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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Oct 29. 2023

창백한 푸른 점

창백한 푸른 점

 

내 고향은 정읍 소성면 구룡 마을이다. 논과 동산이 어우러져 있고 앞으로는 개천이 흐르는 시골이다. 읍내에 나가려면 버스로 한 시간쯤 걸린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까지 시골집에서 다녔다. 요즘은 부모님을 뵈러 가끔 들르는 곳이 됐다. 고향에 갈 때면 기분이 살짝 들뜬다. 우리 마을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별이 잘 보인다는 것이다.

  

시골집에 가면 가끔 별 구경을 한다. 주로 새벽에 본다. 잠에서 깨어나면 망설이지 않고 마당에 나간다. 아직은 낯선 방문객을 향해 개가 짖는다. 깊은 잠에 빠진 가족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은 가을의 새벽 공기는 선선하기보다는 쌀쌀하다. 풀벌레는 잔잔하게 운다. 개 소리도 잦아진다. 시골집은 다시 고요해진다. 별은 이제 내 눈을 채운다.

  

40년 전, 밤은 지금보다 아름다웠다. 나는 어머니 마실을 따라다녔다. 어머니는 4남매 중에서 맘에 드는 한두 명의 손을 잡았다. 골고루 한다고 했겠지만, 장남인 나와 막내가 많이 갔던 것 같다. 이웃집 할머니는 가끔 제사 때 쓰고 남은 사탕을 쥐여 주었다. 입에 물고 있으면 혀가 빨개졌다. 내가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 어머니의 이야기도 <전원일기>와 함께 막을 내렸다. 어머니는 우리의 손을 잡고 집으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동네에는 가로등이 없었다. 그래서 더 어두웠다. 박쥐 수십 마리가 안 부딪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어지럽게 날아 다녔다. 반딧불이는 요염하게 어둠을 밝혔다. 몇 마리를 잡아 빈 병에 가둬두면 점멸 신호등처럼 깜빡거렸다. 밤하늘은 북두칠성과 은하수가 채웠다. 가끔은 별똥별도 볼 수 있었다. 그때 소원을 빌었으면 지금쯤은 큰 부자가 되어 있을 것 같다. 별을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평안해졌다. 그때 시작한 별을 향한 짝사랑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별 이야기라면, 청년 시절 배를 탔던 경험을 빼놓을 수 없다. 적도 부근에 가면 별이 한가득이다. 빛과 공해가 없으니  별이 가장 잘 보일 수밖에 없다. 너무 외롭거나 힘들면, 별을 보며 맥주를 마셨다. 때로는 선교에 올라 커피를 마시며, 망원경으로 별을 봤다. 운이 좋으면 이글거리며 불타는 별, 불꽃 축제의 폭죽처럼 쏟아지는 별똥별을 볼 수 있었다. 별을 보고 있으면 외로움도 뭉그러졌다.

  

내 고향의 밤은 많은 게 달라졌다. 별은 예전만큼 보이지 않는다. 박쥐는 사라졌다. 반딧불이는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다. 그 흔했던 게 이제는 인터넷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 됐다. 환경 파괴 때문이다. 병충해를 막으려고 뿌려대는 농약은 많은 생물을 같이 죽였다. 인간의 욕심 때문에 지구상의 많은 동식물이 멸종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처럼 멀지 않아 다른 행성을 찾아 나서야 할지도 모르겠다.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에는 1990년 보이저 1호가  찍은 사진 한 장이 있다. 그 사진의 중심에는 조그만 네모가 있고 그 안에 아주 작은 점이 있다. 그는 ‘우리는 여기에 있다’라며 지구를 설명하고 있다. 칼 세이건은 이 책에서 ‘지구는 광활한 우주에 있는 보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많은 사람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천문학은 겸손과 인격 수양의 학문이라고 한다. 나는 가끔 이 사진을 본다. 마음이 조급해지거나, 누군가 미워질 때 보면 더 좋다. 이 사진은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칼 세이건은 인간이 가진 자만의 어리석음을 알려주는 데 우리의 조그만 전체를 멀리서 찍은 이 사진 이상 가는 게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창백한 푸른 점에서 너무 아등바등 살아간다. 전쟁하며 서로 죽이고, 환경을 파괴한다. 우주에서 보면 지구의 모든 존재는 티끌만 한 점에 불과하다. 칼 세이건은 창백한 푸른 점에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관용과 사랑이라고 말했다.   

                                      <칼 세이건의 , '창백한 푸른 점'에 실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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