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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Oct 22. 2023

아이 사진

아이 사진


작년 겨울, 영화관에서 혼자 ‘아바타 2’를 봤다. 영화의 마지막 2분은 지금 생각해도 뭉클하다. ‘아바타 2’는 판도라 행성에서 주인공 제이크의 가족이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 공상 과학 영화다. 제이크의 아들인 청년 네티이얌은 부족 간의 전쟁에서 총을 맞고 죽는다. 제이크는 아들을 산호섬에 묻고, 함께 자주 가던 영혼의 나무를 찾는다. 추억을 회상하던 중 물고기를 잡는 어린 아들 네티이얌이 나타난다. 아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제이크에게 네티이얌은 왜 우느냐고 묻는다. 제이크는 “너를 보는 게 좋아서”라고 답한다. 네티이얌도 “저도 아버지를 봐서 좋아요”라고 말한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우리 아이의 어린 시절이 그려졌다. 아빠가 안 됐다면, 제이크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내 눈은 촉촉해졌다. 바깥은 추웠지만, 가슴은 영화관을 나서는 내내 따뜻했다.


그날 이후로 아이의 어릴 적 사진을 보면, 미묘한 감정이 든다. 순서는 대개 비슷하다. 먼저 귀여웠던 행동을 떠올리며 웃는다. 다음은 잘해 주지 못했거나, 화를 냈던 게 마음에 걸린다. 마지막은 아이와 함께했던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아이가 자랄수록, 그 아쉬움은 더 커진다.

 

지난해 10월 초순에 목포에 사는 가족이 인천에 놀러 왔다. 그날 가을비가 내려, 갑자기 쌀쌀해졌다. 아내는 초등학교 6학년 딸에게 관사에 있는 내 점퍼를 줬다. 약 10년 전 겨울에 작업하면서 입었던 옷이다. 손사래 치던 중학교 3학년 아들과는 달리 딸은 옷을 건네받았다.


우리는 함께 공원을 돌았다. 딸은 내 손을 잡고 따라다녔다. 날씨 때문인지 손은 더 따뜻했다. 나는 딸에게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65층 빌딩이 뒤로 보이고 공원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딸은 다리에 기대어 자세를 잡았다. 엄마가 대충 깎은 듯한 단발머리, 통통하게 오른 볼, 억지로 웃어 더 찢어진 눈, 누가 봐도 시골스러웠다. 게다가 아빠의 파란색 점퍼까지 입었으니 더 그랬다. 딸은 더 커서 이 사진에 자신의 흑역사가 찍혔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는 너무 사랑스러운 딸이다.

        

일 년이 지난 지금, 딸은 많은 게 달라졌다. 얼굴은 갸름해지고, 성격은 날카로워졌다. 나를 보는 눈빛은 예전 같지 않다. 중2병도 중증이다. 아들을 보며 시간이 지나면 낫는다는 걸 알게 됐지만, 아내는 아들보다 더한다고 한다. 스마트폰을 끼고 살고, 공부는 뒷전이다. 가끔은 심한 말과 버릇없는 행동으로 엄마의 화를 돋우기도 한다. 도를 넘었다는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커서 뭐가 될지 걱정이다.'라는 등의 가시 돋친 문자를 딸에게 보내기도 했다. 그러고 나면 대부분은 후회한다.


이번 주말, 아내와 딸은 오랜만에 인천에 놀러 왔다. 우리는 파주 오대산 평화 전망대에 들렀다. 망원경으로 북한을 바라봤다. 학교에서 많은 아이들이 운동회를 하는 것 같다. 표정까지는 아니지만, 그 아이들의 웃는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딸은 망원경을 여러 번 보면서 신기해했다. 다 큰 것 같다가도, 자세히 보면 아직 애다. 딸도 공부하란 말, 스마트폰 그만하라는 말 대신 나가서 신나게 놀라는 말만 들으면, 앓고 있는 병도 쉽게 나을 것 같다. 그렇다고 내버려 둘 수 없는 게 부모 마음이다.

 

이번에도 딸의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요즘은 카메라를 들이대면 얼굴을 손으로 가리거나, 등을 돌린다. 그래도 한두 번은 웃으면서 손으로 브이를 그린다.  아이 때문에 화가 나면 아이의 어릴 적 사진을 본다. 그러면 마음이 조금은 차분해진다. 생각해 보면 아이와 함께하는 지금이 참 좋은 때다.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딸의 좌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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