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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고 Aug 20. 2024

별거 10년째(10)

일생일대의 기회와 또 다른 기회

분명히

지방 소도시의 A사립대학, 1년 계약직 교수 모집공고에는 교수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적혀있었다.


그런데 학과장이 내게 반드시 교수회의에 참석했으면 좋겠 다고 하는 것이다.

업무를 잘 파악하라는 건가라며 대수롭지 않게 참석했다.


얼마 되지 않아 학과장으로부터 1년 후에 그만 둘 선생님이 계시니 내게 1년 후에도 계속 일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래, 기회가 온 거야!
하나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잘할게요.

이제 여기서 정년퇴직 할 때까지 일하며 애들 대학 보내고 하면 되겠다. 나는 꿈에 부풀었다.


지도교수님은 1년 후 이직을 하려면 박사학위를 지금 받아야 한다며 박사논문 제출을 재촉하셨지만

나는 정규직 전환이 더 중요하다며 더더욱 강의 준비와 학생지도에 매진하였다.


그런데 계약 기간 1년이 점점 다가오는데 정규직 전환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지만 곧 교수님 중 한 분이 그만두시면 공고가 뜨겠지라고 기다렸다.


그런 가운데 학과장이 다시 나를 불렀다.1년 후에 그만둘 것 같았던 교수님이 그만두지 않으신다고 내게 다른 학교를 찾을 수 있도록 6개월만 연장을 해주겠다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너무 어이가 없기도 하고 아이들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리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아, 그렇군요. 어쩔 수 없지요. 배려 감사합니다.

나는 애써 웃으며 내 연구실로 돌아왔다.


정규직 전환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서둘러 다음 일을 찾던 그 몇 달은... 정말 비참한 시간들이었다.

회의에 들어가도 다음 년도 내용도 많았는데 나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단 한번도 빠지지 않고 모든 회의에 참석하였다. 


아이들은 극구 이사와 전학하기를 꺼려했다. 나는 다른 지방으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시간강사를 하던지 일반 회사에 취직하여 이 도시에 남기로 마음먹었다. 돈도 중요하고 내 커리어도 중요했지만... 아이들이 더 중요했다.


이제는 일반 회사까지 포함해서 구직사이트를 들락날락거렸다.


계약이 6개월만 연장된 나는 정규직 전환 해주겠다 하고  어떻게 말을 바꿀 수 있냐던지 섭섭하다는 마음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표정이나 태도로도 드러내지 않았다.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온화한 표정으로 상냥하게 웃으며 성실하게 일했다. 아이들의 엄마로서 당당하자고 하루에 몇 번씩 되뇌었다.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예비해 두셨을 거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나는 정규직이 필요한 거지

동정과 위로는 필요치 않았다.


이 도시에 남기로 결정하고 다양한 일반회사를 살펴보다 보니까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나를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는 이 대학이 손해다!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로 옆 도시지만 자동차로 30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있는 공립 단기대학에 내 전공과 일치하는 포스트에 정규직 교수(전임강사) 구인공고가 떴다.그 공고를 보자마자 왠지 내가 갈 수 있는 자리인 것만 같았다.


그 이유는 시골도시의 단기대학은 큰 대도시의 4년제 대학에 비해 일반적으로 지원하는 사람이 적다.

그리고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는 나를 면접에 부를 확률이 높다.

학교의 외국인 교수 비율, 학과의 성별비율 등을 살펴보니 외국인이나 여성이라는 부분이 되려 유리하게 작용할 것 같았다.

나는 바로 원서를 냈고... 최종 면접의 기회를 얻었다.

지도교수님은 너무나 기뻐하셨다. 면접 예상 질문과 대답 내용까지 체크해 주시며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면접 날이 며칠 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 어떤 교수님이 취업 활동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냐고 물어오는 것이었다. 나는 걱정해 주신 덕분으로 며칠 후에 면접을 가게 되었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다음 날 아침, 이번엔 학장(학교가 작아서 정말 학장님께서 부르셨다 ㅎ)에게서 호출이 와서 가보니

정규직으로 전환해 줄 테니 면접 가는 것을 재고하라는 것이었다.


잉????? 무슨 소리?????

나는 일단 생각할 시간을 하루 얻고 지도교수님과 상의했다.

지도교수님은 왜 면접 이야기를 했냐고 나를 나무라셨다.

교수님은 면접 볼 학교는 단기 대학이지만 공립이라 공무원 신분인 거다라고 하시며

애들 키우며 연구하기엔 월급도 연구환경도 B대학이 더 나아 보인다며 면접을 보러 갔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달랐다.

먼저 여기에 남으면 아이들이 가장 편하다.

두 번째로 혹시 다른 곳으로 이직할 때는(특히 한국대학으로 갈 때에는) 단기대학보다는 4년제 대학에서 일한 경력이 유리할 것 같았다.


교수님과 아이들과 몇 번 더 상의한 끝에 나는 결국 A대학에 남기로 했다.


꿈에 그리던 대학교수... 정규직...

이제 정말 나와 아이들은 꽃길만 걸을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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