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사랑의 또다른 이름
날짜: 25.8.3(일)
본문 : 에스겔 12:1~16
제목 : 심판, 사랑의 또다른 이름 (Daily Q.T)
[본 것]
생명의삶QT
2 인자야 네가 반역하는 족속 중에 거주하는도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아니하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아니하나니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라
3 인자야 너는 포로의 행장을 꾸리고 낮에 그들의 목전에서 끌려가라 네가 네 처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그들이 보면 비록 반역하는 족속이라도 혹 생각이 있으리라
14 내가 그 호위하는 자와 부대들을 다 사방으로 흩고 또 그 뒤를 따라 칼을 빼리라
15 내가 그들을 이방인 가운데로 흩으며 여러 나라 가운데에 헤친 후에야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16 그러나 내가 그 중 몇 사람을 남겨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서 벗어나게 하여 그들이 이르는 이방인 가운데에서 자기의 모든 가증한 일을 자백하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겔12:2-3,14-16)
[묵상과 기도]
볼 수도 있어도 들을 수 있어도 보지 않으려 하고 듣지 않으려 한다.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이고 수준이다.
아무리 보여주고 들려줘도 본 척조차 들은 척조차 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이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이렇게 거만한 이스라엘 민족을 심한하실 것임을 말씀하신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이 좀 뭔가 그렇다.
"인자야 너는 포로의 행장을 꾸리고 낮에 그들의 목전에서 끌려가라 네가 네 처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보면 비록 반역하는 족속이라도 혹 생각이 있으리라"
잘 해석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뭔가를 보여주면 아무리 반역하고 부패했어도 뭔가 마음에 찔리는 마음, 뭔가 돌이켜야 하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겠느냐? 하시는 것 같다.
혼내는 것이 목적이 아닌 것이다. 분노를 내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목적은 자신의 백성이 돌아오는 것이다. 진짜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징계를 내리시기도 징벌을 가하시기도 하시는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해서만 마치 약자가 되는 것 같은 모양새다.
절대 권력자는 이렇게 하지 않는다. 자신의 명을 따르지 않는 누군가를 향해 결코 자비와 용서를 목적으로 형벌을 가하지 않는다. 형벌과 죽임을 목적으로 한다.
하나님은 절대 권력자이시며 창조주 이시면서도 인간을 향한 무한한 사랑으로 이렇게 약자가 되시는 것이다.
16절에 보면, 하나님은 또 다시 몇 사람을 남긴다.
"그러나 내가 그중 몇 사람을 남겨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서 벗어나게 하여 그들이 이르는 이방인 가운데서 자기의 모든 가증한 일을 자백하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하나님은 심판을 심판으로 끝내지 않으신다.
늘 "회복"을 함께 하신다.
관계의 회복, 정체성의 회복, 믿음의 회복을 명하신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이유이다.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본다.
아버지는 강한 것 같아도 자녀 앞에서 한없이 약한 존재가 된다.
사랑하기 때문에 때로는 자녀에게 매를 대기도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다.
아버지가 하는 훈육은 결코 훈육 자체가 목적이 되지 않는다. 회복과 용서가 목적이다. 훈육 뒤에 사랑이 있는 것이다.
나는 말씀을 읽어갈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간다.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제대로 깨달아 간다.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손길이 얼마나 큰지를 깨달아 간다.
주님, 저도 주님을 많이 사랑합니다.
주님, 저도 주님만큼은 아니지만 주님을 사랑하고 사모합니다.
주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주님을 더 깊이 사랑하기를 소원합니다. 아침 저녁으로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사람에게 받는 위로가 아닌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는 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주일 설교를 들으며 큰 위로와 격려를 얻었다.
사실 교회 안에서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역을 하며 조금 힘들다는 마음이 들고 있었다. 힘에 부친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그래서 기도했다. '하나님, 지금 너무 급하신 것 같아요. 조금 힘들어요.','하나님 저 좀 힘든데 위로와 격려가 필요해요. 제게 위로해 주세요.'
기도했다.
그런데 오늘 주일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위로와 격려를 부어주셨는지 나도 모르게 말씀을 들으며 감탄하는 소리를 내었다.
마치 내 앞에서, 옆에서 들으신 것 같이 내가 하는 기도에 조목조목 응답하셨다.
하나님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보고 계시고 count하고 계신다. 내 마음에 중심을 보고 계시며 모든 섬김과 수고를 보고 계신다. 이게 얼마나 큰 힘과 격려인지...
오늘 주일 말씀은 내 귀에 대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확성기와 같았다. 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신음하는 소리까지도 들으시는 주님의 음성이었다.
할렐루야!
아웃리치를 준비하며 선교사님과 줌미팅을 했다.
줌미팅에서 선교사님은 말씀을 전해 주셨다. 향유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발을 닦은 여인에 대한 말씀을 해주셨다.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또 한번 전율을 경험했다.
오늘 담임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이어 내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 같은 말씀을 해주셨다.
내가 지금 힘들어 하고 어려워 하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는 보고 계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훗날 이 섬김을 크게 기뻐하시고 칭찬하실 것이라는 말씀이셨다.
주일 설교와 이어지는 맥락의 말씀이셨다.
내가 좀 둔하고 의심이 많아, 잘 못알아 들을까봐 두번이나 말씀해 주신 것 같다.
하나님은 참 사랑이 많으시다.
당신의 자녀가 힘들어 하는 것을 못보신다.
돌봐주시고 지켜주시고 새 힘을 주신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이렇게 좋으신 분이시다.
나는 지금도 그분을 믿고 있다는게 가장 행복하고 가장 큰 자부심이 된다.
주님을 사랑한다.
주님, 기도 하겠습니다.
더욱 깊이 기도 하겠습니다.
주님을 더욱 신뢰함으로 기도 하겠습니다.
제게 하늘의 문을 열어 주시옵소서.
성령님 함께 하여주십시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며,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날마다 경험하게 하여 주세요.
성령님을 갈망하여 초대합니다.
사랑합니다.
주인이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