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내 곁에 존재했던 여러 의사들-이별 닥터
좋았던 순간들 중 빠질 수 없는 것은 단연 '사랑'이었다.
난 늘 친구들에게 어른이 되면 슬픈 사랑을 한 번쯤 해보고 싶다고 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남, 여 주인공이 슬픔을 겪고 재회하는 극적인 순간이야 말로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했고 그 애절함과 인내심, 쓸쓸함을 한 번쯤 겪고 싶었다.
내가 늘 말하듯 나에게는 조금의 영험함이 존재해 왔기에 예상대로 그 슬픈 사랑은 나를 지나치지 않고 다가왔다.
(지금 생각하니 영험함때문이 아니라 한 번쯤은 겪는 일이었을 수 있겠다)
정말 아팠다. 스물두 살에 겪은 슬픈 사랑은 생각보다 꽤 타격이 컸다.
2년간의 추억들이 저 파란 구름에 떠올라 잠시 행복을 감상했다. 그러다 느닷없이 심장을 가위로 도려낼 듯한 아픔을 넘어 내 몸 전체에 별일 없이 순환하던 피가 말썽을 부리며 반대로 솟아올랐다. 그리고 나에게 문제가 있나 싶어 자책을 하다, 억지 인연을 다시 맞추려고 하지 않으려 포기하기를 반복했다.
이별을 극복하는 방법
억지로 밥 한 숟갈 떠먹고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엉엉 울던 드라마 속 주인공 짓을 내가 하고 있었다. 그것도 6개월이나. 식단 조절과 운동을 하며 몇 달은 노력해야 빠지던 몸무게는 1일 1숟가락으로 10kg가 빠졌었다.
처음부터 만남을 반대했던 이모와 큰소리로 싸우고 집 밖을 나간 적도 있었고 동생은 늘 나를 볼 때마다
'보기 좋게 마른 게 아니고 징그러워 언니'라고 핀잔을 줬다. 정말 정신을 차리라고 핀잔을 준 건지는 모르겠으나 아쉽게도 기적적으로 몸무게가 다시 늘어나게 된 날은 따로 있었다.
그 날은 아빠와 함께 일하는 날이었는데, 평소와 같이 조용한 가게에 앉아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정적을 깨는 그 한마디를 들은 순간 정신이 뻔적했다.
그동안 수많은 위로와 핀잔들을 들어왔고 이별을 겪은 사람에게 건넬 수 있는 너무나 흔한 위로와 걱정의 문장이었지만, 6개월 동안 폐인처럼 살았던 나를 묵묵하게 지켜보고 있던 아빠의 그 나지막한 한마디에 난 신기하게도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한 마디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빠도 딸의 이별이 처음이라 그동안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던 걸까? 그래서 묵묵히 보고만 계셨을까? 밥도 먹지 않고 미련하게 살던 내가 한심 했을 텐데 왜 진작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마침내 건넨 한 마디가 겨우, 남자 때문에 밥 굶고 다니지 말라니.
나는 평소에 시시콜콜 대화를 많이 하는 엄마와 달리 아빠와 속 깊은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 아빠가 고르고 골라 건넨 한마디라는 것을 알기에 누구보다 진정으로 다가왔다.
이후 나는 남자 '하나' 때문에 끼니를 굶지 않기 시작했다. 그 문장 그대로 실행하며 다시는 굶지 않았다. 오히려 요요현상처럼 한 달, 두 달 탄력을 받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너무 잘 먹는 바람에 평소 몸무게보다 살이 찌기도 했다.
이별을 할 때 시간이 약이라고 한다면, 그 약에 대해 잘 알고 있고 (혹은 이미 복용해 보았거나) 처방해 줄 능력이 있는 약사나 의사가 존재할 것이다.
당시 나에게도 약을 복용하기 전 주의사항과 복용방법을 처방해주는 약사나 의사가 절실히 필요했고 아빠는 나의 슬픔과 아픔에 꼭 맞는 처방을 해준 의사와 다름없었다.
나는 아직도 처방된 약을 조금 남겨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복용하곤 한다.
이틀 먹더니 좀 나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도 약통 그대로 방치해 두지 않고, 처방된 일주일은 꼭 복용을 하는 말 잘 듣는 환자가 되었다.
그곳에 있는 동안 내 곁에 여러 의사들이 존재했었다. 이별에 대한 처방을 해준 의사가 아빠였다면 나머지 이민생활을 시작하면서 부딪혔던 모든 문제들을 그때마다 처방해준 의사도 존재했다.
처방뿐 아니라 아주 강력한 주사도 때마다 놓아준 일명 '호랑이 닥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