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거주하는 동안에 운이 좋게도 여러 도시를 가볼 기회가 많았다.
추운 곳은 웬만하면 피하는 편이라, 대부분은 서부로 여행을 많이 갔다.
시애틀, 오래 건, 포틀랜드, 캘리포니아(샌디에이고-샌프란시스코-LA),
애리조나(라스베이거스-피닉스-세도나)
이 도시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바로 시애틀이었다. 도시와 자연이 어우러진 곳.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인지라 쌀국수와 커피 장사만 해도 먹고살기 편하다는 그곳.
이때 시애틀 여행이 특별했던 이유는 우리가 애리조나 투산(Tucson)에서 시애틀까지 비행기를 타지 않고 차로 꼬박 이틀이 걸려 도착해서인 것 같다.
쉬지 않고 달리면 하루 만에 도착하겠지만,
이모부의 고향이자 사촌 형이 살고 있는 오레건 집에서 하루 머물기로 하였다.
말로만 듣던 로드트립이라니!
오레건에 도착하기 전에 갑자기 이모부가 맛있는 것을 먹자며 편의점 같은 곳에 차를 세웠다.
손님들은 투명하고 네모난 통에서 집게로 무언가를 담고 있었다. 마치 무게를 재서 계산하는 젤리처럼 육포(Beef Jerky)들을 담고 있던 것이다.
워낙 육포를 좋아하는 입맛이지만, 오레건에서 먹었던 육포는 정말이지 짭조름하면서 육질이 아주 부드럽고 담백했다.
어쩜 이렇게 맛있냐고 물어보니, 워싱턴 주는 오래전부터 목축업이 아주 잘 발달되어 있어서라고 했다.
워싱턴에 간다면 꼭꼭! 비프저키를 먹어보길!
오레건에 도착하니 이모가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긴 듯했다.
우리 이모는 23살에 이 낯선 미국 땅을 밟았다. 지금 생각하면 23살 어린 나이에 한국에 있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이민을 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새삼 열심히 살아온 이모가 대단해 보였다.
이모가 처음 정착했던 곳이 이 오레건이었는데, 가끔 한국에 와서 우리들에게 미국에 있었던 이야기보따리를 풀 때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졸린 눈을 참아가며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모부의 형수인 이사벨라는 참 친절하고 가정적인 여자다. 오레건에 도착해서 마치 엊그제 보던 사람처럼 ‘Hola!’라고 인사를 하며 우리가 사용할 방을 안내해주었다.
아주 잘 꾸며진 지하방(basement)인데 보통 미국 시트콤이나 드라마에서 볼 수 있은 아이들의 게임방이나 손님이 머무는 방 같은 곳이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장을 봐온 이사벨라는 특유의 활기찬 목소리도 아침인사를 하고 식사를 준비했다. 이사벨라가 만드는 모습을 이모와 지켜보았는데, 얇고 쫀득한 반죽을 프라이팬에 구워서 부드러운 생크림을 바르고 싱싱한 딸기를 얹어 돌돌 말았다.
처음 맛본 크레페에 감탄 또 감탄했다. 그 이후로 줄곧 크레페만 만들어 먹어 살이 좀 붙기도 했지만.!!
한라산보다 높다고 했던 산.
시애틀에서 아주 유명한 산이라고 들었었는데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레이니어 마운틴과 흡사하다. 이 몹쓸 기억력이란
이때 사진을 많이 찍어놓지 못하고 어떤 산을 갔는지, 어떤 강을 보았는지 기록해 놓지 못한 것이 무척이나 후회가 된다. 사진 찍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우리 아빠는 매번 포즈를 취해보라고 하셨다.
그때마다 귀찮고 성가셔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사진과 기록은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다.
우리 동네는 사막 천지였지만 시애틀에 도착하니
강남에 온 느낌이었다.ㅋㅋㅋㅋ 그런데 주차를 하고 걷다 보니 이럴 수가.. 너무 좋아 시애틀!!
스타벅스 1호점
그 유명한 스타벅스 1호점!
생각했던 것과 달리 굉장히 아담하고 튀지 않았던 스타벅스 1호점.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다니.. 영광이다.
Public Market Center
각종 해산물과 먹을거리 천지인 마켓 플레이스!!
이때 기억에 남았던 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사과가 일주일은 두고두고 먹을 수 있을 만큼 컸다. $5밖에 안되다니..!
시애틀 아쿠아리움과 항구
바이올린을 켜고 연주하는 공연자,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살랑살랑 부는 나뭇잎, 철썩철썩 얕게 들리는 파도소리, 모든 것이 좋았던 시애틀.
바다가 보이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느낌은 어떨까
시애틀은 나에게 외치는 것 같았다. ' 그동안 넌 너무 우물 안 개구리였어!'
늘 용기 내지 못하고 도전하지 못했던 나에게
'그래! 나도 멋지게 살 거야'라고 다짐했다.
페리를 타고 항구 건너편을 타본다.
우리는 일회용 권을 구입했지만, 이곳 사람들은 익숙한 듯 교통카드같이 생긴 것을 찍고 들어갔다.
항구 건너 집들이 보였는데, 각자 요트 하나씩은 소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 남자 주인공인 샘이 살던 집과 유사했다.
이곳 사람들에게 페리는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 같다.
퇴근시간이면 저 멀리 높은 빌딩들을 뒤로하고 건너편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딱 1년만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2층 선박에 올라서니 마치 타이타닉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포즈도 취하며 한동안은 바람을 만끽했다.
광활하게 펼쳐져 태양에 반사된 바다는 늘 아름답다. 아름답다 못해 눈을 뗄 수 없이 벅차다.
나중에 부모님도 꼭 모시고 오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고, 저마다 생각에 잠긴 사람들의 표정에 왠지 모르게 마음 한쪽이 뭉클했다.
세 여자의 인증숏
친척 언니는 시애틀에서 자동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타코마(Tacoma)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인과 미국인의 피가 반반 섞인 코리안 아메리칸인데, 어려서부터 왕래가 잦은 편이 아니었으나
함께 앉아서 밥 한 공기를 오이소박이와 김으로 뚝딱 비우는 언니의 모습을 보면, 가까움이 느껴진다.
우리 조카는 동양인의 피가 전혀 섞여 보이지 않는 파란 눈에 노란 머리 꼬마 숙녀다.
지금은 어느덧 중학생이 되었고, 요즘엔 글쎄 친구들과 방탄소년단이 너무 좋다며 한국에서 파는 굿즈를 많이 많이 보내달라고 애교를 부린다.
시간이라는 건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아쉽다. 하지만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순간도 있기에 한편으론 시간이 흘러간다는 건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