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계약직 신세
남편과 별거 후
가족들과 친구들의 지원을 받으며 죽도록 국가자격증을 따고 취직에 필요한 연수를 받고 전국 곳곳에 구직원서를 낸 나는 1년쯤 되는 시점에 1년 계약직으로 지방의 작은 사립대학에 취직할 수 있었다.
나는 1년 후에는 어떻게 되어 있을지언정
이 1년을 디딤돌 삼아 반드시 살아남으리라 열정이 넘쳤다.
지금까지 대학원생이었을 때는
엄청 공부하고 발표해도 혼났는데 ㅎㅎㅎ
이제는 공부해서 대학생들에게 전하기만 하면
월급도 주고 경력도 쌓인다고 하니 일하는 것이 꿀맛이었다.
하지만 1년 계약직 아닌가.
나는 취직하자마자 다음을 찾고 준비해야만 했다.
이 1년이 지나고 바로 이어서 일할수만 있다면
전국방방곡곡 어느 곳이든, 멀리 떨어진 섬이라도 갈 마음이 있었다.
매일 일하고 난 후 구직사이트를 확인하며 잠들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었다.
그건 이사와 전학 후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아이들이었다.
특히 아들은 그전 학교가 좋았다, 그전 도시가 좋았다며 몇 달 동안 힘들어했다.
시영아파트에서 대학교 사택으로 옮겨와서 더 좋아졌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평수도 더 적어졌고
사택과 아이들의 학교와의 거리도 멀어 아이들은 불평하기 시작했다.
작은 소도시... 나는 감사가 넘쳤지만... 실제로 아이들의 교육/문화환경과 교통등은 예전에 살던 도시에 비해 현저히 좋지 않았다.
나는 나만 취직이 되어 월급을 받게 되면 이제 우리 세 명 알콩달콩하게 살 일만 남은 줄 알았다.
(일본 지방 소도시 사립대학의 교수월급은 정말 짜다 ㅎㅎㅎ 진짜로 ㅠㅠ 월세 내고 나면;;; 막막함)
특히 나의 일본에서의 첫 직장이 대학이 되었으니 아이들도 자랑스러워하고 기뻐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직 어린아이들은 1년 후에 또 다른 곳으로 가는 거 아니냐며
불안해하고 불만을 터뜨렸다.
괜찮아 보이는 구인공고를 발견할 때마다 아이들과 상의했는데
아이들은 싫어요! 더이상 이사 안갈래요! 전학가기 싫어요!!!
단, 예전 살던 도시가 아닌 다음에야 다 싫다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진지하게 이 학교에 오래 남아
아이들에게 안정된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오자마자 학과장으로부터 교수회의도 참석했으면 좋겠다, 정규직으로 전환할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달콤한 초대를 받았기 때문에 나는 1년 후에 갈 다른 대학을 찾는 대신
이 학교에서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사람이 욕심이 생기면... 열심을 내기도 하지만
가지고 싶어 안달이 나고... 못 가질까 봐 초조하고 사람이 작아진다.
이 학교에 남고자 하니...
더 잘 가르쳐야 한다, 실수하면 안 된다,
교수님들과 학생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라는 생각 때문에
갑자기 과도한 긴장과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잘해야 해. 기회를 잡아야 해.
그래야 우리 아이들이 편해.
무조건 정규직이 되어야 해.
나는 또 미친 듯이 학교에서 가장 먼저 출근하고
둘째를 연구실에서 숙제를 시킨 후 같이 퇴근하고
아이들의 저녁을 챙겨준 후 다시 학교로 돌아가 수업을 준비하였다.
아이들을 달래 가며 1달에 한 번은 예전에 살던 도시로 가서 아이들이 예전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게 했다.
1년 계약직 신세... 기쁨은 몇일밖에 가지 않았다.
그렇게 또다시... 피곤한 날들이 시작되었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나는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온몸이 가려워지고...
급성으로 성인 아토피에 걸리게 된다.
저는 면을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