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대한항공의 새로운 CI 공개가 있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브랜드 디자인 뉴스를 꾸준히 확인하는데, 역시 대한항공답게 정말 수많은 보도가 쏟아졌고, 대중의 반응은 싸늘했다.
원래 처음 공개된 대기업 CI가 환영받는 일은 극히 드물다. 아니 드문 정도가 아니라 욕을 바가지로 먹는 게 인지상정이랄까. 그만큼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건 쉬운 게 아니고 특히나 대한항공처럼 오랜 세월 동안 대중에게 각인된 (게다가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 중 하나인) 브랜드는 특히나 그렇지 않을까 싶다.
매일매일 브랜딩, 마케팅, 디자인 관련된 소식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논평을 남기는 필자에게, 대한항공 소식은 다루지 않을 수 없는 빅 오브 빅뉴스였다. 그래서 이번 주 화요일이었던가 퇴근길 공식 보도자료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소회를 남긴 바 있다.
당시 필자는 대한항공의 새로운 CI에 대한 비평은 가급적 최소화하고 싶었다.
뭐랄까.
대한항공 아니 한진그룹도 오랜 기간 고민했을 테고 (몇 년 전 기사로 이미 디자인도 유출된 적 있으니)
이번 합병이 중요한 모멘텀임에 틀림없으니 오히려 CI 리뉴얼 기회로 활용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다.
그리고 필자도 브랜드 디자이너로서 이해도 된다.
기존 태극 심볼마크보다 더욱 미니멀하게,
그리고 시원시원하고 세련된 로고타입도 갖춰서
이전에 남아있던 아주 약간 올드해 보이는 느낌을 완전히 탈피하고
세련되게 세련되게 세련되게 그리고 세련된 이미지로 탈바꿈하고 싶었던 목적 자체는 공감한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디자인 요소들도 모두 훌륭하다.
대한항공의 규모와 레벨을 보았을 때 이번 프로젝트는 분명 글로벌 해외 에이전시에 맡겼을 텐데,
과연 어디에서 진행했을까 궁금했는데 대한항공 측에서 친절하게도 새로운 CI 개발 과정에 대한 스토리 영상을 남겨주었다.
덕분에 대중이 혹평과 비난을 쏟아낼 장을 열어 주었달까 ㅎㅎ
그리고 영상 속 주요 이미지들,
리뉴얼 프로젝트 총괄은 리핀컷에서 수행했구나.
필자가 굉장히 좋아하는 곳이다.
영국의 펜타그램, 울프올린스, 무빙브랜드 같은 곳과는 완전히 성격이 다른, 미국을 대표하는 컨설팅사랄까.
리핀컷의 수많은 작품(?) 중 현재의 스타벅스 리뉴얼을 참 좋아한다.
여담이지만 필자가 몸담고 있는 기업의 CI도 리핀컷에서 리뉴얼한 디자인이다. (참고로 입사 전이었음)
그리고 필자가 몇 년마다 반복되는 미션이었던 CI 리뉴얼 검토 때마다 내심 리핀컷 같은 빅 플레이어를 항상 세 손가락 안에 꼽곤 했다. 그만큼 좋아하는 곳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또한 영상을 보니 대략적인 개발 과정과 디자인 방향성도 이해할 수 있었고, 서체 또한 달튼막(Dalton Maag)에 맡긴 걸 보니 뭐랄까.. 전형적인 정공법을 따른 느낌이었다.
그런데 세계 최고의 컨설팅, 디자인 회사들에게 맡긴 결과물인데 왜 이렇게 반응이 좋지않을까?
대중이 고급 디자인을 못 알아봐 줘서?
아니다. 대중의 반응은 눈에 보이고 느끼는 것 그대로의 결과다.
필자도 이번 리뉴얼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론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해 본다면,
이 장면에서 반문하고 싶다.
훨씬 고급스러운 이미지?
대한항공에 더욱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꼭 필요할까?
대한항공은 이미 국내 항공사 원탑이고, 충분히 고급스럽고 프리미엄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대한항공이 비싸서 이용하지 않을 순 있어도, 프리미엄 이미지는 모두의 공통 인식일 것이다.
(아 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더해야 가격도 더 올리는 데 명분이 생기려나)
항공기 동체에 적용된 컬러가 왜 그렇게 푸르딩딩했나 싶었는데, 스토리 영상을 보니 이해가 됐다.
특별하고 유니크한 블루 컬러를 사용하고 싶었던지 메탈릭 블루(Metalic Blue)를 적용했다고 한다.
물론 실물로 본다면 의도한 대로 고급스럽고 (자꾸 고급 반복) 여타 항공사와는 차별화된 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큰 문제가 있다.
우리가 직접 눈으로 비행기 동체를 보는 경우와 촬영 이미지, 즉 사진으로 보는 경우 중 어떤 쪽이 더 많을까?
당연히 사진을 통한 비율이 많을 것이다.
그 말인즉슨, 메탈릭 혹은 실물의 광택감을 느끼기 어렵다는 뜻이다.
대한항공 측에서 제공한 이미지들이 가장 멋진 화보일 텐데, 그 이상 감동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필자가 생각할 때 더욱 결정적인 문제는,
너무 차가운 느낌이라는 것이다.
대한항공은 특유의 세련된 느낌과 함께 차분하지만 밝고 화사한 느낌이 고유의 아이덴티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련다.
항공사 브랜드 리뉴얼 사례 중 필자가 탑으로 꼽는
것 중 하나가 루프트한자(Lufthansa)다.
블루 컬러를 메인으로 하는 브랜드이지만 무드의 상당 부분은 노랑(Yellow) 컬러를 통해 형성된다.
차분하고 따뜻하지만 동시에 충분히 세련됐달까.
대한항공의 새로운 이미지는 필자가 느끼기엔 너무 차갑다.
하나둘씩 꼬집다 보니 하고 싶은 말이 많은가 보다.
이쯤에서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언급해 보련다.
스토리 영상에서 리핀컷 측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아래 같은 멘트를 했다.
복잡한 부분을 없애고?
그렇다. 대한항공의 기존 CI는 구성면에서 복잡할 수 있다.
특히 두 가지 이상 사용된 CI는 단일 컬러에 비해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다.
두 가지 컬러 사용이 왜 복잡하냐고 반문한다면,
아래 예를 보면 충분히 공감되리라 판단된다.
이쯤에서 이젠 역사 속으로 사라진 대한항공 구 CI를 다시 보자.
복잡한가?
근데 그래서? ^^;
왜 복잡함을 없애고 미니멀해야 하는지 명확한 당위성이 보이질 않는 것 같다.
그게 트렌디한 거니까?
그래야 세련된 거니까? (또 세련된 반복)
디자인은 단순할수록 좋은 거니까?
세계적인 디자이너 미스 반 데어 로에, 디터람스가 남긴 명언들을 보면 Less is more, Less but better 등에서 방점은 Less가 아니다.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고 더 좋게, 그리고 더 본질적으로 접근하라는 의미로 알고 있다.
더구나 애플이 주도한 미니멀리즘이 만능 솔루션이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지금은 미니멀, 맥시멈 그 어느 쪽이 좋다 맞다 할 수 없는 대신에, 해당 브랜드에 어떤 게 맞는지 그리고 어떤 방향이 자기다움을 만들어 내는지가 더 중요한 시대라 생각한다.
다시 또 한 번 봐보자. 대한항공의 기존 CI.
복잡해서 막 덜어내고 싶은가?
복잡함을 없애겠다는 건 5년 전 아니 10년이었다면 통했을 법한 전략인 것 같다.
그리고 복잡함을 없애면서
정작 중요한 대한항공다움, 대한항공스러움도 없앤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대한항공 CI에 대한 논평은 가능한 남기지 않으려 했는데, 리핀컷에서 수행한 것을 알게 되고 관계자분들의 인터뷰와 과정을 엮은 스토리 영상을 보고 나니 18년 차 (사실 이제 계산도 가물가물) 디자이너로서 한마디 해보고 싶었다.
훌훌 털어내고 나면 속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뭐 결국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
대한항공의 새로운 브랜드 디자인도 결국 적응되겠지.
근데 분명한 건 최소한 몇 년은 걸릴 것 같다는 점이다.
오늘의 덧붙임,
리핀컷 웹사이트 포트폴리오에도 올라왔다.
언제나 그렇지만 디자인 에이전시 사이트에서 볼 때가 가장 좋아 보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