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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yner Aug 12. 2022

무계획 계획

 나는 가능성이 좋다. 내가 무엇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 아니라, '가능성' 그 자체를 좋아한다는 뜻이다.

일견 뻔하고 특별하지 않아 보이는 이 문장을 내 나름의 방식으로 설명해보려 한다.


1.

먼저, 나는 어질러진 것을 좋아한다,로 시작해본다. 나는 어질러진 것을 좋아한다. 잘 정돈되고 오와 열을 맞춘 것도 보기 좋지만, 어질러진 배열과 조합이 주는 쾌감이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물건들이 잘 정리되어 깔끔한 인상을 주는 공간이 있다고 할 때, 과장을 보태서, 그 규칙과 정렬이 주는 긴장감과 압박이 있다. 그 긴장을 유지시키는 룰과 틀을 깨면 안 될 것만 같은 그런 긴장감이다. 이에 비해, 엉망으로 어질러진 공간이 주는 가치는 바로 '가능성'이다. 그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랜덤한 그 배열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스토리가 가능할 것만 같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책상 위에 가위와 책, 비닐봉지가 어지럽게 포개져 있고, 그 옆엔 자전거가 쓰러져 있다. 그리고 나는 뭔가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


일단 모두 가방에 넣고 자전거를 끌고 날씨 좋은 밖으로 나가보자. 나에게는 무려 가위와 책과 비닐봉지, 그리고 자전거가 있다. 따뜻한 햇볕을 쬐며 자전거를 타고 근처 한가로운 공원으로 갈 거다. 잔잔한 바람이 부는 그늘진 곳에 자리를 잡고, 책을 편다. 눈에 보이는 대로 단어들을 오려본다. 동사도 잘라내고 장소나 시간을 뜻하는 단어들도 오려본다. 30분이면 충분히 다양한 단어들을 오려낼 수 있을 것 같다. 100개쯤은 오려내고 난 다음, 비닐봉지에 모조리 넣는다. 잘 섞이게끔 봉투를 흔들어 재낀 다음, 나는 손을 넣어 하나씩 랜덤하게 단어들을 꺼낸다. 장소 하나, 사람 하나, 동작 하나, 또 다른 하나, 또 다른 하나..  10개 정도 골라내고 나면, 나는 이제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뽑힌 단어들로 하루를 살아야 한다. '백화점', '2시간', '이민선'이란 단어가 나왔다면, 2시간 안에 가까운 백화점으로 달려가 이민선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을 찾는 것이 미션인 것이다. 미션을 달성하면 오늘 저녁은 좀 비싼걸 먹어본다. 이런 삶을 살아보는 건 어떨까? 상상만으로 즐거운 일이다. 상상만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두근거릴 일이다.  


물론 이는 하나의 예시적 상상으로, 내가 왜 어질러진 공간을 좋아하는지 설명하는데 충분치 않을지 모른다. 그래도 대략적이나마 어떤 느낌으로 ‘가능성의 매력'에 설레여하는지는 전달되었을 것 같다. 비슷한 의미로 하얀 백지와 같은 빈 공간도 좋아한다.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아서, 무엇이든 쓰일 수도, 무엇이든 그려질 수도 있는, 유행하는 노래 가사를 적을 수도,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을 그리거나, 인터넷에서 본 어떤 기사를 토대로 소설을 써서 문학계에 혜성처럼 등단할지도 모를 일이다.


비슷한 관점에서 정해지지 않은 모든 것들은 나에게 '가능성'으로 다가온다. 치밀하게 계획되지 않은 여행, 무엇을 살지 생각하지 않고 가는 백화점 쇼핑, 아무런 스케줄도 짜지 않은 3일의 자유 시간, 새로운 모임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이야기들, 새로운 조합과 새로운 시작들.   


내가 '가능성'을 좋아하는 삶을 살게 된 건, 부정할 수 없는 어떤 명제 때문이다. 한번 사는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남들이 살았던 방식으로, 비슷하고 똑같은 삶을 살다 갈 것이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늘 새롭고 예기치 못한 돌발의 무엇을 좋아했다. 나의 삶이 다른 누군가의 그것과 비슷하게 흘러가다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적어도 내가 살아낸 이 삶이 나름의 사연과 나름의 재미와 행복을 가진 채 나름의 규칙과 운율을 따라 흘러가길 기대했다. 나만의 여행이 누구나 가는 패키지여행 같지 않기를 바랐다.



2.

그렇다고 모든 인생을 랜덤으로 살 수는 없어서(그랬다면 더 두근거렸을지 모르지만), 의식주 생존에 관련된, 그리고 좀 더 나아가 내 안위와 삶의 일정 수준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일들은 가능한 '가능성' 보다는 '안정성'을 우선시했다. 아니 오히려 대부분의 삶에서 나는 '안정성'을 최우선의 미덕으로 삼아왔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안정성을 가장 지향해왔기 때문에 이제는 새로운 가능성을 누리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나의 현재의 안전과 미래가 담보된 상황에서의 '열린 가능성'이란 그야말로 설레는 무엇이기 때문이다. 아늑한 방안 따뜻한 이불속에 누워, 세찬 폭우가 쏟아지는 창 밖을 보는 기분이랄까. 가족들이 다 있는 거실에서 범죄 스릴러 영화의 오싹함을 즐기는 기분이랄까.


이렇게 '안전이 담보된 가능성'을 좋아하는 나라서, 즉흥적인 성향의 보통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특징도 있다. 아예 완전히 새로운 모험이나 우연보다는, 미리 어느 정도의 안전장치는 마련하는 편이다. MBTI로 따지면, J 같은 성향을 일부 가진 P성향인 것이다. 아무런 연고도, 계획도 없는 여행이라도 믿는 구석은 늘 마련해두고 간다. 해외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최소한 든든한 가이드북과 첫 숙소 예약, 환전, 반드시 가야 할 곳과 같은 기본 조사들이 필요했다. 어떤 음식이 대표적이고, 꼭 해봐야 할 것은 무엇이고, 내 첫 비행 출발 시간은 몇 시고, 첫 숙소는 어디로 잡을 것인지, 핸드폰 유심은 어떻게 마련을 할 것인지 정도다. 어느 정도 필수 요건들이 확보되었다고 생각되면, 그때부터는 이제 즉흥 모드로 전환이다. 공항에서부터 숙소까지 안전한 방식으로 도달하고 나면, 그 이후의 일정은 모두 열린 가능성의 영역, 즉 '정해진 바 없음'으로 두었다. 나의 수많은 추억들이 이 '가능성' 덕분에 가능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이런 자유로움은 혼자일 때 극대화될 수 있기 때문에 나의 대부분의 '중요한 여행'(예를 들어 10시간 이상 걸려 가야 하는 모처럼의 유럽 여행이라든가)들은 혼행으로 이루어졌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은, 비교적 ‘덜 위험한’ 여행을 활용했다. 쉽게 다시 할 수 있는 국내 여행이라든가 가까운 동남아라든가.


 이와 비슷한 예로, 나는 친구와의 약속도 랜덤한 방식으로 하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생판 모르는 동네에서 우연히 맘에 드는 가게를 찾아갈 가능성을 기대하는 것도 재밌겠지만, 우리네 직장인의 휴일과 휴식시간은 대단히 짧다는 것과 형편없는 체력 이슈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자주 사용하는 지도 어플에 좋다고 하는 동네마다의 맛집을 잔뜩 저장해 놓는 편이다. 그래서 대충 별표가 3, 4개 이상 찍혀있는 동네의 어딘가를 약속 장소로 정하고, 그 근방에서 '안전이 담보된 가능성'을 즐기는 편이다.


이야기하다 보니, J 같은 면이 너무 강조된 것 같아 비교 삼아 설명하면, 한 때 J 성향이 짙은 여자 친구를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여자 친구는 한동안 나에게 서운한 마음을 꽤 가지고 있었는데, 그건 내가 연애 초기를 제외하고는 미리, 며칠 전에, 이번 주말엔 무엇을 할지 어딜 가고 뭘 먹을지 정하는 Comm.을 하지 않는다는 불만이었다. 나는 억울했다. 나는 이제 좀 친해진 것 같아서, 나의 '열린 가능성'을 함께 할 수 있는 파트너를 믿었건만, 그리고 혹시나 아무런 계획도 없이 만난다고 생각하는 그 약속이, 나에게는 이미 어느 정도의 큰 그림이 있는, 계획된 무계획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내가 가진 '안전이 담보된 가능성' 선호 성향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싱가포르에서였다. 10살쯤이었나, 부모님을 따라 떠난 첫 해외 여행지에서, 우리는 새로운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멋진 기억은 어떤 레스토랑에 관한 것이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콘셉트만은 확실히 기억난다. 커다란 마트를 끼고 있는 가게였는데, 손님들이 마트에서 원하는 식재료를 자유롭게 가져오면 그 재료를 가지고 요리사들이 가능한 요리를 맛있게 해서 내주는 곳이었다. 충격이었다. 이런 게 있다고? 이런 게 가능하다고? 10살 인생, 얼마 살진 않았지만 그런 기발함은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얼마나 자신이 있으면 마음대로 가져오면 알아서 조합해서 맛있는 요리를 내주는 걸까. 실제 콘셉트는 조금 달랐을지 모르지만(해물과 채소 위주의 마트여서 조합이 나름 정해져 있다든가), 어쨌든 그 기억은 내 자유로운 인생관에 충분히 큰 영향을 주었던 것은 분명하다.     



3.

그런 점에서 나에게 커서가 깜빡이는 흰 모니터 화면은 두근거림을 준다. 어떤 얘기를 어떻게 시작해볼까. 무슨 얘기를 하다 말까, 어떤 음악을 들으며 어떤 상상을 해볼까. 이 깜빡임의 속도가 빠를까 내 심장 박동이 빠를까. 무엇이든 가능한 이 공간이 나는 좋다. 슬픈 노래를 틀고 슬픈 감성으로 써볼까, 신나는 노래를 틀어놓고 한껏 유쾌한 글을 써볼까. 무슨 소재와 무슨 형식으로 요리를 내어볼까. 그런 점에서 내가 글쓰기를 재밌어라 하게 된 건 결코 우연은 아닌 듯하다.

 

문득, 이 가능성의 문을 나도 모르는 사이, 닫아오며 살았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안정성을 확보하고 리스크를 줄인다는 명분으로. 나이가 하나둘 들면서 설렘은 줄어들고 두근거림은 잦아들 수밖에 없지만, 그 탓이 현실에 두 다리를 딛고 사는 현대인의 슬픈 비극 때문이겠지만, 확연히 20살 때의 나의 두근거림은 회의감과 안정감의 그 어딘가로 적당히 버무려져 처음의 그 빛이 바래지고 있는 것만 같다. 첫사랑에게 기대했던 사랑의 설렘이 수많은 시행착오들로 무참히 깨지고 밟히거나 자질구레해지고 나서도 여전히 사랑을 떠올리면 두근거리기를 바라는 건 아닐까. 무엇이든 가능한 사회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무엇인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르는 책임과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것들을 배웠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한 껏 들뜬 감정을 토해내고 싶어도 '나이에 맞는 글'이라든가 '사회적 위치와 관계'를 생각해야 한다는 준거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산문이라는 자유로움에 기대어, 독서 모임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써오세요! 라며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 정도만이 내가 맘 편히 할 수 있는 자유일지도 모른다.


나는 어느덧 설렘과 가능성을 떠나 안락과 안정을 향해 많은 걸음을 왔는지 모른다. 하얀 백지 위에 문장 하나를 쓰는 것 마저 준거를 생각하고 주위의 시선을 떠올린다. 순수는 흉내 낼 수 없다고 했다. 가끔은 아무것도 모른 척 마음이 끌리는 대로 모든 규칙과 룰을 잊어버리고 가능성만을 향해 내달리고 싶은 것 같다. 오늘은 글을 퇴고하지 않고 끝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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