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딸아이는 축구에 빠져있습니다. 태어난 지는 28개월 정도 지났습니다. 처음에는 공을 밟고 넘어지기도 하고, 발에 잘 못 맞추기도 했는데, 몇 번 시행착오를 겪더니 이제는 곧잘 발에 공을 맞춰 냅니다. 움직이는 공을 앞으로 달려가면서 뻥 차는 아이를 보고 아내는 메시 같다고도 합니다. 아빠를 보면 자주 축구를 하자고 하는데, 막상 시작하면 오래 하지는 않습니다. 하루종일 축구만 할 것 같다가도, 또 새로운 재미난 놀이가 생각나거나 눈에 띄면 바로 다른 놀이에 빠져듭니다. 저는 우리 아이의 이런 산만함이 좋습니다. 아이가 축구를 1시간씩 하자고 하면 저는 아마 걱정을 했을 겁니다.
저는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계속하는 게 힘이 듭니다. 책을 읽을 때도 한 권만 읽지 않고, 열 권 정도를 돌아가면서 읽습니다. 일을 할 때도, A를 했다가, B를 했다가, C 미팅을 하다가, 다시 A를 하곤 합니다. 어릴 적 이런 모습은 주로 '산만하다'로 표현이 됩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생활기록부에 처음 이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생활기록부를 본 엄마는 불 같이 화를 냈습니다. 화의 대상이 저인지, 선생님인지, 산만하다는 표현 자체인지, 아니면 모두 다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산만하다는 표현이 좋은 표현이 아니라는 정도는 저도 알고 있었는데, 엄마가 화를 내니 아주 큰일이 난 것 만 같았습니다. 선생님이 나를 부정적으로 묘사했고, 내가 학교에서 무언가 부정적인 행동을 했구나. 꽤 오랫동안 저는 '산만하다'는 부정적 표현에 갇혀 있었습니다. 산만한 저의 행동이 정상적이지 않은 범주에 속해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가지 일을 3-4시간씩 몰두하고 집중하지 못하는 건,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제 스스로 합리화를 잘합니다.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세상의 진리는 당연히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납득이 되는 그럴듯한 논리를 찾아내면 합리화를 하고, 그 행동이 문제없다고 결론 내립니다. 제가 산만하다고 규정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래도 몇 해 전에 저는, 저의 산만함이 대단히 정상적이라는 합리화에 성공합니다. 인간은 본래 3-4시간씩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학교 수업 시간이 50분을 진행하고, 10분을 쉬게 되어있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2시간 남짓되는 영화는 어떻게든 집중해서 보지만, 3시간이 넘어가는 영화를 보면 아무리 재밌어도 좀이 쑤시고 그만 끝났으면 하고 시계를 보는 게 정상입니다. 한 가지 일을 3-4시간씩 지속해서 한다면, 오히려 중독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집중은 중독의 다른 표현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중독이라는 표현을 한 가지 일을 매우 오랫동안 지속할 때 사용합니다. 유튜브 중독, 게임 중독이란 말은 다른 일은 제쳐두고, 유튜브랑 게임에만 몰두할 때 사용합니다. 니코틴 중독, 커피 중독은 담배나 커피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서 지속적으로 찾게 되는 경향을 말합니다. 한 가지 대상에 의존도가 높은 것은 위험합니다. 그것이 사람이든 물질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집중의 다른 이름이 중독일 수 있듯이, 산만하다의 다른 표현은 의존도가 분산된 안정감일 수 있습니다. (대단한 합리화이지 않습니까?) 결론적으로(저만의 논리에 의한 결론으로), 저의 산만함은 대단히 정상적이며,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축구와 그림과 책과 TV와 유튜브와 방방(트램펄린)과 청진기놀이와 자동차놀이와 인형놀이와 물놀이를 적당히 안정적으로 분산되어 좋아하는 우리 아이의 밝고 건강한 활동을 항상 응원하는 바입니다.
추가로, 합리화하기에 아주 좋은 수단을 하나 더 찾았습니다. 바로 신문 기사입니다. 그것도 월스트리트 저널(WSJ)입니다. 합리화의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에, 전문을 읽지는 않았지만, 대략 나이 든 사람들의 집중력 부족이 문제해결에 있어서 높은 창의력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