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24-25 페이지
관아재고 觀我齋稿'는 조선 후기의 문신 조영석趙榮祏 (1686, 숙종 12~1761, 영조 37 )의 시詩·서序·기記·제발題跋 등을 수록한 시문집입니다. 책에는 18세기 한국의 시·서·화의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저자 조영석은 물론 정선·이병연 등에 관한 기록들이 있습니다. 1984년에 필사본 2 책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영인했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원문 이미지를 제공했습니다.
번역 습작입니다.
한전寒田이 지은 시 '복사꽃과 배꽃이 함께 지다'에 화답함,
세월은 홀홀히 멈추지 않고 가는데,
봄이 다하면 누가 떨어진 명초(蓂)[1]를 주울 수 있을까.
도리어 복사꽃과 배꽃이 함께 늦게까지 아름다움을 사랑하나니
붉은 꽃이 하얀 꽃의 향기를 살며시 따르네.
其二
비바람 소리 쓸쓸히 그치지 않는데,
봄을 아쉬워하며 어이해 계단의 명초를 세는가.
동쪽 난간에 흩날리는 눈 같은 꽃을 사랑스레 보노라,
눈 같은 꽃잎 한을 녹이며 임금의 꽃 향기 날리네.
원문 중 주석 :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의 시, 동란일림설東欄一林雪에서 ‘이화원(梨花院)의 눈 같은 꽃’을 인용함.
明皇御花: 당현종(唐玄宗)이 천엽도(千葉桃)를 가리키며 ‘원추리(萱草)만이 근심을 잊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꽃도 근심을 잊게 하네’라고 한 말.
其三
화장을 씻어 [2] 잠시 술잔 멈추고,
말없이 떨어지는 명초(蓂)를 더욱 아쉬워하네.
돌아와 집안에서 마주 웃으며 이야기하니,
한옹寒田의 맑은 취향은 오히려 향기로움과 같도다.
원문 중 주석:
낙양 사람들이 배꽃 아래서 술을 마시며 화장을 씻는 풍습.
복숭아와 배나무는 말이 없어도 그 아래 길이 생긴다.(桃李無言下自成蹊 : 사기에서 인용)
其四
외로운 소나무보다 빼어나게 푸른 그늘아래 머무르고,
지는 해라한들 황궁의 명초(蓂)와는 상관이 없네.
조용한 글방 깊이 물들어, 향기로움이 가득하구나
마침내 고결한 이와 더불어 덕의 향기(徳馨) [3]를 나눈다.
其五
외로운 소나무보다 빼어나게 푸른 그늘아래 머무르고,
공을 논함에 어찌 신령하다는 명초인들 비교하리오.
노을 붉게 퍼지며 신선의 길을 비추고,
서릿발 속에서도 향기는 굽은 물길(曲水) 따라 다시 흩날리네.
원문 중 주석
이하(李賀)[4]의 시 [5]'굽이진 물결에 향기는 떠나 돌아오지 않고, 배꽃은 다 져서 가을꽃이 되네.
[1] 명초(蓂): 고대 중국에서 달력으로 사용한 식물. 시간의 흐름을 상징.
[2] '화장을 씻어내다 (洗粧) ' 는 주석에 나오는 '洛陽人携酒梨花下為梨洗粧(낙양인휴주이화하위이세장)'과 연관 지어 볼 때, 화장을 씻어내는 의식적인 행위를 가리킴으로 추정.
전통적으로 중국 낙양 지역에서는 봄에 배꽃이 만발할 때 사람들이 배꽃 아래에서 술을 마시며 꽃의 아름다움을 감상했는데, 이때 여인들이 화장을 씻어내는 풍습이 있었다고 함. 이는 인위적인 꾸밈을 버리고 꽃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에 자신을 동화시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잠시 술잔을 멈추다 (聊為酒杯停료위주배정) '는 화장을 씻어내는 행위에 집중하기 위해 술 마시는 것을 잠시 중단했다는 의미 추정.
[3] 서경의 ‘明德惟馨’ 원용 추정
[4] 당나라 시인
[5] 李賀의 시 ‘河南府試十二月樂詞。三月’ 중 曲池荷葉滿,飄香去不歸。원용 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