 책의 제목이 떠올랐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만일 내가 엄마보다 먼저 죽었다면 엄마는 설렁탕을 입에나 댔을까? 비대칭적인 부모 자식 간의 상실에 대한 반응을 그저 진화 심리학으로 퉁쳐야 할까.  엄마가 떠났으니, 장차 내가 죽었을 때 설렁탕을 맛있게 먹지 못할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겠다.


커피까지 챙겨 마시고 있는데 우리를 호출하는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생각보다 일찍 울린 '진동벨'에 감사하며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작은 상자 크기로 축소된 엄마를 돌려받았다. 유골을 모시고 운구차로 행진하기에 앞서 유족은 표정을 경건 모드로 조정했다. 




노모가 병석에서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 계속되는 2년간, 해외는 물론 섬 여행도 미룬 이유는 유사시 즉각 복귀가 보장되지 않아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 '불안'의 원천이 엄마의 죽음 자체였는지 아니면 죽음에 따르는 절차에 대한 부담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장례를 치르고 나서 슬며시 느껴진 홀가분함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후자에 가까운 게 아니었을까. 


그간 엄마의 손을 놓칠까 노심초사했지만, 정작 엄마가 세상을 떠나자 내 정신은 장례 의식과 접객에 매몰되었다. 단순히 하나의 절차로 치부되는 산업화된 죽음 속에서, 정작 엄마의 죽음이라는 본질은 뒷전으로 밀렸다가 스러졌다. 


(테레비 뉴스가 아닌 실제 상황에서, ) 나는 상갓집 보다 결혼식장에 가서 눈물을 더 많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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