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 뉴욕타임즈
https://www.nytimes.com/2024/11/04/world/asia/indonesia-korea-hangul.html
지난 11월 초, 뉴욕타임스에 실린 한글 관련 기사가 눈에 띄었다. 신문은 십만 명이 채 안 되는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 족이 자신들의 언어를 표기하기 위해 한글을 도입한 사례를 다루었는데, 이는 이미 국내 언론도 여러 차례 보도한 바 있다.
수백 년간 구전으로만 전해 내려오던 찌아찌아 부족의 언어는 문자가 없어 소멸 위기에 놓여 있었으나, 한글이 표기에 적합하다는 판단에 따라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십여 년 전 도입했다고 한다. 특히, 기사에서는 1400년대 세종대왕이 당시 문자 체계가 없는 한국어를 위해 한글을 창제하였으며, 찌아찌아 어가 그 유일한 계승 사례라고 소개하고 있다. 우리의 글자가 다른 문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흐뭇하고 자랑스럽다.
'슬기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에 깨우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라는 훈민정음해례본의 정인지 서문처럼, 찌아찌아 어의 한글 차용은 한글의 우수성과 학습성을 입증하며 활용 가능성을 넓히는 사례다.
우리나라 식품 업계도 해외에 판매하는 제품 겉면에 한글을 표기하여 현지 소비자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한글 마케팅'은 한국 음식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한국 음식 문화 전반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확산시키는 데 기여한다
한편,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인 한글이 정작 본고장인 한국에서 소외되고 있는 현실은 역설적이다. 찌아찌아 족에게는 한글을 빌려주고 우리나라 곳곳에선 (쓸데없이) 영어를 빌려 쓰고 있다.
'PUSH'라고 쓰여있는 문을 밀고 도서관에 들어서면 'INFORMATION' 안내대가 나온다. 한국의 도서관을 찾는 이의 99% 이상이 우리말과 한글을 이해한다고 확신한다. 'MEN'과 'WOMEN'으로 나누어 놓은 화장실을 모든 한국인이 분간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문화 열등감과 아울러 세계화에 대한 강박이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세계화는 필요하지만 그것이 꼭 우리 것을 내팽개치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우리의 정체성을 단단히 하면서 세계와 소통할 때 진정한 세계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언어는 단순한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는 그릇이다.
'언어는 공동체의 재산이자 유산입니다. 언어는 부족의 문명을 보여주며, 고유한 알파벳이 없는 언어는 그 진정성을 잃게 됩니다.'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의 전前 시장 타밈 씨의 말이다.
한글은 탄생의 기록을 가진 유일한 문자다. 그만큼 일천하고 취약한 면모도 지니고 있다. 젊은 한글은 끊임없이 발전시켜 나가야 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단순히 보존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