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
‘언제 꽃이 피었지?‘하였는데 가을이 소리 없이 지나가 어느덧 겨울이 되었다.
조금씩 작성했던 글이 벌써 마무리되었고, 나는 작은 마음을 담은 한 권의 책을 엄마에게 선물했다.
브런치에 글을 기재한 것은 9월 부터지만 ‘엄마’에 대해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올해 초부터였다.
직업에 맞추어 진로, 취업에 관한 글을 써 내려가다 문득 나를 위한 시간보다 타인을 위한 시간을 많이 쓰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그날부로 나는 ‘진로’ 파일을 잠시 닫아 놓았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쓰겠다고 생각하면서 아이러니하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엄마였다.
그만큼 나와 엄마의 관계가 애착 관계인 것일까 아니면 내가 엄마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일까.
원체 거절을 잘하지 않는 성격이기에 한동안은 ‘착한 딸 콤플렉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개인적인 약속이나 데이트보다 집안 행사에 할애하는 시간이 많았으니까.
어떤 사람들은 본인보다 부모를 위해 시간이나 경제적인 투자를 더 많이 한다고 한다. 말 그대로 자신을 잃어버리고 부모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름 재미도 있으니 그 정도 까지라곤 말하긴 어렵겠지만 주변에서는 좋게 표현해서 “너 되게 가정적이다.”라고 말하고 직설적으론 “넌 너 시간 안 써?”라고 말하니까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모양이다.
요즘은 ‘남자 역할, 여자 역할‘이라고 말하기가 조심스러울 정도로 예민한 사회분위기이다. 이러한 시대에 가족 사이에도 ‘역할’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지 모르겠지만, 굳이 따지자면 선행자와 후행자의 역할이지 않을까 싶다.
한 번은 시화방조제 달빛전망대에 오른 적이 있다. 신발을 벗고 걷는 것이 매너인 곳이었는데, 한 명이 신발 신고 가니 그 뒤로 사람들이 모두 신발을 신고 걸어갔다. 한 바퀴를 돌고 왔을 때 한 사람이 신발을 벗고 지나가니 그 뒤론 모두 따라 벗고 갔다.
결국 바닥의 상태는 중요치 않았다.
앞의 발걸음을 따라가게 되는 것.
그래서 선행의 역할이 중요하며, 자식들은 부모의 선행을 몸소 배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배움의 고저와 정해짐은 없지만 나는 ‘나’를 떠올리면 엄마의 선행(先行)을 먼저 떠올리게 되니, 우리 모녀 사이에는 그 역할이 가장 어울리겠다.
엄마에게 책을 권네며 답장은 숙제니 시간 있을 때 천천히 읽고 천천히 써달라고 했다.
평소 라디오 ‘여성시대’에서 발간하는 책을 보시기에 같은 크기로 제작했는데, 너무 작아서 보기 힘들다며 한참 걸릴 것 같다고 했다.
엄마는 안경을 쓰지는 않지만 언제부터인가 “잘 안 보여”, “맛을 잘 모르겠어”, “이거 냄새 이상해?” 등 감각을 사용하는 데 있어 둔감해진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신다.
바로 다음날 A4용지 크기로 다시 재작을 하여 아침 출근길, 식탁 위에 올려놓고 나왔다.
“땡큐 천천히 읽을게! 오늘도 아자아자 화이팅”
목표했던 2018년이 끝나기 전에,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애자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 글을 쓰면서 가족과 지인들에게 공감된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어떤 동생은 소재와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했다.
‘작까님’이라며 놀려대는 친구에게 내 ‘싸이월드 감성’을 받으라며 받아치기도 했고 어찌 되었던 나에게는 엄마에게 글을 쓸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만약 당신의 어머니에게 그동안 하지 못한 말이 있다면, 글을 쓰라.
만약 그것이 정말, 너무, 아무리 생각해도 어렵다면, 카톡으로라도 전해 보는 것이 어떨까.
당신이 있어 참 고맙다고.
사람은, 표현하지 않으면 그 마음을 알 길이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