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공간이라고 해놓고
결국엔
내 무덤 앞 작은 bar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글 쓰는 걸 좋아해서
그럴듯한 취미의 증거물이거나
간혹, 아주 간혹
콘텐츠에 공감해 오며 대화의 물꼬를 트는 용도라는 말로는
사실 이 공간의 의미를 다 설명하지 못한다
아니, 거의 담아내지 못하는 편에 가깝다
그보다는
나의 끝자락에
나의 간절하거나
치명적인 어느 그 순간에
마지막으로 들르게 될
마지막으로 기대게 될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포옹으로 마무리할
그런 어두컴컴한 bar라는 설명이 오히려 순기능에 가깝다
결국엔
그 모든 상호작용들이 주는 크고 작은 행복과 재미의 순간들은
부산물에 지나지 않고
본질은
나를 위한
나만의 작은 bar
컴컴한 테이블 너머
온화한 미소를 띈 그는 나를 닮았다
그가 잔을 건넨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내가 좋아하는 향기와
내가 좋아하는 어두움과
편한 의자와
멋진 옷차림새
그리고 마음에 드는 안주와 함께
나를 향해 단조롭게 말을 건넬
그 작은 bar가
여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냐는 말이다
각자
이런 방법
저런 방법으로
자신의 철학을 설파하거나
자신의 감상을 공유하거나
일상의 촉촉하고 시큰한 부분들을 내밀고 다듬지만
사실 이 모든 작업들은
각자 자기만의 bar를 만드는 과정인지 모른다
그때 그날에
올릴 잔 하나와
술과 음악과 향기를 고르는 일이다
편히 앉을 의자를 고심하고
그날의 조명을 신경 쓰는 일일지 모른다
누군가는 아내를 바라보고
누군가는 자식을 바라보고
누군가는 가까운 친구를 바라보고
누군가는 그의 지긋한 어머니나
아버지를 바라보며
나는 괜찮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그런 다음.
그다음은?
내가 행복했던 순간들
슬프지만 내가 푹 빠져있던 순간들
힘들었지만 나를 강하게 만들고 나를 키워주었던 그 애증의 아픔들을 마주하며
나는 내 앞에 놓인 유리잔을 들어 올렸다
웃고 울었던
칭얼거리고 짜증 내고 분노에 가득 찼던 그 하나하나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내렸다
한 모금 들어 올렸다
내렸다
음악은 좋고
온도는 따뜻하리라
문 밖에는 나를 사랑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위해
나의 이 시간을 위해 기다려준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인적 드문 골목 뒤편
아무도 없는 작은 bar
나는 나를 만나러 간다
이제 나는 푹 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