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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Mar 24. 2024

홋카이도 여행

3월 17일부터 21일까지 일본 홋카이도에 다녀왔다. 해외여행은 생각만 해도 설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여행 계획을 짜려고 유튜브를 찾아봤다. 3월과 4월에는 삿포로(홋카이도의 도청 소재지)에 가지 말란다. 그것도 홋카이도 여행 책자를 쓴 유튜버가 그랬다. 홋카이도는 11월부터 눈이 내린다. 그러다 3월이 되면 눈이 녹는다. 눈은 고요하게 내릴 때가 가장 예쁘다. 녹을 때면 이보다 더러운 것도 없다. 제설제로 쓴 검은 모래, 자동차의 매연과 같은 오염 물질이 섞여 새하얀 눈이 지저분하게 물든다. 홋카이도의 유명한 설경도 제대로 볼 수 없다. 그러면서 이번 여행은 망했다고 마음먹으면 오히려 나을 거라고 했다. 봄이 이미 온 규슈를 가려다 특가 항공권 때문에 선택한 여행이었다. 그래서 항공권 취소도 안 된다. 홋카이도는 아직 춥다. 옷장 구석으로 밀려났던 파카와 목티, 장갑까지 꼼꼼히 챙겨 가방을 쌌다.   

  

출발하는 날, 목포에는 제법 봄기운이 감돌았다. 목련도 곧 꽃망울을 터트릴 것 같았다. 봄을 뒤로하고 겨울의 끝자락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씁쓸했다. 그것도 잠시였다. 귤색 비행기를 보니, 다시 설렌다. 하늘을 난 지 두 시간 반쯤 지나자 눈 덮인 산과 마을이 보인다. 5일간 머물 삿포로행 버스를 탔다. 도로는 유튜버가 말한 대로였다. 버스에서 내리자, 설상가상 비까지 내렸다. 아내는 하나뿐인 우산을 내게 건넸다. 아내는 후드티의 모자를 눌러썼다. 우리는 여행 가방을 하나씩 밀었다. 눈이 덜 녹아서 질퍽거리는 데는 가방의 바퀴가 잘 굴러가지도 않았다. 그늘진 곳은 아직 빙판이어서 걷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구글 지도로 숙소를 찾았다. 걷다 보니, 거리가 더 멀어졌다. 방향 감각이 없어서 반대로 갔다. 아내는 짜증을 냈다. 그러면서 전화기를 달라고 했다. 아내는 숙소를 쉽게 찾았다. 구글 지도에는 라이브 뷰가 있다. 이 기능은 도로를 비추면 가야 하는 방향을 화살표로 표시해 준다. 구글 번역기와 지도만 있으면 웬만한 해외여행을 편하게 할 수 있다. 아무튼 좋은 세상이다. 짐을 두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아내는 좀 전의 일이 미안했던지, 먹고 싶은 게 있는지 물었다. 나는 먹는 것 때문에 줄 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유명 맛집도 알아 두지 않았다. 구글 평점과 댓글을 보고 마음에 드는 집을 골랐다. 60대쯤으로 보이는 부부가 하는 오래된 점포였다. 벽에는 일본 손님의 사진과 사인이 많이 걸려 있었다. 우리는 오늘의 추천 메뉴인 회덮밥을 주문했다. 삿포로에 왔으니, 맥주도 빠질 수 없다. 회는 신선했고, 담백했다. 게다가 맛있게 먹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허기진 게 최고의 반찬이다. 삿포로에서의 첫 끼가 그랬다.

     

이번 여행은 항공권, 숙소 예약부터 일정까지 모두 아내가 짰다. 꼼꼼한 데다 자유 여행을 여러 번 해서 믿을 만하여서 알아서 하라고 했다. 인터넷에서 추천하는 홋카이도 여행 일정이 대개 비슷한 이유도 있었다. 둘째 날은 아침 일찍부터 삿포로 해산물 시장과 시내를 둘러봤다. 2월에 열리는 눈 축제로 유명한 오도리 공원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 만큼의 눈만 남아 있었다. 다음은 기차를 타고 삿포로에서 30분쯤 걸리는 오타루로 갔다. 오타루는 아름다운 운하가 있고, 오르골 판매점과 같은 오래된 건축물의 예쁜 상점들이 모여 있다. 그래서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기차를 타고 갈 때는 오른쪽 풍경을 잘 봐야 한다. 10분쯤 지나자, 기찻길 옆으로 바다가 보였다. 파도가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매섭게 몰아쳤다.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와 하얗게 쌓인 흰 눈이 어우러져 겨울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바다를 끼고 15분쯤 더 달린다. 오타루에 다시 간다면 도시 보다는 기차에서 보는 바다가 좋기 때문일 것이다.

     

셋째 날, 창밖이 밝았다. 분명 어제와는 달랐다. 커튼을 걷었다. 수북이 눈이 내렸다. 눈 예보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길에도 눈이 쌓였다. 차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쌩쌩 달렸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겨울의 익숙한 일상일 것이다. 이날은 비에이 버스 관광을 하기로 했다. 홋카이도의 면적은 우리나라의 83.7%에 달한다. 관광지는 곳곳에 흩어져 있다. 대중교통을 타기도 어렵다. 여행자들은 여행사의 버스를 타고 관광지를 둘러보는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비에이는 삿포로보다 북쪽에 있다. 그래서 더 춥고 눈도 많이 내린다. 길가에는 대충 봐도 1m가 넘는 눈이 쌓여 있었다. 넋 놓고 경치를 바라봤다. 회색빛의 자작나무가 흰 눈과 잘 어울렸다. 나무마다 달린 겨우살이가 마치 설산에 핀 초록빛 꽃 같았다. 가끔 사슴과 여우도 보였다.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이 내리는 척박한 환경 때문에 오히려 자연은 더 잘 보전되는 것 같았다. 그곳의 찬 공기는 사람의 몸을 움츠리게 하지 않았다. 사람의 정신을 맑게 하고,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신선한 대기였다. 네 시쯤 되자 어둑해졌다. 자작나무 숲과 오두막이 있는 닝구르테라스에 도착할 때쯤 눈이 내렸다. 홋카이도의 하늘은 눈을 쏟아붓는 듯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를 튀밥으로 표현한 만화를 본 적이 있는데 그게 과장이 아니었다. 이래서 겨울에 홋카이도 여행을 해야 하나 보다.

     

다음 날은 동네 온천에 가기로 했다. 아내는 원래 가기로 했던 온천 관광지보다는 이곳 물이 좋다는 글을 읽은 모양이다. 완행 기차를 타고 20분쯤 걸리는 가미놋포로역에서 내렸다. 우리나라로 치면 무궁화호만 서는 아주 작은 역이다. 10분쯤 걸었더니 사토노모리(마을과 숲) 온천장이 보인다. 일본의 3월 20일은 춘분의 날로 공휴일이다. 그래도 번잡하지는 않았다. 이용객은 지역 주민 같았고 외국인은 나밖에 없는 듯했다. 공중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몇 년 만에 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몸을 씻고, 사우나 들어갔다가, 온탕에 몸을 담갔다. 무엇보다 노천탕이 마음에 들었다. 온천물은 베이킹 성분이 있어서 피부가 미끈미끈해졌다. 몸을 담그고 눈 덮인 숲을 바라봤다. 얼굴에 와 닿는 찬 기운이 기분을 상쾌하게 했다. 지나가는 기차를 보는 것도 감미로웠다. 돌아오는 길에 삿포로 맥주 박물관에 들렀다. 종류별 맥주를 석 잔에 담아 천 엔에 판다. 목을 부드럽게 타고 흐르며 풍미가 가득하다. 온천물로 몸을 녹이고, 맥주로 목을 축였다. 숙소 텔레비전에서는 한국에서 열린 다저스와 샌디에이고의 메이저리그 개막전을 중계했다. 외국에서 한국 야구장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일본 삿포로에서만 파는 삿포로 맥주 클래식을 매일 마셨다. 그렇게 밤이 저물었다.  

   

여행 마지막 날이다. 한국의 따뜻한 봄볕과 활짝 핀 목련을 기대하며 비행기에 탔다. 웬걸, 목포에는 꽃샘추위가 닥쳤다. 홋카이도보다 더 춥다. 게다가 황사까지 섞였다. 짐을 풀었다. 목티와 목도리, 장갑은 세탁을 마치면 또다시 구석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여행 기간 매일 2만 보 이상 걸었다. 매일 맥주를 마셨는데도, 몸무게는 500g 줄었다. 여행 유튜버의 말처럼 홋카이도 여행은 3월과 4월이 비수기다. 선선한 여름과 눈 내리는 겨울이 여행하기에 가장 좋다고 한다. 그래서 성수기에 80만 원 하는 항공권을 15만 원에 살 수 있었다. 복잡한 게 싫고, 싸게 여행하고 싶다면 3월 중순에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설경도 보고, 운이 좋으면 눈도 맞을 수 있다. 홋카이도에는 눈만 있는 게 아니다. 동네 온천과 음식점을 둘러보고, 기차를 타고 겨울 바다를 보고, 삿포로 한정판 클래식 맥주만 마셔도 홋카이도를 여행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벌써 홋카이도가 그립다. 이번 여행도 아무튼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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