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의 시선을 피하라
직장생활의 행복은 때론 아주 사소한 것으로 결정된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자리배치다. 직장생활 중에 직면하는 '착석' 고민을 사무실 자리, 회의 자리, 회식 자리 사례을 통해 분석해보겠다
요즘 자율좌석제니 뭐니 해도 아직은 대다수 회사가 고정좌석을 사용하고 있는만큼 사무실 자리는 직장인의 행복을 좌우하는 알파이자 오메가다. 그만큼 사무실 자리 선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무실 자리는 보통 '위로부터' 지정되거나 '관습적으로' 지정된다는 특징이 있다. 마치 상명하달로 업무가 배정되듯이 자리도 직접 선택 하지 못한다. 이런면에서 사무실 자리배치는 '업무 설계의 지도'이자 '권력관계의 축도'이다. 자리 배치에 윗사람의 메세지가 담기고 구성원 사이의 관계도 흐름이 달라진다.(새로운 사람과 친해지고 친한 사람과 멀어지고)
보통 팀장은 조망 좋은 창가 옆 자리를 차지한다. 같은 아파트 단지라도 한강 조망권 아파트 동의 시세가 비싼것과 동일한 이치다. 누구든 창가 옆에 앉아 있다는 건 곧 그 조직 내 권력자라는 의미다.(새로운 사무실에서 항상 창가를 경계해야 한다) 다만 팀장 자리에도 순서는 있다. 임원방에 가까이 있는 팀장 자리가 선임 팀장자리(= 우두머리다)다. 임원이 수시로 찾는 팀장이기 때문이다.
① 팀장 자리는 아니지만 조망권을 갖는 자리다. 이는 곧 팀장'급'의 권력자가 앉는다는 의미다. 서열 2위 정도 되는 중량급 인물이 차지하며 팀장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이다. 한쪽 면이 창문인만큼 보안유지에 탁월한 장점을 갖고 있으며 '다양한 딴짓'을 하기에도 유리하다. 단순히 모니터만 은폐하는 수준이 아니라 어깨 이하의 행동을 전부 감출 수 있다. 다만, 그만큼 팀원들과 소통하기 어려워 노력하지 않으면 자연스레 외톨이가 되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팀장은 아닌데....)
② 팀장은 팀원들 동태를 한눈에 파악고자 보통 창가를 등지고 팀원을 향해 앉는다. 이 포인트가 중요하다. 여기서 이 자리 주인의 불행이 시작된다. 이 자리는 팀장의 시선이 '자연스럽고, 오래, 자주' 머무는 자리로 일명 '사지(死地)'다. 이 자리 주인은 팀장을 등지고 앉게 되는데, 이로 인해 모니터와 모든 행동이 무방비로 팀장에게 노출된다. 극복 불가능한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다른 팀원들은 이 자리 주인에게 감사하며 항상 기도해주자)
그러나 이 자리가 최악인 이유는 무엇보다 팀장의 실제 감시여부와 상관없이 항상 감시당하고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게 만든다는 점 때문이다. 마치 유명한 원형감옥 '파놉티콘' 설계가 직장내에 구현된 형국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인터넷 쇼핑, SNS과 같은 딴짓을 할 수 없다. 자리를 비우면 부재가 크게 느껴진다. 게다가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여 다른 팀원의 시선도 신경이 쓰이는 자리다.
다만, 팀장의 전화 내용 등을 엿들을 수 있어 회사 동태 파악에서는 유리할 수 있다.(아, 쉴세없이 일할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팀장이 편히 부르고 언제든지 일 시킬수 있는 유능한 실무자가 보통 이 자리의 주인이다.
③ 창가 자리로부터 멀고 팀장과 시선을 마주볼수 있는 자리다. 이 자리에 배정되었다면 감사하자. 최소한 기습 당하지는 않는 자리를 갖게 된거다. 장수가 전투에서 '일패도지' 하는건 보통 후방이나 측면으로부터의 적군에게 기습을 당했을 때다. 그런면에서 이 자리는 적군(=팀장)과 시선을 마주할 수 있어 신속한 조치로 위험에 미리 대비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단점이라면 팀장과의 거리가 먼 만큼 중간관리자로부터 '지방통치'를 당할 위험성이 있다. 통로를 이동하는 자의 시선에 노출된다는 점도 불안 요소다. 보통 팀의 저연차가 이 자리의 주인이다.
자리가 지정되는 공식 회의가 아닌 보통 회의에서는 참석자가 스스로 자리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런만큼 전략적인 분석을 통한 최선의 자리 선점이 요구된다.
① 정면에 위치한 자리가 보통 비선호자리다. 이 자리는 보통 회의 주도자(소집자, 직책자, TF장 등)의 시선이 가장 많이 머무는 자리로 끊임없이 회의 주도자의 발언에 호응을 해줘야 한다. 고객을 끄덕이거나, 필기를 한다거나, '아'하는 감탄사를 내든가하는 식으로 말이다. 사람의 도리상 누군가 열심히 이야기 하는데 졸거나 모른척 할 수 없으므로 상당히 피곤한 자리다. 잠깐 자리를 비울 경우 '초등생 앞니'가 빠진 거 마냥 확 비어있는 티가 나므로 회의실을 나가기도 어렵다. 회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의사가 없다면 피해야 하는 자리다.
② 회의 주도자 옆자리로 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사가 없다면 최선의 자리다. 회의 참석자의 시선은 대부분 주도자에게 쏠리므로 '등잔 밑이 어두운 것' 마냥 사실상 사각지대이다. 회의 주도자의 시선 부담없이 '졸기', '딴 생각하기' 등의 다른 짓을 할 수 있다.(단, 낙서하기는 금물) 대놓고 조는 식으로 '어그로'만 끌지 않는다면 다른 회의 참석자의 시선도 부담없다. 다만, 회의 진행이 원활하지 않아 한명씩 돌아가며 발언하게 되는 상황이 닥칠 경우 위험하다. 제일 먼저 발언 순서가 돌아올 수 있다. 반대로 제일 마지막에 발언하게 될 경우 본인이 할 말을 앞 순번 사람이 먼저 말할 수 있으니 이 점도 불리한 요소다. 따라서 경계감을 늦추는건 금물이다.
③ 통상 회의 좌석배치 예법에서 상석으로 간주되는 자리다. 그 때문에 또한 애매한 자리다. 이 자리는 다른 참석자와의 거리가 멀어 회의 참여보다는 관망에 좋은 자리로 자타공인 '서열 1위'가 아닌 자가 이 자리에 앉을 시 괜한 부담감에 시달릴 수 있다.
'권위주의'가 배척되는 요즘 사회 분위기 상 (설사 서열 1위라 하더라도) 회의 참석자 대부분이 무의식 중에 상석 기피 심리를 갖고 있어 다들 이 자리를 피한다. 어영부영하다 이 자리에 앉게 되면 괜한 책무감에 회의에 집중하게 된다. 물론 '비'권력자가 이 자리에 앉으면 다른 참석자는 이 자리에 1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그냥 혼자만 열심히 회의하게 되는 자리다.
보통 회식은 회의보다 좀더 적극적인 행동을 요구한다. 술도 따라야 하고, 팀장 발언에 강하게 호응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술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팀장 근처에 앉을 경우 '예의상' 일정량 이상 술도 마셔줘야 한다. 따라서 회식은 그저 앉아면 있으면 되는 회의에 비해 에너지 소모가 큰 편이다. 게다가 회식에는 '몰래 도망'이라는 플러스 옵션을 행사할 수도 있으므로 회의 때보다 좀더 전략적인 자리 선점이 필요하다.
회식 자리는 특성상 '시선'보다는 '테이블'이 중요하다. 음식 주문과 대화 그룹 선정이 테이블 단위(통상 4인)로 매칭되기 때문이다. 일단 팀장과 다른 테이블에 앉았다면 대체로 나쁘지 않은 선택을 한거다.
다만 테이블 착석 시 본인의 선호를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팀장 테이블이 비어있음에도 다른 테이블에 앉는다거나 하는 행동은 상당히 부담스럽다.
그러므로 긴 안목을 가지고 팀장과 적당한 간격를 유지하며 회식장소에 도착하는 게 중요하다. 괜히 어설프게 팀장과 동행했다간 다른 팀원들이 눈치를 보는 상황에서 우물쭈물 팀장 옆자리에 앉게 될 공산이 크다. 적당한 시차를 두고 회식장소에 도착하면 자연스레 팀장과 다른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 추가적으로 마음에 맞는 팀원들과 앉을 경우 '지역방송'을 켤수 있어 상당한 베네핏을 가질 수 있다.
만약 팀장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면 옵션은 앞쪽이냐, 옆쪽이냐이다. 앞쪽자리는 팀장의 시선을 받으내며 적극적인 호응을 해야하는 자리므로 정신적인 고단함을 수반하며, 옆자리는 '식기 세팅'과 '술잔 채우기' 등의 사역(私役)에 동원되므로 육체적으로 피곤하다. 자리의 선호도는 개인의 성향에 달렸다.
직장인 자리배치 문제는 사실 구시대적 기업문화의 단면이다. 직원의 '사적 영역'이 상사로부터 침해되는게 당연하고, 성과보다는 상사로부터의 친밀도가 중요한 한국의 기업 풍토가 '웃프게' 나타나는 거다. 그러나 'We Work'과 같은 오피스 공유가 일반화되고 기업마다 자율출근제와 자율좌석제가 확산된다면 자연스레 사라질 현상이기도 하다.
직장인으로써 자리배치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땐 그랬지'라며 과거 시제로 이야기 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