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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May 10. 2024

아들과 딸은 누굴 닮았을까!

우리 집에서는 요즘 유쾌하면서도 때로는 불쾌한 논쟁이 벌어진다. 고등학생 아들과 중학생 딸이 누구를 닮았냐는 문제다. 둘의 결론은 거의 일치한다. 모두 자기를 닮았다는 다. 어버이날에도 우리 부부는 이 주제로 언쟁을 시작했다. 여기서 밀리면 지는 거다.


논쟁 1. 고등학교 2학년, 아들에게 짧은 문자가 왔다. 아들은 누굴 닮았을까?

5월 8일, 새벽에 잠결에 스마트폰을 열었다. 12시 50분에 아들이 보낸 문자다. '아빠 커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로 읽혔다. 고민이 있거나, 문제가 생기면 나보다는 엄마와 상담하는 아이다. 내게는 문자도 특별한 일이 아니면 보내지 않는다. 요즘 아들은 시험공부를 한다며, 집에 있는 커피를 가져가곤 했다. 아내가 얼마나 맛있는 커피를 보냈길래, 이런 문자를 이밤에 보내나 하면서 다시 눈을 감았다.


아침에 일어나 문자를 다시 확인했다. 아들은 2만 원짜리 스타벅스 상품권을 보냈고, 카톡의 내용은 '아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였다. 나는 둘을 섞어서 본 거였다. 아들은 지금까지 용돈을 주라고 한 적이 없다. 엄마가 매월 일정 금액을 준다고 해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주려면 주고 말면 마라는 식이다. 가끔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주는 용돈을 모아 필요한 것을 산다. 그러면서도 엄마, 아빠 생일과 결혼기념일까지 살뜰하게 챙긴다.


아들은 2학년이 되면서 자기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터득했다. 시험 기간 동안 기숙사에서 서너 시간씩만 잤다고 했다. 결과는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중간고사 첫날 시험이 끝나자 풀이 죽어서 엄마에게 전화했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많이 틀렸다고, 그래서 정말 힘들다고...." 아내는 네가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지 몇 등을 하냐는 문제가 아니라고 다독였다. 다행히 다음 날부터 아들은 웃으면서 엄마에게 전화했다.


나는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00아! 어버이날에 선물까지 보내 주니 너무 고맙구나. 아빠랑 엄마는 00 이가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걸 보니 요즘 너무 행복하단다. 당장은 결과가 안 나올 수도 있고, 성적이 낮게 나올 수도 있겠지만, 너무 실망하지 마라. 중요한 거는 목표를 이루려고 열심히 하는 자세를 익힌 거라고 할 수 있을 거다. 너는 지금까지 최선을 다했으니 사회에서도 꼭 필요한 사람이 될 거라 믿는다. 이제 고등학교 생활도 반이 지났구나. 남은 절반도 지금처럼 노력해 보자. 사랑한다.           

아내는 상품권은 반품하고 현금을 달라고 했단다. 아들은 돈만 더 보냈다. 무뚝뚝하면서도 다정다감한 아이다. 우리는 서로 우겼다. 아들은 자기(나)를 닮았다고.


논쟁 2. 중학교 2학년, 딸에게 긴 문자가 왔다. 딸은 누굴 닮았을까?   

딸은 중학교 2학년이 되더니, 어른이 다 됐다. 5월 8일 아침부터 학교에서 문자가 왔다.

'일시: 2024-5-8, 벌점: 2점, 내용: 아침 등교 시 화장하고옴.'

애 첫 벌점이었다. 참 꾸미고 싶을 때긴 하지.


딸은 어버이날이라고 긴 문자를 보냈다.

엄마 아빠, 어버이날 축하드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낳아 주셔서 감사하고, 말 잘 듣는 딸이 될게요. 태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말 때는 시험 점수 올려 볼게요. 제가 말 안 들을 때마다 속상하실 텐데 죄송해요. 오래오래 사시고 앞으로는 말 잘 들을게요. 오늘 벌점 받은 것도 죄송하고 되도록이면 엄마 아빠 말 다 들을 게요. 항상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리고 공부 열심히 할게요. 돈도 아껴 쓸게요. 사랑해요.   

딸은 어이날이라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주신 꽤 큰돈을 3일 만에 다 썼다. 5월달 용돈도 이미 바닥났다. 아내는 씀씀이가 헤프다며 어디다 돈을 썼는지 딸을 추궁했다. 딸은 친구들에게 빌린 돈을 갚고, 어른처럼 보이려고 꾸미는 데 필요한 용품을 샀단다.


나는 딸에게도 문자를 보냈다.

우리 00 이가 글을 아주 잘 쓰는구나. 아빠랑 엄마는 00 이가 대학도 가고 좋은 직업도 얻어서, 멋진 남자 만나 행복하게 살길 바라. 지금은 친구들과 노는 게 더 좋고, 공부는 하기 싫겠지만, 혜윤이의 스무 살 때 모습을 상상해 보면 좋겠다. 아빠랑 엄마가 00이 한테 1등 하라는 게 아니잖아. 기말고사 때는 좀 더 노력해서 꼭 000등 안에 들어 보자. 그리고 전화 쓰는 것도 좀 줄이길 바란다. 저녁 열 시 넘으면 스마트폰도 안 해줬으면 해. 그것 때문에 엄마한테 혼나면 모두 기분이 안 좋아지잖아. 오늘 00이가 길게 글 쓰면서까지 약속했으니 믿어 볼게. 사랑한다. 00아.

딸은 영어 학원을 마치고 초등학생이나 고를 것 같은 과자 봉지를 들고 집에 들어왔다.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면서 아작아작 과자를 먹었다. 아내는 딸을 보면서 혀를 찼다. 돈도 없다면서 저런 거나 사들고 왔다고.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담배 사는 것보다는 낫잖아." 그날도 아내는 큰 목소리를 냈다. "스마트폰 그만하고 자라고. 제발" 아내는 말했다. "쟤는 누구 닮았을까?" 우리는 서로 우겼다. "딸은 자기(너)를 닮았다고." 


딸을 보면서, 어느 교육자의 말씀을 되새긴다. '아이들이 학교에 잘 다는 것만 해도 고마워해라!" 부모의 욕심을 비우고 보면 아이는 예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 저녁에는 아내에게 말해야겠다. "아들과 딸, 모두 나를 닮았다고." 그러면 아내는 말하겠지. "아들은 아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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