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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가희 Apr 06. 2020

절교해도 괜찮아

나를 좀먹는 어떤 관계에 대하여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였다.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하다 보니, 그 친구와 단짝인 동기 한 명이 떠올랐다. 나와는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최근 들어 영 소식이 들려오지 않아 문득 궁금해졌다.

“참, 걔는 잘 지내?”라고 묻자, 친구는 한숨을 내쉬며 나도 몰라- 하고 힘없이 대답했다.

이유는 이랬다. 그 아이와 친구는 1+1이라고 인식될 정도로 아주 절친한 사이였는데, 그 아이가 최근 모든 사람과 연락을 끊으면서 모두가 친구에게 그 아이의 소식을 묻는 바람에 매우 지친 상태였던 거다. 정작 자신에게도 소식이 없어 답답한데, 그럴 때마다 그저 모르겠다는 답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적이 수십 번이었다고 했다. 친구는 대체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며 고민을 토로했다.

아주 오랫동안 억지로 꾸역꾸역 묻어뒀던 기억 하나가 툭 하고 눈앞에 떨어졌다.



나는 10여 년 전, 가장 친했던 친구와 절교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절교를 당한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는 누구나, 친구와 함께 놀다 수가 틀리면 “나 너랑 절교할 거야”라는 말을 흔하게 하곤 했다. 그 당시 절교라는 말은 “나 너랑 친구 안 해”의 조금 더 성숙한 버전일 뿐이었고, 실제로 단 한 번도 절교를 한 적은 없었다. 왠지 모르게 조금은 유치하게 느껴지는 그 말, 절교. 어린 시절에도 해본 적 없었던 절교라는 것을 나는 스무 살이 넘어서, 아주 예상치 못한 친구에게 당하게 된 것이다.

그 아이와 나는 10년 정도를 가장 친한 친구로 지냈고, 인연을 끊은지도 10년 정도가 됐다. 헤어져있었던 시간이 함께였던 시간을 넘어서면 누구든 자연스레 잊혀진다는데, 이따금씩 그 절교의 기억은 나를 찾아와 허탈함을 안겨주기도 한다.

우리는 같은 초등학교, 같은 중학교를 다녔다. 그 아이와 나를 포함해 네 명의 친구가 항상 같이 다녔는데, 그중에서도 그 친구와 나는 각별하게 친했다. 앞서 얘기한 1+1처럼 남들에게 인식되었으며, 사람들은 나에게 그 아이의 안부를, 그 아이에게 내 안부를 묻곤 했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네 명의 친구가 각자 다른 학교에 갔지만, 우정 전선에는 문제가 없었다. 각자의 학교에서 새 친구를 사귀면서도 종종 만나 예전처럼 놀곤 했었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평범하고 발랄하고 때로는 감성적인 학창 시절을 내내 깔깔거리며 함께 보냈다.

스무 살이 되면서는 각자 다른 지역으로 대학을 갔기에 거리가 더 멀어졌다. 그래도 명절이면 함께 모여 술을 마시거나 종종 시간을 맞춰 주말에 고향으로 내려가 만나기도 했고, 그 아이가 나를 보러 서울에 올라와 놀다 가기도 했다.

그랬는데. 나를 대하는 친구의 태도에 변화가 생겼음을 감지한 건 스물한 살, 대학을 졸업하기 직전의 무렵이었다. 점점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했고, 내가 먼저 연락을 하더라도 시큰둥한 반응만 돌아왔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만날 수도 없었다. 처음에는 뭔가 사정이 있나보다- 다른 일 또는 다른 관계로 바쁜가 보다- 아무래도 내가 멀리 있다 보니 관계가 소원해질 수밖에 없나 보다 라고 생각했지만, 나 아닌 다른 두 명의 친구들과는 여전히 살갑게 지내면서 나만 소외시키려 하는 것이 너무나 극명하게 느껴지는 거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시간이 1년 넘게 지속되면서, 이건 단순히 토라진 친구를 달래주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모든 관계에는 포지션, 즉 역할이란 것이 존재한다. 일을 할 때 팀에서도 그렇고, 가족 안에서도 그렇고, 연애를 할 때도 그렇듯. 친구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아이는 매사에 솔직하고 적극적인 성격이었지만, 나는 반대로 무뚝뚝하고 수동적인 성격이었다. 이러한 성격이 우리 둘 사이에서의 포지션을 결정했는데, 그 아이는 늘 먼저 연락을 하고 적극적으로 표현을 하는 편이었다면 나는 그저 묵묵한 타입이었다. 인간관계에 있어 조금은 무심한 편이고, 그 어떤 관계에도 집착하지 않았다. 굳이 힘들게 관계를 지키려는 노력은 애초에 하지 않기 때문에, 성인이 되고 난 후에는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 즉 연락을 주고받으며 존재를 확인하지 않아도 그저 그 자리에 있는 사람과 친구가 되고 연애를 했다.

적극적인 한 명과 무심한 한 명이 만나 거짓말처럼 친구가 되었고, 어렸을 때부터 당연한 듯 그렇게 각자의 포지션을 지키며 우리 둘의 사이는 흘러왔다. 혹시 그게 문제가 되었던 걸까. 나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영화 <우리들>


처음에는 어떻게든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렇다고 “너 나한테 서운한 거 있지? 뭔데? 말해 봐”라고 묻기에는 어쩐지 두려웠다. 한 2년 동안, 꾸준히 일방적으로 연락을 했지만 돌아오는 냉담한 반응에 만나자는 얘기도 꺼내지 못했다. 친구들은 나를 보면 그 아이의 소식을 물었고, 종종 엄마도 왜 걔랑 연락 안 하냐고 다그치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그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도 지쳐갔고, 연락을 하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 아이와 나를 제외한 두 친구는 이유를 알고 있는 듯했지만 말하지 않았고, 점점 그 아이를 빼고 셋이 만난다든지, 나를 빼고 셋이 만나는 일이 늘어갔다. 그리고 지금은 자연스럽게 성향이 비슷한 둘로 나뉘게 되었다.


내가 눈치 채지 못한 사이, 언제 어디서부터 파이기 시작했는지도 모를 골이 너무도 깊어져 구멍이 뚫리다 못해 땅이 두 갈래로 갈라지려 하고 있었다.

이미 닫혀버린 마음 앞에서는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그건 일방적인 행동일 뿐이다. 어떻게든 풀어보려 생일마다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곧 꼭 만나자는 말로 마음을 표현해봤지만, 그 행동 자체로도 나는 이미 내가 아니었고, 우리는 이미 우리가 아니었다. 우리는 더 이상, 친구가 아니었다.

나는 그 관계를 포기하기로 했다. 비로소 상대보다 몇 년 늦은, ‘이유 모를’ 절교를 하게 되었고, 그 후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안해졌다.

늘 바쁜 업무에 치이고,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동안 10년이 지나 30대가 되었다. 그리고 돌이켜 보건대, 그때의 내가 집착했던 건 친구가 아닌, 나를 왜 싫어하게 된 건지에 대한 이유였던 것 같다.

언젠가 이와 같은 일방적인 이별을 당한 적이 있다. 어떠한 다툼으로 인해 갑자기 헤어지게 되었는데, 상대는 “너는 그래서 안 돼”라며 나의 단점에 대해 낱낱이 얘기해주며 인신공격을 했다. 그 후 나는 꽤 오랫동안 아팠다. 다시는 그 사람을 볼 수 없다는 사실보다는, 사랑했던 사람에게 비난받았다는 사실에 치가 떨렸다.

그 이별이 나의 단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듯, 오랜 친구와의 절교도 그랬다. 얼마나 싫었으면 그렇게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었을까, 내가 그렇게 별로인 사람인 걸까. 종종 그런 생각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친구를 생각하면 원망스러운 마음보다는, 이유 모를 반성이 밀려오며 숙연해졌다. 그 관계는 나 스스로를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관계였고, 더 이상 소중한 학창 시절의 추억이 아닌 현재의 나를 좀먹고 있는 아픈 기억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후로도 사람과 친해지고 자연스럽게 멀어지거나 연락이 끊기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그 사건은 나에게 전무후무한 공식적 절교. 쓰디쓴 기억으로 남아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미움받는 것에 대해 두려워한다. 실은 관계가 끊어지는 것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닌, ‘나의 잘못으로 인해’ 관계가 끊어지는 걸 두려워한다. 원망의 대상이 되는 걸 두려워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할 때도 있는데, 그렇게 절절매면서 의미 없는 관계를 이어가며 내내 상처 받을 바엔, 가끔은 그냥 절교해도 괜찮다.

같은 연예인을 좋아하고, 비슷한 옷을 입고, 같이 먹고 같이 자기도 했던 그때의 소녀들은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잊은 채 새로운 관계를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때의 꿈을 꾼다. 깨어나고 나면 하루 종일 울적한 마음이 떠나질 않는데, 너도 가끔은 그럴까. 하고 가끔 생각할 뿐이다.



술자리에서 단짝이었던 아이와 연락이  된다며 고민하던 친구에게 “사정이 있을 테니 먼저 연락할 때까지 그냥 기다려 라고 얘기했지만, 사실은 절교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니 그렇게 한숨 쉬고 우울해하지 말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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