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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제 Jan 05. 2021

파제 아카이브 인터뷰 - 전윤미, 서규현 편

4609674/16

그래픽 디자이너 전윤미와 비어 소믈리에 서규현 부부를 알게 된 건 2017년 11월에 파주게스트하우스 쉼표에서 진행한 행사에서였다. 조경국 작가님의 [오토바이로 일본 책방]의 북 콘서트가 있었고 필자는 1부의 공연으로, 윤미 누나와 규현 형은 행사 진행을 도와주러 왔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찾은 쉼표에 때마침 누나와 형도 놀러 왔었고 당시 형이 만든 옥토버페스트 비어의 맛을 보았다. 굉장히 좋은 인상을 남긴 그 맥주는, 아직도 상상만으로 입안에 군침을 돋운다.


윤미 누나는 디자이너로 여러 대기업에서 많은 작품을 한 베테랑이다. 그의 작업에 '그래픽 디자이너 전윤미'에 대한 흥미가 생겨, 후에 찾아본 누나 개인 작품은 그림에 문외한인 나에게도 너무도 큰 재미를 안겨주었다.

그때 누나와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년 전 그들은 결혼 후 직장과 집 등을 정리하고 유럽으로 향했다고 했다.

유럽을 여행하며 형은 배낭에 다양한 맥주를 지고 마시고, 윤미 누나는 영수증을 챙기고 그림을 남겼다고 했다.

그 기억들을 모아 만든 책이 독립 출판사 2nd life의 TRAVEL. RECEIPT & RECORD이다. 

(이 책은 2020년 세종 부문 교양도서로 선정이 되었다)


친분이 꽤 쌓인 어느 날, 한 번은 집으로 초대를 받았다. 처음 가본 그들의 집은 참으로 아늑하고 따뜻했다.

여느 레스토랑 못지않게, 아니 더 훌륭한 음식을 대접받고 내가 챙겨간 사케와 형이 나를 위해 준비해둔 맥주를 마시며 늦은 밤까지 대화를 나누었다.

그날 느낀 따뜻함과 유쾌함은 단지 술기운 때문만은 아니었으랴.


그날, 그들과 그들의 공간에서 느낀 이 감정을 고스란히 남기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4609674/16은 이 곡을 연주할 때마다 또는 들을 때마다 그들의 공간으로 나를 데려다주는 아주 고마운 곡이다.


그래픽 디자이너 전윤미와 비어 소믈리에 서규현을 만나 인터뷰해보았다.

이번 인터뷰는 분위기 특성상 대화의 흐름을 살리는 방향으로 진행하였다.



준성 -

잘 지내시나요?

아무래도 시국이 시국인지라 건강과 코로나로 인한 피해가 없는지가 걱정이 됩니다.


규현 -

얼마 전에 위태로웠어. 출근했는데 모든 일이 다 짜증이 나는 거야. 

출근을 하다 보면 사람을 만나게 되잖아? 다 짜증이 나는 거야. 다 마음에 안 들고.

보통은 집에 오면 괜찮은데 집에 왔는데도 짜증이 나더라고(웃음)


전윤미 -

너무 회사 - 집 - 회사 - 집 이래서 그런 거 아냐?


서규현 -

난 코로나 전에도 회사 - 집 사이클이었잖아~

그리고 최근 옮긴 사무실이 창문도 없고 담배도 끊은 지 오래라 광합성을 할 일이 없어. 프로그래머의 일 특성상 한번 앉으면 몇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일하다 보니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준성 -

저도 회사 다닐 적에 건물 내부 쪽의 사무실을 몇 년 썼고 옮긴 사무실은 빛이 많이 들었었는데 

확실히 해가 있으니깐 조금 낫더라고요.


전윤미 -

요즘 재택근무를 많이 하다 보니 처음에는 다들 좋다고는 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우울증이 오고 차라리 출근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밖에 나가지도 않고 집에만 있으니..

나도 재택을 한 달 했는데 출근하는 게 더 나은 것 같다 싶었어요.


준성 -

재작년 회사를 퇴사하고 나서 음악만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산책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회사를 다니다가 나갈 일 없이 집에서만 작업하니깐 해를 볼일도 없어서 상태가 안 좋아지더라고요.

나중에는 변질되어서 새벽에만 산책 세 시간씩 하고 그랬네요ㅎㅎ


서규현 -

난 원래 새벽 수영 다녔는데 코로나로 모두 폐쇄가 되다 보니 몸을 쓸 일이 없으니 몸이 위축되고 너무 미치겠더라고. 몸이 뒤틀리는 것 같은데 운동을 할 수가 없으니깐 너무 힘들었어.




준성 -

(4609674/16 곡 감상)

이 곡을 설명하자면, 처음 초대받아 놀러 왔을 때 이 집에서 느껴지는 포근함이 너무 좋았어요. 우리가 나눈 대화, 맛있는 술, 요리도 너무 좋았고요. 그래서 이 기분을 간직하고 싶어서 만들게 되었는데 그 감정이 잘 담겼는지는 모르겠어요. 곡은 어떻게 들으셨어요~?


규현 -

아 이 곡이 그 곡이야??

방금 화장실 다녀오면서 이 곡은 뭔가 싶었어. 우리 집이랑 너무 잘 어울려서.


준성 -

낮에 빛이 들어오는 그 분위기도 정말 좋지만 이 노래에는, 저녁에 술 한잔 마시면서 느꼈던 집안의 분위기가 주를 이루어요. 누나, 형네 집 조명에 노란 계열 불빛들이 많아 거기서 오는 따뜻함과 그렇다고 어두 웁지도 않은, 우리의 즐겁게 이야기 나누는 밝고 행복한 느낌을 담으려 했어요.


규현 -

만약에 그랬다 하면 정말 성공한 거야.

난 정말 모르고 이 노래가 우리 집과 너무 어울린다 생각했거든.


윤미 -

엄청 활짝 핀 꽃도 아닌 것이, 엄청 웅크린 꽃도 아닌 것 같은 기분이 있어요.

우리가 이 것을 활짝 피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하고 움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엄청 크게 대외적으로 활동을 하진 않잖아요.


규현 -

이 노래 자체가 이른 아침이긴 한데 소란스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가만히 가라앉아 있는 것도 아닌 

이른 아침보단 늦은 저녁쯤의 기분이랄까?


윤미 -

원래 사람이 계획하는 그런 게 있잖아요. 성공을 위한 계획들이 있는데 우린 그 계획에 벗어나는 사람들이긴 해요. 물론 우리가 노력은 했기에 지금과 같이 살고 있지만, 일반적인 방향과는 다르잖아요.


일반적 기준에서는 우리가 조금 늦을 수도 있지만 우린 조금 다르게 살아가는 게 어떨까 해서 엄청 빠르고 눈에 띄는 성장은 아니자만 조금조금씩 열리고 있는 중인 것 같아요.


규현 -

믿기진 않겠지만, 우린 조금씩 성장해ㅎㅎ


-박장대소-



규현 -

우리는 우리가 성장하고 있는 걸 느껴. 남들은 못 느끼는데 우리는 성장하고 있어ㅎㅎ


준성 -

저는 주변에 가장 이상적인 부부로 두 분을 꼽아요. 

두 분이 현재 살아가는 방식을 옆에서 보는 입장으로서 너무 재미있고 즐겁게 살아가는 게 너무 좋아 보이거든요.

그래서 주변에도 제가 만약 결혼을 한다면 이 분들처럼 사는 게 좋을 것 같다 이야기를 해요.

여하튼 두 분과 이 집을 잘 담은 곡이라고 생각해 주시니 정말 좋네요~



준성 -

유럽 여행 이야기를 좀 해주실 수 있나요?

가게 된 두 분 각자의 계기 혹은 결심 같은 거요. 저도 물론 회사를 퇴사하고 음악에만 몰두하고 있지만, 

사실 굉장히 쉽지 않은 거잖아요. 심지어 두 분이 동시에 그만두셨으니 엄청난 결단이 필요했을 텐데요.


서규현 -

서로 힘든 상황이기도 했고 감정적으로도 힘든 상황이었어. 자주 싸우기도 했고.


전윤미 -

결혼하고 나서 일 년 동안 정말 많이 싸웠어요. 내가 규현 씨를 잘 못 믿었던 것 같아.


서규현 -

여러 가지가 많이 겹쳤어.

부부간의 신뢰 문제도 있었고 우리의 미래에 관한 준비등 여러 가지 구상을 하고 있었는데 막상 현실에 너무 안주를 했던 거지. 또는 결혼 전후가 변함이 없다는 것에 위기감을 느끼기도 했어.

그 상황에서 트리거가 된 건, 하루는 윤미가 퇴근하고 와서 너무 힘이 들었는지 펑펑 우는 거야. 

당시에 감정적으로 힘든 일이 많았어서 그랬나 봐.


윤미가 했던 이야기가 이러다 죽을 것 같다는 거야. 

꿈이 스웨덴에서 다시 태어나는 건데 이번 생에 스웨덴 한 번도 못가보고 죽으면 

다음 생에 스웨덴에서 못 태어날 텐데 하면서 엉엉 우는 거지.

그럼 나는 남편으로써 할 수 있는 게 "그래, 같이 가자" 하는 것밖에 없지.


그래서 그 주에 유학원에 상담만 받으러 놀러 갔어. 근데 마침 영국 개학시기가 겹쳐있던 거야. 

그래서 후다닥 준비하고 3주 만에 가게 된 거야.


준성 -

거진 1년 정도 다녀오지 않았어요??


전윤미 -

한 6-7개월?

2월 말에 상담받고 3월 초에 입학해야 하는 거라 내 업무를 맡아할 후임을 구해야 했었어요.

근데 지인 찬스로 다행히 시기에 맞게 잘 구했어요.


서규현 -

근데 지금이야 타이밍이 맞았다 했지만, 따지고 보면 D-Day가 있으니 억지로 맞춘 것 같아.

원래는 독일을 가려했는데 일정을 맞추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영국으로 입국하게 되었어. 그래서 간 김에 어학연수도 했고, 그러다 보면 그쪽에서 집도 알아봐 주니 여행겸 어학연수도 같이 하게 된 거지~

위치를 잡아두고 주말에 근처 어딘가를 계속 여행 다녔어~ 

3개월 연수 끝난 후 독일로 넘어가서 유럽여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어.


전윤미 -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이라면 돈 모아야지 어딜 가 이랬을 수 있지만, 그땐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었고 집도 경기도 말고 무리해서 서울로 들어갈까도 했었는데 그랬으면 여행은 못 갔을 것 같아.


서규현 -

우리가 결혼할 때 집을 살까 말까 고민했었어. 연남동에 나온 집이 있었거든. 조금 무리해서 살까 했다가 결국 안 샀어. 근데 그게 지금 3배가 뛰었는데, 그럼 우리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 집을 샀을까? 하고 우리끼리 이야기했는데 단호하게 아니었거든.

우리는 집값이 10억 오른 것보다 그 여행이 너무나도 소중한 우리 둘만의 기억, 추억 또 하나의 끈끈함 등 모든 것이 일어난 거라, 


윤미 -

계속 싸우고 울고 그랬었어.


규현 -

그랬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혼 안 하고 잘 사는 계기일 수도 있고, 

당시 그 집을 샀다면 지금은 이혼을 했을 수도 있어. 평생 싸울 거 거기서 다 싸웠으니깐ㅎㅎ



준성 -

그때의 기억을 가지고 만든 게 이번 책이고 그때의 여행과 모든 기억을 담은 발자취라고 볼 수도 있어서 그런지 그림의 양도 엄청 많고 내용도 세세한 게 많네요.


윤미 -

우리가 돈을 벌고 있는 게 아니니 가계부의 필요성을 느꼈어요. 우리가 쓴 영수증은 다 모으고 있었거든요.


규현 -

윤미가 돈 관리를 했는데 숫자에 좀 약한 편이야. 근데 관리는 해야 하니까 가계부를 쓰기로 정했어.

근데 디자이너다 보니 그림에 워낙에 강하잖아. 그래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더라고. 그렇게 시작했어.

여행기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영수증에 그림을 그린 건 아니고.


윤미 -

보통 장을 봐서 요리를 해 먹었는데, 한글도 영수증 보면 뭐 샀는지 잘 안 보이는데 심지어 꼬부랑글씨는 더 알아보기 힘들잖아요. 찍은 사진도 매번 찾아보면서 정리하긴 쉽지 않기도 하고요. 

그래서 일기처럼 그날그날 그렸어요. 디지털 같은 사진으로 남기는 것도 싫었고요.


규현 -

유럽은 해 떨어지면 할 게 없잖아. 그러면 나는 맥주 먹자 하고 윤미는 옆에서 그림 그리고 그랬지.


준성 - 

저는 일본을 엄청 많이 다녔잖아요. 너무 많이 다녀서 이젠 타임라인이 뒤죽박죽 되는 거예요. 근데 거의 확실히 기억에 남는 여행이 제가 영상을 찍어서 편집하고 음악까지 입혀 다큐를 만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거진 모든 게 다 기억에 남아요. 영상은 며칠의 기억을 짧게 압축시키는 것이라 생각해요.


근데 그림은 하나의 장소에 조금 더 오래 보고 품고 담고, 담기 위해 더 세세히 보는 그런 과정이잖아요. 어떤 블로거가 음식점의 브레이크 타임이 끝나길 기다리며 광장의 그림을 드로잉 한 게 있었는데 너무 부러웠어요.


윤미 -

여행이라는 게 기다림이 항상 많은 것 같은데 폰만 보고 있을 수도 없잖아요. 전에 일본 출장에서도 영수증에 기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서 이번에도 우리의 소비를 체크하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어요. 가계부처럼. 근데 그것도 너무 많아지니깐 헷갈리긴 하더라고요.


준성 -

저도 스페인에 갔을 때 비슷한 생각을 하긴 했어요. 

다만 스페인의 와인은 라벨 디자인이 각자 개성이 강해서 그걸로 구분을 하긴 했네요.




준성 -

이 유럽 생활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 TRAVEL. RECEIPT & RECORD잖아요.

안에 그림의 양도 방대하고 완성도도 굉장히 높은 책이라 생각해요. 음악 앨범의 기획, 제작 발매까지 여러 번 해보다 보니 분야가 다를지라도 그 고생이 얼마나 클지 조금은 이해가 되어요.

독립출판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윤미 -

원래 책을 내려한 게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모아둔 게 다이어리로 꽤 돼요.


규현 -

우리가 의도한 게 아니었는데 영수증은 시간이 지나면 글씨가 사라지잖아.

근데 그림만 살아있잖아. 내용은 흰 백지인데 그림만 남아있는 거야.

너무 재미있는 현상이기도 하고, 우리가 그림을 안 그려놨으면 싹 다 지워지는 거거든.


윤미 -

이거 다 지워져 가지고 스켄을 규현 씨가 여행에서 오자마자 다 받아줬어요.


규현 -

스켄만 2-3일 걸렸어ㅎㅎ


윤미 -

스켄도 오래 걸려서 포기하려 했었어요. 

이게 누가 사주는 것도 아니고 굉장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내용이잖아요. 굳이 만들어서 뭐하지 싶었어요.


독립출판에 관한 수업이 있어요. 어떻게 책을 만드는지에 관해 가이드를 주는 거예요. 

그걸 듣다가 어쨌건 결국엔 혼자 모든 걸 해야 하다 보니 쉽지 않기에 포기를 했었고 신랑도 그렇게 힘들고 고민되면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고 했어요. 

그래도 시작한 건 해야 하지 않겠냐고 무언의 압박을 줘서 나중엔 한번 싸우기도 했어요.


규현 -

결국 하면서 작업물도 쌓고 집 복도에 걸어두기도 했어.


준성 -

오! 처음 왔을 때 봤었죠.


윤미 -

한참 중단했다가 확 꽂힌 시기가 있어서 그때부터 불이 붙어서 3개월 동안 잠도 거의 안 자고 작업을 했어요.

작업은 자기 스스로 확신이 들 때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는 것 같아요.


규현 -

파제도 앨범을 내서 알겠지만, 자신의 창작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내보인다는 게 무서운 일이잖아.

나는 이쁘게 해 놨는데 받아본 사람이 "이게 뭐야" 이럴 수도 있거든.


윤미 -

나는 그런 것 때문에 좀 쉽지 않았어.


규현 -

윤미가 국내 굴지의 회사들도 다 거치고 지금 굉장한 회사의 디자이너인데 그런 사람이 책을 냈다면 다들 "와, 얼마나 대단한지 보자" 할 텐데 돌아오는 반응이 "이것밖에 안돼?" 같은 식이라면 앞으로의 디자이너 인생에서도 큰 타격이 올 수도 있고 거기에서 오는 두려움이 있을 수도 있어. 


하지만 그 두려움을 떨치고 세상에 본인의 작업물을 내놓겠다는 용기도 필요한 거지. 

윤미가 작업을 중단한 6-7개월의 숙려기간이 있던 게 그 용기를 키운 시간이 아닌가 싶어.


윤미 -

근데 파제도 음악 하면서 옆에서 용기를 주는 사람이 있지 않아요?


준성 -

저는 저희 형이 그런 역할을 해줬죠.

버둥과 함께한 미로라는 제 첫 싱글도 마찬가지였어요.


윤미 -

그렇게 옆에서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사람이 너무 중요한 것 같아요.

인스타에 개인 작업물 올리면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보며 용기를 얻기도 하고요.


규현 -

요즘은 팬래터도 받아~


준성 -

저는 연주를 잘하고 싶은데 제 연주에 대해 항상 만족을 당연히 못해요.

근데 이상하게 저의 기타 연주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있고 그러다 보니 연주곡 앨범까지 내게 되었네요.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전공자이신 분도 저의 연주를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서 기운도 얻고 자존감도 높아지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규현 -

우리도 문화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해주시는 거야. 단순히 책이 좋다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그 기운을 업어서 세종 도서에 출품을 하게 된 거고 감사하게도 뽑힌 거지. 그래서 전국의 도서관에 뿌려지고 거기서 책을 읽으신 분이 팬레터까지 보내주시게 된 거야.


윤미 -

이게 회사에다 결과물을 내는 게 아니라 비밀로 하려 했는데 어떻게 다들 알게 되어서 이사님도 책을 사고 싶다 하고 결국 회장님께도 책을 드리게 됐어요. 근데 독립출판이고 글 쓰는 작가도 아닐뿐더러 워낙 개인적인 색채가 강하다 보니 걱정도 했는데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결국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과정인 것 같아요.


규현 -

후속 책도 나오야 하는데(웃음)



준성 -

형이 저 회사 그만둘 때 많이 고려해보라고 한 게 생각이 나요. 

현재는 그 시절이 나에게 있었나 싶을 정도로 먼 과거 같네요.


퇴사 선배로서 이야기를 해주셨던 거잖아요? 제가 그간 느낀 행복과 동시에 공존하는 불안함을 두분도 많이 느끼셨을 텐데 어떻게 이 시간을 보내셨어요?


규현 -

어떤 불안감?


준성 - 

복직에 관한 거겠죠? 생계를 위해 복직을 해야 하니깐요.


규현 -

그 정도 자신감은 있었지ㅎㅎ


윤미 -

나는 유럽 가서도 괜찮았는데 막상 한국 들어올 때 되니깐 불안했어. 

원래는 외국계 회사를 가고 싶었는데 언어에 대한 문제가 있었어요. 그리고 언어도 언어지만 문화권에 대한 이해의 차이가 커서 외국계 회사에 대한 이직이 쉬운 상황이 아니었어요.

유럽에서도 이직에 대해 계속 알아봤거든요.

그래서 돌아올 때쯤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는데 전 직장에서 복직을 제의를 해줬어요.

근데 난 아직 복직 생각이 없어서 시즌제로 계약을 하기로 했지요.


규현 -

다 윤미가 그간 잘해왔기에 그랬던 거겠지 싶어.

원래는 우리 둘 중 한 명만 일하자는 생각이었는데 윤미가 조금 불안해하는 것 같았어. 그래서 나도 그냥 가까운 곳의 프로그래머를 구하는 회사 아무 곳으로 들어갔는데 다행히 회사도 괜찮고 대표의 마인드도 괜찮아서 계속 잘 다니고 있네.



준성 -

아 그리고 유럽 생활중에 기억나는 에피소드도 있어요?


윤미 -

소매치기 이야기 안 해줬나?


규현 -

거기 예술가 거리 같은 쇼디치라는 곳이 있는데 때마침 근처에 엄청 큰 플라워마켓이 열린다는 거야.

거기서 잘 구경하고 마지막쯤에 책을 한 권 사려고 가방을 봤는데 지갑이 없어진 거야. 


윤미 -

타투 책을 사려고 가방을 봤는데 지갑이 통으로 없어진 거예요. 처음엔 규현 씨가 장난치는 줄 알았어.

당연히 아니었고 시장 한복판에서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어요ㅎㅎ


영국은 일요일에 경찰서가 쉰다고 해서 근처 파출소로 가서 전화하고 그랬어요. 

우리나라는 그래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잖아요. 거기선 통화로 Crime No. (사건 번호)를 

발행해주면서 빨리 잊는 게 답이라며 찾지 못한다는 거예요.


규현 -

나에게 기억에 남는 사건인 이유가 뭐냐면, 윤미가 당시에 나를 못 믿었댔잖아. 나에게 돈을 안 줬거든.

근데 나는 원래 위험에 대비하는 성격이 있거든. 쫄보라 그런가 봐. 돈도 여기저기 나눠서 갖고 다니고.


당시에 지갑에 모든 카드가 있었고 현금도 엄청 많았거든. 런던 한복판에서 땡전 한 푼 없는 상황인 건데, 집에 갈 돈도 없는 상황인 건데 

사실 그전부터 윤미한테 찡찡대면서 1,2파운드씩 달라고 한걸 몰래 모아뒀어. 그걸로 집에 왔지.


나중에 여보는 나를 언제부터 신뢰했는지 물어보니 쇼디치에서 지갑 털린 그날부터라고 하더라고ㅎㅎ


윤미 -

나는 장난치는 줄 알았어. 여권은 다행히 다른 곳에 둬서 망정이지..


준성 -

저도 유럽 가면 앞으로 매는 sac을 갖고 다녀요. 언제 털릴지 몰라서.


규현 - 

그렇게 대비를 해도 사람 많으면 소매치기를 당할 수도 있잖아~


준성 -

저는 오래전에 콜로세움 앞에서 검투사 옷 입은 사람들이 사진 찍어준다면서 사진 찍어주고 100유로를 달라고 하더라고요ㅎㅎ 당시 환율로 16만 원이었어요. 삥뜯긴 거죠ㅎㅎ



준성 -

이 곡의 제목으로 4609674/16을 추천해주셨잖아요.

이게 책 표지에 바코드 옆에 있던데 이게 무슨 의미인가요?


규현 -

소매치기당했던 당시 크라임 넘버야~

이 넘버가 없으면 아예 사건 접수도 수사도 안된다 하더라고.


윤미 -

일주일 후에 크라임 넘버 대고 진행 상황을 물어보니 빨리 잊으라고 하더라고요.

그 나라들은 소매치기가 워낙에 비일비재하니깐요.

"소매치기당한 당신이 잘못된 거고 안됐네"라는 반응이었어요. 

관리를 소홀한 제 잘못은 맞는데 당시에는 너무 화났었죠.




준성 - 

형은 여행의 목적 중 큰 부분으로 맥주 여행이 크지 않았나요?


윤미 -

나는 이전까지는 맥주를 안 좋은 걸로 생각했어요. 기네스만 부드러워서 좋아했어요. 

근데 영국에서는 케스크 비어라서 에일이 주를 이루고 천천히 마셔도 되니깐 괜찮았던 것 같아요.


규현 -

옛날 우리나라에도 동네 동네 양조장이 있었잖아. 막걸리 파는. 케스크 비어라고 오크통처럼 생긴 캐스크에 지역 맥주를 담아서 파는 거지. 그리고 공장에서 살균의 과정 없이 나가기 때문에 빨리 소비를 해야 하기도 하고.

그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는 맥주이기에 좋았어.


윤미 -

펍에 가서 규현 씨가 맥주를 마시고 싶은 눈빛을 보내면 우리나라 샘플러들과는 다르게 컵에 왕창 주는 거예요.

이것도 저것도 다 마셔보라고 주는데,


규현 -

한잔 마시고 이것저것 다 달라고 하는 거야.

학교 수업 끝나고 나면 펍으로 가서 맥주 한 잔 하면서 그날을 시작하는 거야.

거기에 몸은 되게 말랐는데 배만 볼록 나온 아저씨가 매일 맥주를 따라줬었어.


준성 -

형은 맥주를 언제부터 관심을 가졌어요?


규현 -

오래전부터 관심은 있었지만 다녀오고부터 조금 더 배우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


처음 한국에서 맥통사고가 일어난 게 대학교 때 친구들끼리 바 투어를 다녔을 때였는데 보통 버드와이저만 먹었거든. 근데 언젠가 바에서 맛있는 맥주를 소개해 줬는데 맥주에서 오렌지 맛이 나는 거야. 

정말 신세계였고 알고 보니 호가든이었던 거지. 한국에 호가든이 처음 나왔을 때였어.


그 이후로 맥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에딩거를 좋아하게 되었어.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 당시 에딩거 생이 홍대 와바에만 있어서 거기만 다녔었지. 거긴 벨기에 맥주 전문이었는데 벨기에 맥주는 비싸니깐 에딩거만 먹었는데 하필 어느 날 에딩거가 다 떨어진 거야. 그래서 거기서 맥주를 추천해줬는데 그게 벨기에 맥주였고 그때 벨기에 맥주에 맥통사고를 또 당했지.


준성 -

벨기에 맥주는 사고가 크게 오죠.


규현 -

그때 둘이 맥주를 먹으면 돈을 엄청 썼어.

만약 내가 소주를 그렇게 먹었더라면 윤미가 나를 오해했을 거야. 근데 맥주를 설명해주면서 먹으니깐 재미있어하더라고. 혼자 자취할 때는 혼자 맥주도 담가먹고 했지.


준성 - 

제가 회사 다닐 때 미생물팀에 있었잖아요. 그때 인큐베이터 룸이 있으니까 거기서 맥주를 만들어보고 싶기도 했어요. 맥주는 온도 유지가 중요하잖아요. 근데 걸리면 저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테니ㅎㅎ 하진 못했죠.


윤미 -

맥주가 와인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주변에 보면 의사나 파제가 일했던 그쪽 계열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아요.


준성 -

저는 앨범 굿즈로 에코백이나 포스터를 만들었잖아요. 근데 아는 음악가중 의사인 형이 있는데 

그분은 맥주를 좋아하고 잘 만들어서, 앨범을 내면서 맥주를 굿즈로 만들더라고요.


규현 -

나는 하고 싶던 게, 소량 맥주를 만드는 거였어.

카스 같은 곳은 한 배치에 5만 리터 같은 큰 규모로 만들지만 나는 한 500L 규모로 맥주를 만드는 거지.

미국에도 어떤 브루어리에선 아티스트 하고 콜라보를 해서 앨범의 색깔에 맞게 맥주를 만들고 앨범 발매 때 맥주도 소개하는 행사도 하거든. 나도 그런 걸 해보고 싶어서 맥주 공부를 했던 이유도 있어.


또 어떤 서핑 보드 회사는 본인들의 맥주를 만들고 싶어서 의뢰를 했었어. 

서핑보드를 삼나무로 만든다는데 그러면 보드 만들고 남은 자투리 나무가 있을 거 아냐. 그 나무를 맥주를 끓일 때 넣었다 하더라고. 그래서 서핑보드 회사의 맥주를 먹으면 우디 한 향이 난다고 하더라고. 삼나무 향이.


아무튼 그런 식으로 재미있는 시도들을 많이 하더라고.


준성 -

나중에 형과 이런 기회를 가져도 좋을 것 같아요ㅎㅎ


제가 준비한 인터뷰 질문지는 이걸로 끝입니다.

그럼 다음에 또 맛있는 술과 재미있는 이야기로 뵐게요!!




전윤미 서규현 부부의 집은 항상 따뜻하고 맛있는 기억으로 가득하다.

인터뷰 보단 수다의 나열인 이 글에서도 느껴지는 그들의 인간적인 아름다움은 웃음을 짓게 만든다.


필자가 두 사람을 예술가라고 지칭한 건 인생을 일반적인 기준이 아닌,

본인들만의 색채로 디자인하고 채워나가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도 본인만의 인생을 디자인해나가길 바라며 인터뷰를 마친다.

(나 역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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