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내가 힘껏 던진 중학교 2학년 딸의 스마트폰은 마루에 부딪혀 튕겨 나갔다. 액정은 박살 났고, 본체는 부풀어 올랐다. 딸이 아내에게 버릇없는 행동을 했다는 게 이유였다. 아내는 차라리 잘 됐다고 했다. 다시는 스마트폰을 안 해 줄 거라면서. 그 다짐은 얼마 가지 못했다. 불편한 건 딸뿐만이 아니었다. 밖에 나간 딸과 연락하려면 딸의 친구 두세 명에게 전화를 걸어야 했다. 며칠 지나서 아내는 스마트폰 서비스센터를 찾았다. 아내가 들고 온 건 68만 원이 적힌 수리비 견적서였다.
딸과의 관계는 금방 회복되었다. 며칠 후 저녁을 먹으며 딸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딸도 고개를 숙였다. 딸은 큰방에 누워 있던 내 옆에 살포시 앉았다. 딸은 말했다. "아빠! 중간고사에서 70점 맞으면 최신형 아이폰 사주실 수 있어요?" 나는 잠시 고민했다. 딸의 시험 평균 점수는 40점대였다. 나는 웃으며 딸을 바라보았다. "그래, 알았어. 열심히 해 봐." 아내는 70점은 너무 쉬운 거 아니냐고 했다. 자기는 상관없으니 알아서 하라고 말했다. 평균 30점을 올리는 일! 내가 보기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딸은 책상에 앉았다. 평균 70점에 맞춰 과목별 목표 점수를 정했다. 책상 달력에는 일자별로 공부할 과목을 적었다. 계획은 정말 잘 세운다. 딸은 시험 3주 전부터 친구들과 독서실에 다녔다. 집에 오면 나에게 다가와 다짐을 받았다. "아빠, 그런데 150만 원 있어요?" 나는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사 주겠다고 했다. 말은 시원하게 했지만, 조금씩 걱정도 됐다. 최신형이라는 말은 뺄 걸 그랬다.
시험을 한 주 앞둔 어느 날이었다. 딸은 침대에 누워 그전에 쓰던 액정이 반쯤 깨지고 전화는 안 되는 삼성 스마트폰으로 인스타를 보고 있었다. 나는 웃으며 딸에게 말했다. "그래 아주 잘하고 있어! 그 스마트폰도 잘 나오네." 딸은 이불을 확 차더니, 책상에 앉았다. 예전보다는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긴 했다. 시험 전날 새벽 다섯 시, 딸 방이 환했다. 불을 안 끄고 잦겠지, 하면서 문을 열었다. 딸은 역사책을 들고,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딸은 나를 보더니 살포시 웃었다. 이쯤이면 비상금을 털어서라도 약속을 지켜야 할 판이다.
회사에서 회의하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회의를 마치고 전화를 걸었다. 딸이었다. 딸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아빠! 나 시험 잘 봤어요. 영어 86점, 역사 82점이에요." "와 정말 잘했네, 우리 딸 대단하다." "아빠 근데, 수학이 16점이에요. 아빠 저 아이폰 사 주실 거예요?" "응! 약속한 대로 되면." 아마 딸은 여러 개의 감정이 교차했을 것이다. 딸의 1학기 역사 점수는 9점이었다. 엄마에게는 19점이라고 했지만, 엄마가 충격받을 거 같아서 거짓말한 거라고 얼마 전 실토했다. 딸의 말대로 점수는 '떡상(어떤 수치들이 급격하게 오르는 것을 의미하는 신조어)'했다. 자신도 놀랐고 기뻤을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목표했던 점수는 어렵다는 것도 직감했을 것이다.
그날 저녁 딸은 들떠 있었다. 열심히 노력했으니, 스마트폰을 사줄 수도 있을 거라고 상상했나 보다. 나와 아내는 단호했다. 70점을 받지 못하면 새 스마트폰은 없다고. 딸은 그 점수는 절대 받을 수 없다며, 억지를 부렸다. 국어와 과학이 남았는데, 과학은 수학만큼이나 어렵다며, 그냥 사 주라고 억지를 부렸다. 딸은 울기 시작했다. 내일 시험은 볼 의미가 없다면서. 아내는 그럴 시간에 공부하겠다며 달랬지만, 소용없었다. 딸은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딸은 최종 시험 결과가 나왔다. 68.6점이었다. 수학은 찍은 게 더 맞아서 25점이 되었단다. 국어는 96점, 과학은 52점을 받았다. 국어 시간에 아이들과 선생님은 딸의 점수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선생님은 혜윤이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아주 잘할 수 있는 아이라고 칭찬해 주었다고 했다. 딸은 새 아이폰을 사려던 욕심은 거둬들였다. 아내와 나는 울 시간에 공부했으면, 70점을 받았겠다고 놀렸다. 딸은 씩 웃으며 "아 진짜 그럴걸."이라고 말했다.
아내는 딸의 스마트폰 수리를 맡겼다. 딸은 시험이 끝나고 예전으로 다시 돌아갔다. 공부는 뒷전이고 매일 침대에 누워 액정이 깨진 스마트폰을 끼고 산다. 딸은 내게 말했다. "아빠, 다음 시험에서 평균 70점 맞으면 새 아이폰 사 주실 거예요?" "아니, 넌 이제 80점을 받아야 하는 아이야." 딸은 투정을 부리며 밖으로 나갔다. 딸은 식구들이 다 모여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말했다. "우리 식구들이 국어 유전자는 있나 봐요. 저는 국어 선생님 할 거예요" 식구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밥을 먹었다. 딸은 이번 시험을 보고 나서 자신감과 성취감을 맛봤을 것이다. 딸은 새 스마트폰은 아니지만 완전히 고쳐진 스마트폰을 얻게 됐다. 그 비용은 아내가 내기로 했다. 나는 비상금을 쓰지 않아도 된다. 딸의 잠재력도 볼 수 있었다. 요즘 아이들 말대로 '완전 럭키비키(초긍적 사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