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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Nov 17. 2023

고독한 가을

주말부부로 지내며, 대개 격주로 집에 간다. 인천과 목포를 오가려면 버스로 열 시간쯤 걸려서 피곤하기도 하고, 10만 원쯤 드는 교통비도 부담되기 때문이다. 2020년 초에 발령이 났으니, 벌써 4년째다. 그러면서 40대의 절반을 보냈다. 빠르게 흘러간 시간만큼 아이들은 훌쩍 컸다. 아들은 고등학생, 딸은 중학생이 됐다.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에게는 아빠, 그 아이들을 보살피는 아내에게는 남편의 존재가 더 필요하다. 그래서 더 미안하고 아쉽다. 나 또한 가족의 온기가 그리울 때가 많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다. 식구의 사전적 의미는 한집에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게 본다면 나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늦가을에 접어들면서 관사 주변은 더 고요해졌다. 봄여름 지저귀던 새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가끔 울던 고양이 소리도 마찬가지다. 사람들마저도 그렇다. 대지에 퍼지는 찬 기운이 자연을 차분하게 만드는 듯하다. 관사에도 정적이 흐른다. 윗집 사람의 투박한 발걸음 소리만이 유일하게 느껴지는 다른 존재의 움직임이다. 그래도 바깥보다 따뜻해서, 마음은 포근하다.


집에 가지 않는 금요일 저녁은 혼자서 해결할 때가 많다. 오늘은 오랜만에 8km 떨어진 식당에서 닭발을 사 왔다. 예전 관사에 살 때 종종 먹던 곳인데 근처에 갈 일이 생겨서 들렀다. 약간 매운맛이 감돌면서 불맛이 나는 게 막걸리와 잘 어울린다. 한 병으로는 약간 부족할 것 같아 두 병을 집었다.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금세 다 비웠다. 막걸리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 그 효과 때문인지 실없이 웃음이 난다. 하지만 어딘가 허전하다. 고독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혼자서 저녁을 먹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라고 설명하면 얼추 정답에 가깝지 않을까!


푹 자고 싶었던 내 생각과는 달리 새벽 두어 시부터 배가 살살 쓰렸다. 막걸리의 부작용을 간과했다. 과음한 데다 잘 씹지 않고 급하게 삼킨 닭 뼈를 소화시키느라 몸이 보대끼는 듯했다. 화장실에 가고, 수면에 좋다는 명상 음악을 들어도 소용없었다. 뜬눈으로 날을 샜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아침은 두세 달 전에 집사람이 주문해 준 간편 죽으로 해결했다. 따뜻한 게 속에 들어가니 조금 나았다.


오후에는 프로축구를 보러 갔다. 오랜만에 지갑도 챙겼다. 요기라도 하려면 현금이 필요할 것 같았다. 인천과 전북의 경기다. 경기장에서는 응원단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목이 타서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시켰다. 스마트폰으로 결제하기가 번거로워 지갑에서 카드로 꺼냈다. 4년 전에는 고향 팀 전북을 응원했다. 이제는 인천의 골에 환호했다. 경기는 공평하게 1 대 1 무승부로 끝났다. 오랜만에 소리를 질렀더니, 기분이 풀렸다. 경기는 네 시가 넘어서 끝났다. 오늘은 죽을 먹은 게 마지막이었다. 허기졌다.


지하철역 앞 후미진 식당에서 삼계탕을 시켰다. 만삼천 원이다. 요즘 보기 힘든 가격이다. 한약 냄새는 나지 않았다. 마늘과 찹쌀만 넣어서인지 담백하다. 막 익은 깍두기도 한 그릇 더 달라고 했다. 한 그릇 깨끗하게 비우고 지하철을 탔다. 공단으로 지나는 노선이라 그런지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다.


지하철에서 내려 집에 가려는데 뭔가 허전하다. 아무리 뒤져도 없다. 지갑이 사라졌다. 지갑에는 10만원 가까운 돈과 운전면허증, 카드가 들어 있었다. 지갑은 처제가 선물로 준거다. 식당에 전화부터 했다. 식당 아주머니는 없다고 했다. 사실,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밥값도 전화기에 있던 카드로 했기 때문이다. 축구장에도 전화를 했다. 찾으면 연락을 주겠다는 답변뿐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을 걸어서 지하철을 탔다. 분명 누군가는 내 지갑을 주웠을 것이다. 지하철에서 옆에 앉았던 외국인 여성, 축구 단체 관람 왔던 중학생,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과 통로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만 어설프게 그려질 뿐이었다.


다시 지하철을 탔다. 다시 찾을 확률은 1%도 안 될 것 같았다. 그래도 다시 확인해야 후련할 것 같았다. 지하철 역사부터 식당까지 걸었다. 500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였다. 종종 보이는 쓰레기가 다였다. 식당 아주머니에게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아주머니는 안타깝게 쳐다보며 없다고 했다. 밖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늦가을의 선선한 공기도 다시 대지를 채웠다. 땅을 보며 걸었다. 몸은 가벼웠고, 마음은 무거웠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관사까지 걸었다. 빈털털이가 된 기분이었다. 관사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오늘도 윗집 남자는 힘차게 걷는다. 아내에게 고함도 지른다. 한숨만 나온다. 고독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늦은 가을 저녁, 지갑을 잃어버린 중년 남자가 땅만 보며 걷는 감정이라고. 아! 고독한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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