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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eneinnain Nov 24. 2020

옷이 사람을 만든다

Kleider machen Leute

젤트빌라 사람들이라는 책 속에 여러 챕터 중에 옷이 사람을 만든다 라는 이야기 가 있다.


고트프리트 켈러(Gottfried Keller)의 여러 노벨레 중 가장 동화 같은 구조를 갖고 있는 옷이 사람을 만든다(Kleider machen Leute)를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우선 동화와도 같은 줄거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노벨레는 동화로 여길 수 없다. 이러한 특징을 켈러의 다른 작품과는 다른 특이점에서 꼽자면 이 노벨레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멜랑콜리한 분위기였고 개인적으로는 그 분위기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작품의 시작부터 굉장히 멜랑콜리한데, 이러한 묘사가 매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연환경에 대해 불필요하다고 느낄 만큼 세세한 묘사보다는 어떠한 외형을 갖췄는지 혹은 주인공들이 걸치고 있는 옷의 원단까지 자세히 묘사하는 켈러의 세심함에 감탄하며 읽었다. 이러한 분위기를 잘 표현해주는 대표적인 것은 첫 번째 문장의 앞부분이었다. 11월의 음산한 어느 날. 날씨가 흐리고 으스스한 것을 자연스레 떠올리면서 긴장감을 갖고 읽게 되었다. 특히 이 노벨레에서는 유독 주인공이나 인물들에 대한 외형, 몸짓 그리고 옷맵시에 대한 묘사가 많았는데, 일상생활에서 의복과 차림새는 타인을 읽어내는 어떠한 코드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사람을 파악하는데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도 생각했기 때문에 이러한 묘사를 통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작품에 빠져들게 만든 켈러를 다시 평가할 수 있었다.


짧은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주인공 슈트라핀스키가 결혼식을 하려고 했던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 계속해서 제목을 머릿속에서 상기하면서 읽었다. 사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었는데 첫째로는 그만큼 의복이나 외형에 대한 묘사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복에 어떠한 전달하려고 하는 의미를 담은 건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세세하고도 집요한 묘사가 많았다. 두 번째로는 전체 스토리의 압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보통 작품의 제목에 작가가 하고자 했던 의도를 투영시키거나 가장 중요한 의미를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속담 중에서도 “옷이 날개다.” 혹은 “옷은 나이로 입는다.” 등등 옷에 대한 속담이나 옷을 도구로 사람의 나이 성격 혹은 됨됨이를 판단하거나 바뀔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는 속담이 많다. 지금의 시대에서는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써 의복의 역할이 강해졌다면 과거의 우리의 선조들이 살아온 시대에는 신분을 표현하거나 반대로 판단할 수 있는 잣대였을 것이라 판단된다.


빈 마차를 타고 꿈같은 시간 동안 가짜 백작 놀이를 하다가 사랑하는 이와 약혼하려 했지만 정체가 탄로 나게 되지만 나름대로 귀한 천성 덕분에 사랑도 얻고 직업적 성공도 이루게 된다. 그래서 결국 켈러는 이 동화 같은 스토리를 통해 하고자 했던 말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옷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결국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기는 섣부르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하기에는 주인공 슈트라핀스키는 본성이 착한 사람이었다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한다. 켈러는 슈트라핀스키의 일화를 통해 겉모습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일반 사람들의 선입견을 지적한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보다 큰 그림을 그리며 이 이야기를 써 내려간 것 같다.


독일어권 국가 중에서 가장 적은 배경지식을 갖고 있던 나라가 바로 스위스이다. 켈러는 여러 가지 노벨레를 통해 스위스를 알리기도 하지만 그 당시 사회의 비판할만한 점이나 켈러가 생각했을 때 불편했던 점들이 인물이나 주요 이야기들을 통해 여과 없이 드러난다. 다시 말해 켈러의 노벨레들을 통해서 스위스의 사회적 변화들을 은근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 같다. 특히 노벨레에서 다뤄지는 골다흐에 사는 사람들은 젤트빌라 사람들보다도 더 자본가적 기질을 보이는데, 개인적인 사업과 돈으로 치장하거나 호사를 누리는 삶을 병행하는 면모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슈트라핀스키의 좋은 옷맵시는 몇 일간의 꿈같은 백작 놀이를 가능하게 하기도 하고, 그의 직업이나 처해있는 환경도 다르게 보이게 한다. 그러나 그는 옷맵시 외에도 침묵하거나 우울해 보이는 눈빛 혹은 행동으로 특유의 우울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의 이러한 좋은 옷맵시는 그의 어머니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대도시를 경험하면서 갖게 된 높은 안목과 약간의 허영심이 그를 옷을 죽어도 포기할 수 없는 사람 그리고 직업적으로도 제단사라는 것을 가질 수 있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슈트라핀스키가 취해왔던 대부분의 태도와 행동은 수동적이고 뒷짐 지고 뒤로 빠져있는 듯한 소극적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네트헨이라는 소녀를 만나고 나서부터 그의 행동은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으로 바뀐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슈트라핀스키의 이름에 비해 네트헨의 이름은 매우 독특하다고 느껴졌는데 “nettchen“ 착하고 좋은 이라는 뜻을 가진 nett이라는 형용사와 어떤 명사를 축약형인 chen 이 함께 만난 단어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네트헨이 슈트라핀스키의 삶에서 미친 영향은 클 수밖에 없다. 노벨레 속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슈트라핀스키의 태도는 아래의 구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그녀 또한 얼굴이 귀엽게 빨개지면서 아주 사랑스럽게 그 기사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이방인에게 자신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안락한 소도시 여인들이 그렇듯 금방 성급하고 재빠르게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와 반대로 슈트라핀스키는 잠깐 사이에 다른 사람처럼 변했다. 지금까지는 남들이 자기에게 부과한 역할에 매우 소극적으로 부응했다면, 이제는 자기도 모르게 약간 능동적으로 말하기 시작했고 폴란드어도 제법 많이 섞어가면서 말했다. 요컨대, 여인이 곁에 있게 되자 젊은 재단사는 말이 기수가 타면 앞으로 달려 나가듯 그렇게 약동했던 것이다.


열린 결말이라고 해석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켈러가 내놓은 옷이 사람을 만든다의 결말은 해피도 아니고 세드도 아닌 약간은 찜찜한 결말이다. 슈트라핀스키를 죄책감이라고 하면 할 수 있는 백작 놀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의 일들로 폭로했던 젤트빌라 사람들에 대한 길고 긴 복수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결국 옷이 사람을 만들기 때문에 이 덕분에 슈트라핀스키는 결혼도 하고 또한 자신이 처해있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다시 말해, 네트헨이 속해있던 중상위층의 신분으로 신분상승이 가능했다. 또한 옷이 사람을 만든 덕분이었는데 이제는 남은 평생을 사람이 옷을 만들고 살게 되었으니 계속해서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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