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은 프로가 아니다
80년대 이전 세대들은 또렷히 기억하겠지만 프로농구(KBL) 이전에 '농구대잔치'라는 실업 농구리그가 있었다. 실업리그였지만 (그 이름도 용맹한) 기아차 '허동택' 트리오의 굳건함이 유명했고 연세대의 서장훈/이상민/문경은과 고려대의 현주엽/전희철/김병철이 코트를 뜨겁게 달궜던 인기 절정의 리그였다. (그야말로 농구의 화려했던 시절) 그러던 '97년 어느날 농구대잔치는 프로농구로 바뀌었고 농구판에서 대학팀을 더 이상 볼수가 없게 되었다.
리그의 열기가 여전했음에도 왜 농구대잔치는 프로농구로 바뀌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선수 처우의 변경 필요성도 그 이유 중의 하나였다.
당시 농구대잔치의 농구선수는 실업팀 소속으로 무려 '정규직'이었다. 선수는 경기에 근무하는 대가로 '급여'를 받았으며 운동을 은퇴하고 나면 소속 회사에서 보통 업무(영업, 총무 등)를 하기도 했다. 구단을 이적하려면 퇴사 후 재취업해야 했고 여전히 정규직의 처우를 따라야 하는 만큼 선수들의 구단 이동이 많지 않았다.
반면 프로선수는 회사와 계약관계로 맺어진 '계약직' 이다. 철저하게 실력에 따라 연봉을 받고 계약기간이 종료되면 자동적으로 고용도 해제된다. 실력이 뛰어나면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퇴출이다. 프로선수의 몸값은 꽤 비싸므로 회사는 몸값을 허투루 지급하지 않는다. 따라서 몸값 책정에 실력 외의 요소가 개입할 여지가 적다. 다방면의 깊은 분석을 통해 선수의 실력을 객관화되고 정량화하여 평가한 후 몸값을 결정한다.
즉 성과평가와 그에 대한 보상 체계의 차이가 프로와 아마(실업)를 가르는 중요한 구분자라 할수 있다.
직장인은 프로일까
그렇다면 보통 직장인은 과연 프로일까? 위에 비추어 보면 아니다. 직장인은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받고 있으며 평가에 따른 연봉차이가 있지만 프로만큼 그 차이가 현격하지는 않다.
직장인도 프로처럼 실력에 따른 평가를 받는다. 직장인이 흔히 "누군가가 실력이 있다, 없다" 이야기 할때 논해지는 영역은 보통 전문성이다. 전문성은 말 그대로 담당업무에 대한 깊은 이해이다. 전문성은 특정 업무를 오래 하면서 축적되기도 하고 자격증 취득을 통해 증명되기도 한다. 보통은 전문성에 따라 평가를 한다라고 회사에서 이야기하고 직원도 그렇게 믿고 있다.
하지만 전문성은 애초에 객관화되기 어려운 영역이다. Sales Count가 가능한 영업직이 아닌 이상 직장 업무는 협업이 기본이기에 근본적으로 인(人)별로 정량화되기 어렵다. 그렇기에 평가는 평가자의 주관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평가 자체가 자의적이고 보상 차이도 작으니 '실력에 따른 평가와 보상'이라는 프로의 작동 구조가 적용되지 못한다.
게다가 회사는 전문성만으로 직원을 평가를 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평가에는 팀내 진급 대상자를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정무적인 요인도 고려되고 평가자와의 개인적인 친분도 포함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직장인의 평가는 전문성만으로는 설명할 수없다. 직장인이라면 (동료들이 보기에) 실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승진에서 누락되거나 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는 게 반증이다.
직장에서 직원을 판단하는 다른 기준이 또 다른 평가 잣대가 있다. 바로 '캐릭터' 이다
캐릭터를 갖고 있는가
캐릭터라 함은 그 사람의 성격적 특징일수도 있고 업무 스타일수도 있다. 흔히 말하는 추진력이 좋다, 꼼꼼하다, 머리가 좋다 하는 것들이 캐릭터를 칭하는 것들이다. 캐릭터가 있으면 조직은 적재적소에 사람을 쓰기 좋다.
업무가 어렵지는 않지만 타조직과 중첩된다면 전문성 있는 사람보단 추진력 좋은 사람이 조직 성과 만들기에 적절하다.
계산이 복잡하거나 챙길게 많은 업무라면 꼼꼼한 성격의 사람 필요하다.
처음 실행하는 업무는 머리가 좋아서 사업을 빨리 파악하고 요점을 콕콕 짚어낼 수 있는 사람이 좋다
캐릭터는 조직이 필요한 곳에 쓸 수 있는 부품이느냐의 문제이다. 차를 만들때 '좋은 엔진(=실력과 캐릭터가 둘다 좋음)'이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그냥 엔진(=캐릭터만 있는)이기만 해도 된다. 직장인이 전문성도 애매하고 캐릭터도 없다면 그게 제일 곤란한 거다. 자신이 조직내 어떤 부품에 해당하는지도 모른다는 의미인 거다.
캐릭터와 관련해 술자리에서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모 대기업에서는 일년에 한번 회장을 모시고 워크샵을 한다고 한다. 주력 계열사부터 말단 계열사까지 사장들이 총출동하는 큰 행사다. 워크샵은 회장 앞에서 토론하는 식으로 진행되는데 회장 앞인 만큼 기라성 같은 스타급 사장들도 실수하지 않으려고 조심하기가 그지없다.
워크샵 사회는 회장이 진행하는데 토론 중에 특정 주제에 대해 누가 먼저 발표할지 물었다. 모든 사장들이 서로 눈치보며 쭈뼛거리는 사이 말단 계열사 신임 사장이 번쩍 손들 들고 말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른 질문에도 그 사장은 먼저 자청하여 발표를 했다. 그렇게 몇번 먼저 발표를 하고 났더니 회장이 웃으며 말했다."저 친구 거참 적극적이구만. 허허" 회장의 눈에 든 것이다.
사실 이 말단회사 사장은 영업맨 출신으로 전문성이 부족하고 '무대포'여서 후배들로부터의 평은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장은 '무대포' 같은 캐릭터로 여러 사장들을 제치고 회장의 눈에 든 것이다. 그가 회장에게 어필한 것은 '전문성'이 아니라 '캐릭터' 였던거다.
'전문성의 덫'에 갇힌 직장인
프로라면 캐릭터는 필요 없고 오로지 실력만 갖추면 된다. 야구선수의 연봉은 투수라면 방어율과 이닝수, 타자라면 타율과 홈런수로 결정된다. 성격이 개차반이고 사생활로 물의를 일으켜도 실력만 좋으면 고연봉을 받는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아쉽게도 직장인은 프로가 아니다. 보통 직장인이 생각하는 실력, 즉 전문성이란 능력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인들은 흔히들 '전문성의 덫'에 갇혀 있다. 전문성을 키우면 조직내에서 인정받고 성공할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다. 이는 초중고대 16년간의 긴 학창시절 동안 시험을 통한 객관적인 평가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공부도 하고 회사에서도 노력한다. 그에 반해 캐릭터를 가꾸려는 노력과 고민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하다.
모든 사회생활이 그렇듯이 직장 생활에 정답은 없다. 전문성으로 인정 받을 수도 있고 캐릭터로 쓰임을 받을 수도 있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볼때 전문성이나 캐릭터 중 하나라도 갖춰면 임원이 되는 듯하고 둘다 갖추면 잘나가는 임원이 되는듯 하다. 둘 중 하나라도 갖추면 임원이 된다는 것은 역으로 둘 중 하나를 갖추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개인의 영역이다. 전문성을 키우고 회사 밖으로 나가 '프로'가 될수도 있고 캐릭터를 갖춰 회사안의 성공을 도모할 수도 있다. 우선은 각자의 전문성과 캐릭터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