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상담을 진행한지 5회기쯤 지난 뒤에 벌어진 일이었지요. 어느 오후에 나는 어머니에게 아주 일상적인 문자 한 통을 받았고, 그걸 보자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했습니다. 여기까지는 늘 있던 일이니 괜찮아요. 원래 스트레스를 받으면 머리로 피가 몰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심장 박동이 두껍게 느껴지곤 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날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어요. 마치 오래달리기를 했을 때 목에서 피맛이 날 때처럼 숨 쉬는 게 불편해졌거든요. 나는 딱 30분을 기다리고 진정되기를 바랐습니다. 방안을 맴맴 돌고. 누워서 천장을 보고. 가슴 위로 팔을 교차해서 두드려주고. 아무 일도 아닌데 왜 이러지? 눈 앞이 눈물로 흐려졌습니다. 마치 가득 찬 물컵에 물 한방울이 떨어져서 넘치듯이. 집과 너무 멀지 않은 병원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다행히 그날 당장 와도 된다고 하더군요.
두 시간 뒤, 눈물을 많이 닦아낸 다음 정신건강의학과에 앉아 있었습니다.
대기실은 차분한 공간입니다. 감정을 취급하는 병원이지만 외상을 치료하는 병원보다 오히려 이성의 존재감이 크고요. 내가 다니는 병원엔 아이들이 많아요. 주로 그들의 엄마나 조부모가 보호자로 동행합니다. 때때로 젊은 사람도 보입니다. 그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고개를 조심스레 숙이고, 눈을 마주치지 않고, 목소리를 누르고 조그맣게 접수대에 이름을 말하곤 해요. 나는 가능한 평소 성량으로 내 이름을 말합니다. 여기에 적절한 방법이 있을까요? 너무나 멀쩡해 보이는 젊은 사람이 제 발로 정신과에 들어가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는 팁이 있는지요? 아마 있을 거 같은데, 처음이라 잘 모릅니다. 노크를 하고 문을 엽니다. 사연을 요약해서 말해봅니다. 이런 일이 있어서 왔다고요. 의사는 잠잠히 듣더니 말합니다. 잘 오신 거 같다고.
내게 무슨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난 이상하다고요. 그러니 병원을 피하고 싶었죠. 마침내 진료실 문을 연 순간, 어떤 진단명이 주어질 거라고 기대했던 거 같습니다. 하지만 따로 검사를 하지는 않으니 문답으로 이 지난한 과정을 시작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의사 앞에서 말을 고르며 생각합니다. 결국 와버렸네. 그러므로 내 기억의 장소에 추가될 하나의 이정표가 새겨집니다. 정신과. 그 단어의 맛이 써서 농담처럼 입에서 굴려봅니다. 아무렴 어때요. 나는 알맞은 때에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왔습니다. 저용량 항우울제 한 알이면 내 삶은 좀 더 나아질까요?
2주 정도 흐르고 나는 훨씬 침착하고 온순한 상태가 됩니다. ‘약은 좀 어때요?’ 의사가 묻습니다. 먹으니 훨씬 나은 거 같아요. 나는 대답하지요. ‘지금 기분은 어때요?’ 그 말에 잠시 생각합니다. 평화로운 거 같은데요. 의사가 눈썹을 들어올립니다. 불안하긴 하지만요. 속으로 그 두 문장을 붙여봅니다. 내 마음은 평화롭고 불안해요. 의사가 이유를 생각해보라는 듯 묻습니다. 너무 많은 상이 떠올랐다가 사라집니다. 항상 불안했기 때문에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주변을 인지하고 있으면 불안해진다는 얘길 했어요. 그건 분명 진실입니다. 그리고 진료실 밖에서 대기하면서 가만히 앉아있지 않는 아이와 말리는 보호자를 훔쳐본 얘기를 하며 자폭하죠. 오늘은 처방전에 약이 하나 추가됐습니다.
모든 것이 나아졌습니다. 하늘은 맑고 날씨는 덥습니다. 난 내게 필요한 걸 많이 가졌어요. 시간도, 입을 것도, 먹을 것도 풍족합니다. 어린 날의 내가 보면 부러워서 안 믿을 걸요. 그런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요? 그러다 문득 생각합니다. 외롭구나. 오랫동안 외로웠고 지금도 외롭구나. 하지만 항우울제는 외로움을 없애 주는 약이 아닙니다. 아마 내가 낙하해서 머리가 깨지지 않게 붙들어주는 벨트 같은 거겠죠. 미간 펴세요. 내 발은 단단히 붙어있고 축축한 뇌도 아직까진 멀쩡해요. 걱정 고맙습니다. 자, 여기까지 읽어주었으니 외로움에 대한 비밀을 하나 알려드릴게요. 사실 우린 같은 운명을 가졌어요. 이 땅 위에서 첫 숨을 터뜨린 순간부터 나와 당신과 저들은 자기 몫의 고독과 기나긴 가약을 맺었지요.
202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