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 rey Jul 03. 2024

나의 못생긴 운동일기

유산소 머신 위에서 가볍게 땀을 흘리고, 원판을 단 머신 안쪽으로 기어 들어가서 자세를 잡는다. 손잡이를 단단히 쥐고 힘을 낼 준비를 한다. 배에 공기를 넉넉히 머금고 복압을 잡은 후 높은 무게를 버티며 근육을 늘린다. 맥박이 빨라지면서 팽팽해진 근육이 열을 낼 준비를 한다. 숨을 참고 관절을 부드럽게 움직이며 땅바닥을 단단하게 민다. 호흡을 뱉으며 근육을 수축시킬 때 의도한 부위에서 뻐근한 통증이 느껴지면 자극점을 제대로 찾았다는 뿌듯함에 의욕이 솟는다.




언젠가부터 운동이 일상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소위 ‘헬창’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만큼 운동에 심혈을 기울이진 않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몸을 혹사시키는 일에 즐거움을 갖고 몰두하고 있다. 운동에 쏟는 시간과 정성이 늘어나면서 몸에 대한 생각과 관점이 많이 변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헬스장에 대한 나의 인상은 ‘고무와 쇠 냄새가 나고 남성 회원들이 과반 이상을 이루는 공간’이었고 그 사이에서 PT도 받지 않는 나는 뜨내기처럼 느껴졌다. 어떤 순서로 운동해야 할지, 낯설게 생긴 기구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없어서 첫 회원권은 효율적으로 쓰지도 못했다.


처음엔 지나다니는 트레이너를 붙잡고 유튜브를 보면서 눈동냥으로 기구 사용법을 대강 배웠다. 이제 문제는 정확도였다. 특히 상체 운동을 할 때가 난감했다. 팔 근육은 상체 운동을 할 때 무게와 움직임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데 팔 힘이 약해서 당기는 종류의 운동을 할 때면 양팔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관절이 뒤로 빠지기 일쑤였다. 어떤 날은 확신 없이 횟수만 맞춰 따라 하다가 다음날 관절 부근이 뻣뻣해지기도 했다. 애써 익힌 기구 몇 개가 선점된 날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어 갈 데 없어진 다리를 끌고 러닝머신이나 탔다. 그러니 헬스장에 대한 첫인상은 서먹했고 ‘역시 나는 몸 쓸 줄 모르는구나’라는 생각은 한층 더 강화됐다.



 “일주일에 운동 몇 번이나 해?”


운동을 시작한 뒤 주변에서 이런 질문을 심심찮게 듣기 시작했다. 이 몸이 운동깨나 한 사람처럼 생겨 먹었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들 속마음이야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마는, 아마도 그들이 속고(?) 있는 진짜 이유는 내가 운동하고 나서 자꾸 인스타그램에 인증해서 그럴 거다. 소셜미디어에 들어갔는데 다른 것보다 운동 인증의 빈도가 높으니까 ‘아, 쟤는 운동 많이 하나보다.’ 하고 여러분께서 세뇌된 거다. 짜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운동을 전시해서 나는 타인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싶어 하는 걸까? 만약 ‘그냥 올리는 거야. 그러고 싶으니까.’라고 답한다면 그건 비겁한 변명이십니다.





작년에 1년가량 운동 센터에서 겸업하며 몸에 대한 생각은 점점 깊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필라테스를 하면 몸의 곡선이 예뻐지는지, 다이어트 효과가 있는지 궁금해한다. 어떤 회원들은 내 몸을 이리저리 뜯어보며 "필라테스하면 몸 이렇게 돼요?" 하고 묻는다. 센터에서 일할 때 양심이 허용하는 선에서 앵무새처럼 말해왔지만, 정말 운동의 목적이 체중계 숫자를 낮추거나 지방을 태우는 거라면 굳이 값비싼 회원권을 구매하지 않아도 될 거 같다. 개인적으론 필라테스에 투자할 시간과 열정을 다른 종목에 동일하게 투자했다면 원하는 체중감량 효과가 더 빨리 나타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특정 운동에 대한 이미지는 편견을 강화하기도 한다. 생각해보자. 필라테스 센터에는 아주 비만한 사람이 잘 없다. 그건 속 쓰린 일이다. 원래 사람들의 몸은 정말 다양하다. 그것이 맞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필라테스를 접할수록 이 운동이 개인의 신체 차이를 깊게 분석하고 몸에 맞는 적절한 운동처방을 시도하는데 특화된 종목 같다고 느꼈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한국에서는 ‘필라테스’의 진입 장벽을 넘어 들어오는 사람들의 표본이 그렇게 다양하지가 않은 듯하다. 남성보다는 여성 회원이, 체구가 큰 사람보다는 이미 어느 정도 슬림한 체형을 가진 사람이, 4-60대 중장년층보다는 20-30대 젊은층이 압도적으로 많다. 또한 필라테스를 지도하는 센터 역시 소득 수준이 높은 부촌과 오피스텔 밀집지역에 더욱 촘촘하게 분포한다.


필라테스 마케팅은 젊고 매력적인 외모의 여성강사들의 화려한 동작 사진을 홍보하고, 자세 교정을 효과로 내세우며 편측운동(한쪽 방향으로만 운동해서 신체 불균형을 일시적으로 맞추는 운동 방식)을 집중해서 시행한 뒤 비포애프터용 사진을 찍는 식으로 얄팍하게 진행되기도 한다.


따라서 필라테스는 주로 ‘원래 날씬한 여성’들이 몸매를 더 아름답게 가꾸려고 하는 운동 같다는 선입견이 어느 정도 유효해진다. 홍보용으로 각색된 운동 이미지의 표준치는 실제 사람들의 연령과 생활 수준을 고려한 평균의 몸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실제로 필라테스의 본토(?)로 100년 역사를 지닌 대중 운동으로 발전한 미국에서는 마스터와 패컬티의 (*지도자와 상급 전문강사) 연령대가 높고, 회원과 강사의 체형도 아주 슬림하기보다는 다양한 방식으로 근육질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신체의 바른 정렬과 근육의 정확한 사용을 추구하는 필라테스라는 운동의 목적에 맞게 다양한 몸을 지닌 회원들이 많이 출석하는 센터가 정말 좋은 운동공간 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운동은 정직하다. 정확하게 움직이고 나의 상태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을 때 천천히 성장한다. 그러니 원하는 결과가 크고 드라마틱할수록 그 과정이 길고 생각보다 많은 비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온전히 행위자의 노력과 시간투자, 운동지도자의 성실성과 정직함이 동시에 필요하다. 그러나 피트니스 마케팅은 완벽하지 않은 몸에 대한 공포와 수치를 먹이 삼아 배를 불린다. 상담을 할 때면 조금씩 슬펐다. 그중에서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 가장 슬펐다. ‘저도 할 수 있을까요?’라는 말을 들을 때. 각각의 이유로 운동을 망설이는 사람들이 어떤 몸을 원하는지 참을성 있게 들어주다 보면 30분이 훌쩍 지나곤 했다. 대화 말미에 멋쩍고 나이스하게 가격표를 드미는 순간이 가장 싫었다. 나의 노력과 별개로 대화의 성공 여부는 거래로 결정되었고, 나는 훌륭한 영업꾼은 되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당신은 원할 수 있고, 피트니스 업계는 장사를 해야 먹고 산다. 하지만 서비스 판매자가 지갑을 연 사람의 욕망을 볼모 삼아 당장 줄 수 없는 걸 약속한다면 잔인한 일이다. 고로 나는 여전히 피트니스 업계를 잘 모른다. 아마 앞으로도 모를 것 같다.





물론 나는 필라테스라는 운동이나 피트니스 산업에 대해 총평하기에는 경험이 짧고, 운동을 아주 전문적으로 배우지도 않았다. 그래도 그나마 몸담았던 동안 느낀 바를 적자면 잘 고르고 찾아가면 숙련된 튜터와 안전한 공간에서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 고강도 운동을 실시할 컨디션이 아니거나 운동이 낯선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필라테스를 배우고 나서 확실히 예전보다 덜 불편하다. 무릎이나 발목도 덜 아프고, 목이나 등을 어떻게 집어넣어야 하는지 조금이나마 인지하게 되어 유용할 때가 많다. 종종 다른 운동을 할 수 있는 안정된 장력을 몸에 연결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런 훈련을 반복하면 이전보다 곧게 서고, 신체에 분포한 근육의 움직임과 위치를 감각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런 연결감이 평소 움직임에서 부상을 만들 수 있는 위험을 줄인다. 내 몸을 조금 더 아껴 쓰는 요령을 움직임 사이에 미리 알려주는 기분도 드는데, 지금에 와서는 그게 운동을 하면서 얻어가는 진짜 좋은 점이라고 느낀다.


나는 모순적인 인간이지만 이제는 정직하고 싶다.


나를 위해 운동하지만 나만을 위해 운동하지는 않는다. 규칙적으로 운동했을 때 기쁘지만 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전시하고 싶은 충동도 느낀다. 또 예전보다 운동을 좋아하게 되었지만, 그 외의 시간엔 사실 그렇게 동적으로 살지도 않는다. 하지만 땀 흘리고 얼굴에 열이 오르고 나면 이게 좋은 활동이라는 확신, 내가 통제력을 가진 쓸모 있는 인간이라는 만족감이 은은하게 일렁인다. (하지만 실제로 통제력을 가진 상태는 아니다. 통제력이 발휘됐다면 굳이 사진을 공유하지 않을 테니까!)


무엇보다도, 하루치의 도파민과 효능감을 생산하려고 운동하러 간다. 내가 운동에 몰두하고 운동전시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만큼 약해져 있지만 무너지지는 않았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넌지시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누군가는 내 사진 너머로 인정욕구의 냄새를 맡고 냉소를 흘릴지도 모른다. 실로 나는 인정욕구에 목마른 괴물이지만 계속 나약하진 않을 예정이다.


그러니까 무슨 운동이든 그게 우리의 기분이나 몸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면 그건 좋은 행위다. 그런 의미에서 입문자들을 반겨주면 좋겠다. 비웃는 것보단 하는 게 훨씬 낫다. 그러다 보면 바깥을 향하던 욕구가 온전한 나를 위해 돌아오는 순간이 언젠가 오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