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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yner May 23. 2024

음악은 나를 데려가서

불안을 이야기할 때 그는 밖으로 나갔다


정적인 불안

어떤 문제가 발생해서가 아니라,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아서 생기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그는 밖으로 나갔다.

불안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는 밖으로 향했다.


날씨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맑으면 맑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날이 화창하면 흐리고 불안한 내면과 상반되어 그 부조화가 더 극적으로 다가왔고, 날이 좋지 않으면 마침 제대로 판이 깔렸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필요 이상으로 감정이 흔들리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음악은 중요했다.

그것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기분과 마음에 영향을 끼쳤다. 장르에 대한 호불호는 크지 않았으나, 어떤 장르든 그 분위기를 잘 해석해내지 못하는 것은 문제라고 느꼈다.

그 상황에 적절한 우울감이 중요했다.

너무 질질 짜지도, 문제를 과하게 다루어서도 안되고, 딱 문제의 깊이와 중요성만큼 진지하길 바랐다.

그래서 그는 플레이 리스트를 신중하게 골랐는데, 특히 첫 곡이 어려웠다.



음악은 물리적 기동력을 주었다.

음악은 그를 갈대가 휘적거리는 노을 지는 강변으로 데려갈 수 있었고, 어두운 도시의 밤이 잘 보이는 높은 건물 옥상으로 데려갈 수도 있었다. 적당한 가을바람이 부는 언덕으로 갔다가 조명이 거의 없는 지하실 구석진 방으로 데려가기도 했다.



청력의 힘은 생각보다 대단해서, 주변 냄새라든가 온도, 사람들의 북적거림, 심지어 눈에 들어오는 빛의 양 까지도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달리지 않아도 세찬 바람을 얼굴로 맞게 해 주었다. 그 덕분에 금세 쓸쓸하거나 먹먹해질 수 있었다.



음악은 나를 어디로든 데려가서,

어두운 바다 정적을 끊는 한숨이 되었다가

불빛 없는 골목 사이 알아듣기 어려울 혼잣말을 만들고,

고통, 좌절의 한편을 돕다가도

결말이 없는 어느 이야기의 시작이 되었다


용기를 속삭이는 방법으로,

온몸에 힘을 불어넣어 주거나

생각지도 못했던 그 무엇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렇게 음악에 빚진 지 오래다.


어느 조용한 아침 발가락 하나도 힘주기 어려운,

바로 그런 때에도 내가 다시 방문을 열어젖히게 할 무엇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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